올해 초, 할아버지를 잃었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에는 종종 정신이 나간 듯 울었다. 정신을 차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동생들에게 우스갯소리를 하고, 집에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아이들은 잘 있는지 물었다. 오락가락했다.
집에 돌아온 후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가고 나면 침대 위에, 소파 위에, 바닥 위에. 어디에든 누워버렸다. 한없이 우울한 채로 있고 싶었고, 그러다가도 우울한 게 짜증이 나서 화가 나곤 했다. 감정을 조절할 생각이 없었다.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참지 못해 줄곧 쭈그려 앉았고, 어쩐지 고아가 된 느낌이라 혼자 신세 한탄도 곧잘 했다. 내 인생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면서, 남들 다 있는 거 왜 나만 없냐면서. 탓할 사람 없는 일을 탓하면 어쨌든 내 탓은 아니니까 잠깐은 괜찮아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식구 중 유일하게 집에만 있었던 주제에 코로나에 걸리기도 했다. 외출이라고는 아이들 등하원 밖에 하질 않았는데 아이들도 걸리지 않은 코로나를 나 혼자 걸렸던 것이다. 남편이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아이들을 돌볼 수 있게 돼서, 나는 일주일 간 안방에 틀어박힐 수 있었다. 모처럼의 육아 휴직이었던 셈인데 문득문득 우는 바람에, 코로나가 진짜로 매우 아팠기 때문에, 그런데 날 간호해 줄 사람은 옆에 있을 수 없었기에 그다지 쉬지 못했다.
내 격리가 끝난 후에도 컨디션을 되찾기는 힘들었다. 때는 3월. 나 말고도 코로나에 걸리는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로 인해 어린이집은 걸핏하면 휴원이었다. 몇 주 뒤, 기다렸다는 듯 둘째 아이가 코로나에 걸렸다. 다행히 아이는 무증상이나 다름없이 넘어갔지만, 그 말인즉슨 컨디션이 멀쩡한 두 아이와 일주일 내내 집안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는 뜻이었다. 할아버지와 헤어진 슬픔이 자리 잡은 상태에서 두 아이와 집에 틀어박혀 있는 일상은, 다시 힘을 내려하는 나를 자꾸만 눌러 앉혔다. 나는 또 화가 났다.
아이들이 말을 안 들으면 달래기보다 혼을 냈다. 그리고 익숙해졌다. 밤마다 후회해봤자 이미 아이들은 엄마에게 혼난 기억을 안고 잠에 들은 후였다. 엄마가 지쳐버리니 아이들도 지쳤다. 나쁜 년이 된 것 같았고, 실제로 나쁜 년이었다.
그러던 중- 아이들은 자기 전에 나쁜 일이 일어나면 그 부정적인 감정을 안고 잠에 들어서, 그날 하루 즐거운 일이 많았더라도 그저 나쁜 하루로 기억해버린다는 얘길 들었다. 온종일 키즈카페에서 놀았더라도 자기 전에 잠깐 엄마한테 혼나버리면 그날은 그저 혼난 하루로 마감한다는 얘기였다. 요 몇 주 사이 내 아이들의 하루하루는 늘 그런 식으로 마감되고 있었다.
태어난 지 이제 6년, 3년이 채 되지 않은 아이들인데 인생이 불행할 필요가 뭐가 있을까. 우울할 필요도 없었다. 아이들의 하루라도 좋게 좋게 마무리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아이들과 나는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오늘 하루 행복했던 일들에 대해서 이야기한 뒤 잠들자는 거였다. 웃으면 복이 온다는 그 진부한 말처럼, 행복하다 행복하다 말하다 보면 진짜 행복한 하루였다고 여기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비롯된 약속이었다.
아이들은 말했다. 오늘 난 놀이터에 가서 친구를 만나서 행복했고, 엄마가 젤리를 사줘서 행복했다고. 아빠가 집에 일찍 와서 행복했고, TV를 마음껏 봐서 행복했고, 스스로 샤워를 해봐서 행복했다고. 동생이 나한테 사랑한다고 말해줘서 행복했고, 엄마가 돈가스를 사줘서, 아까 나를 꽉 안아줘서, 머리카락을 믿어핑처럼 묶어줘서 행복했다고. 그리고 꼭 되물었다.
엄마는요? 엄마는 오늘 뭐가 행복했어요?
나는 답했다. 엄마는 오늘 좋아하는 마카롱 가게가 문을 여는 날이라 행복했어. 두통이 나아서 행복했고, 친구들이랑 단톡방에서 나눈 얘기가 웃겨서 행복했고, 프린터를 고쳐서 행복했고, 하원 시간에 비가 그쳐서 행복했어.
그렇게 하루 사이사이에 아닌 체하며 웅크리고 있던 행복들을 끄집어낸다. 야, 사실 너 행복이었어- 하면서. 그러다 보면 어느새 안심이 된다. 누군갈 탓하지 않게 된다. 아이들이 행복했다니 썩 나쁘지 않은 엄마였던 것 같고, 이만하면 괜찮은 사람이었던 것 같고, 사소하게 꽤 자주 행복한 사람이 된 것만 같다. 그런 날이 반복되니 아이들이 묻지 않는 낮에도 불현듯 행복을 알아챘다.
물론 여전히 울컥할 때가 있고, 좀처럼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울 때도 있다. 그래도 이다음에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면 말할 수 있게 됐다. 나는 잘 살고 있다고. 모든 것이 다 어렵지만 노력하고 있다고. 오늘 하루도 당신이 있던 때처럼 행복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