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 앞의 예비 대문호
어릴 때 어딘가에서 본 장면이 있다.
링겔을 꽂은 채 원고를 쓰는 작가.
그게 드라마 속 장면이었는지,
노희경 작가의 인터뷰였는지 지금은 헷갈리지만
대작가가 되려면
내 몸 하나는 건사하지 못하더라도
명대사를 남기는구나.
내 팔뚝은 링겔을 얼마나 맞아야 할까?
왼쪽 오른쪽 다? 한쪽만 맞는 게 낫겠지?
농담이 들어간 척 포장한 진심이었다.
한 인간을 대표하는 작품만 있다면
그 정도는 충분한 거래조건 같다는
무지 어린 대범함이 있었다.
서른이 되던 해,
아홉수를 잘 넘기면서 찾아온 안심이
오히려 삐그덕 삐그덕
글과 마음에서
자꾸 이상한 의심 신호 보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글의 느낌을 따라가기 바빴고
내 글을 자꾸 지워나가기 바빴다.
대작가 근처는 어림도 없었고
작가라는 타이틀도 겨우 유지할까 말까였다.
언젠가부터는 아무런 기록도 남기지 못했다.
기록을 멈추자 나는 점처럼 옅어졌다.
그 후 몇 백공기쯤 더 먹은 밥이
나를 불혹 근처까지 데려다줬다.
불혹 근처까지 오자
못할 건 뭐냐는 얼굴이 생겼다.
그리고 이것밖에 못 쓰는 나에서
이거라도 쓰는 나로 진화한다.
이게 어디야.
오늘의 한 줄이라도 남기겠다는
작가의 다짐은
늦은 밤, 아이들을 위한 자장가에서 먼저 잠이 든다.
애둘맘과 저질 체력은 자아실현의 반대말처럼
일단 잠을 자라고 속삭인다.
지금 잠을 자면 꿈속에서는
한국인 최초
김작가가 노미네이트.
다시 한번 k문학에도 불을 지폈습니다..
라고 외칠 것만 같지만
그 상상을 깨고 밥 짓는 소리가 들린다.
보글보글.
아차차 아까 올려놓은 콩나물국!
결국 글 앞이 아니라 냄비 앞을 지키는 현실이지만
밥 짓는 소리만으로도 명문장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