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에게.
스물한 살에 만난 언니는
빛나는 사람이었다.
키는 우리 집안에서 볼 수 없는 큰 키였고
하체비만인 나와 다르게
그런 걱정은 단 한 번도 해본 다리를 가진 채로
미니스커트를 입고
뾰족구두까지 신고 다니는데
그게 마아아아아니 부러웠다.
(나는 나이키 운동화에
바람막이가 주 패션이었다)
언니는 대화만 하면 누구든 빠져들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가볍게 이야기한 주제에는
적당히 유쾌한 리액션으로
상대를 웃음 짓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무거운 주제에는 충분히 경청하며
상대가 부담스럽지 않게
위로하는 방법을 알았다.
사람과의 관계가 서툴렀던 나에게는
너무 어른의 모습이었다.
그래서 언니 주변에 늘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도 질투가 안 났다.
한 살 차이일뿐인데
좋은 어른에게서 나는 태도를 볼 수 있는 게
내겐 살아있는 어른 안내서 같았다.
오래도록 작가의 꿈을 가진 나와 달리
언니는 그냥 글 쓰면 재밌을 것 같아서!
라며 국문과 소설 쓰기를 같이 들었는데
내 소설은 산으로 가고
주제만 거창한 예술병에 걸린 글이었는데
언니의 글들은 사람들을 웃게 하고
초롱초롱한 눈을 하며
다음화를 기다리게 만들었다.
그날 수업에선
글을 쓰려면 나 자신을 꺼낼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이었는데
수업이 마치고
우리 부모님 이혼하셨다…?라고 했다.
얼굴은 이상하리만큼 편안했고
목소리의 떨림도 없었다.
나도 그런 반응에 최대한 태연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
우리 사촌언니도 이혼 가정이에요!
그리고 집에 와서 생각했다.
언니는 저 이야기를 떨림 없이 하기까지
어떤 일들이 있었던 걸까.
마음에 굳은살이 얼마나 박혀있는 걸까...?
나는 예민한 엄마 앞에서도
나를 밀어내려는 친구들 앞에서도
괜찮은 척하는 일이
아직도 버겁기만 한데.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언니를 따라 하기 시작한 게.
어떻게 말하는지, 어떻게 웃는지
상처를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상처받았지만
상처받아본 적 없는 사람처럼
의연하게 말하는 사람.
진짜 상처 입은 치유자이자
내가 되고 싶었던 어른.
그러면 나도 언젠가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막연했지만 붙잡고 싶은 끈이었다.
그렇게 나는
자기 연민 같은 거는 쳐다도 보지 않고
내 상처나 자기 비하를
무기로 쓸 수 있는 작가가 되기로 했다.
아직도 말로 하면 목소리도 떨리고
울컥 비슷한 감정도 느껴진다.
그래도 글에선 적어도 내 표정은 숨길 수 있었다.
어쩌면 그래서 작가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