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아낸 아이를 뒤늦게 알아본 날

그날의 대화를 오래 기억하고 싶다

by 김승연

그동안 첫째는 많이 참았다.

둘째가 태어나고 1년,

집 안의 중심이 옮겨가는 시간 속에서도

첫째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연약한 아기에게 자기가 줄 수 있는

사랑을 주며 자라주고 있었다.

그게 안쓰러울 때가 많았다.

아이가 너무 눈치를 봐가며

성숙해지고 있는 게

더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생일만큼은 정말 ‘생일답게’ 보내주고 싶었다.

동물원을 가기로 했다.

오늘만큼은,

첫째가 원하는 대로.

에버랜드를 갈까,

대전오월드를 갈까 고민하다가

마침 오월드 공구 티켓이 생겼다.

아직 우리 집 경제 컨트롤타워는

미미하지만,

그래도 나름 잘 작동 중이다.

어린이집을 땡땡이치고 온 보람이 있었다.

평일 오픈런은

무적의 단어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그날 우리는 정말 많이 놀았다.

사파리 버스를 두 번 타고,

놀이기구는 기다림 없이 다섯 개나 탔다.

평소라면 절대 사주지 않았을

7천 원짜리 피카츄 풍선에

구슬 아이스크림까지.

봄꽃이 휘날리고 있는

그 사이를 피카츄 바람개비 풍선을 들고

뛰는 아이의 얼굴은

몇 개월 중에 가장 환하게 웃었다.

평소였으면 둘째를 데리고

잡으러 갈 수가 없어서

뛰지 말라고 혼냈을 텐데

오늘은 사람도 없고

둘째도 없고

마음껏 뛸 수 있는 시간을 준 게

가장 큰 선물일 것 같았다.


손을 잡고 뛰다가

문득 아이에게 말했다.

“그동안 엄마가 안나 때문에

예민해서 많이 화냈던 거, 미안해.”

아이의 대답은 생각보다 단단했다.

“아니야. 내가 그동안 말 안 들어서 미안해.”

… 이게 여섯 살 아이의 말이 맞을까.

나는 왜 이렇게

이 아이를 잘 키운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 살 때도 그랬다.

어디 부딪혀 아파하다가도

“좀 있으면 괜찮아져”라고 말하던 아이.

시골 할머니들이

고추 좀 보여달라 하면

“할머니 꺼 먼저 보여주세요”라고 말하던

당찼던 아이.

그 아이가

언제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

아는 아이로 자라고 있었다.

나는 어쩌면

아이의 말을 잊지 않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봄날이 왔다.

아이의 여섯 살에

어떤 추억을 줘야 할지 고민이 된다.

또 나의 서른여섯 살에

이 아이는 어떤 모습을 보여주게 될지

설레는 시작이다.

하루 데이트를 해보니

둘이서는 어디든지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든 갈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게

너무 좋으면서도 너무 아깝다.

나도 이제 이 말을 외치는 보통의 엄마가 되었다.

"제발 좀, 천천히 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