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은 점염된다
돈 이야기 좀 그만 듣고 싶었다.
계급에 대한 이야기 역시.
나를 포함해
대한민국 전체가 절여져 있었다.
이야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 이야기뿐이었다.
인스타그램, 스레드, 드라마, 영화,
심지어 소설까지.
사람들은 벼락 거지 된 자신을 견디지 못한 채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몰려갔다.
어디에 앉아도 그 이야기였고
결국, 그 이야기는 늘 그 이야기였다.
노골적이라는 선마저
마구 짓밟혀있었다.
누구를 만나든
계급 계산기가 켜졌다.
옷 오른쪽 혹은 오른팔에
어떤 로고가 그려져 있는지
어떤 차를 타는지,
어느 아파트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지.
그런데 이 노래는
다짜고짜
잠깐 앉아 보란다.
맛있는 수프와
잘 구운 고기를 준다고.
몇 년간 수현의 마음이
아프다는 건 알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
<Love lee>, <낙하>의 해석이
힌트였고
갑자기 몸이 버거워진
그녀를 보며
먼저 무너졌을 마음을
짐작했다.
그녀를 아끼던 팬들은
각자의 자기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의 응원을 했다.
있는 그대로를 지지하거나
몸과 마음의 안녕을 기도했다.
그녀의 오빠는
집을 숙소로 바꿨고
규칙을 세웠으며
그녀가 해야 할 것들을
함께 해나갔다.
그 모든 마음은 끝내
닿고야 말았다.
그런데 이런 방식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
순례길이라니,
컴패션 선교라니,
개화라니.
뮤직비디오 댓글에는 저마다의
이야기가 달린다.
특히, 자신을 이겨낸 이야기들이.
사랑이 주춧돌이 된
회복의 장면을 보며
사람들은
눌러두었던 것들을
끝내 끌어올린다.
깊은 곳에서
무언가 차올라
마침내, 자신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사랑이 멸종 위기라는 곳에서
느린 사랑의 붐이 온다.
천천히 움직이는 체조에
눈물 흘리고
기쁨에는 슬픔도 있어야 한다며
저마다의 기쁨과 슬픔을
써 내려가는 지금에서야.
이제는 돈이나 계급 말고
당신이 누구인지 듣고 싶다.
어떤 오래된 슬픔을 품었고
어떠한 찰나의 기쁨이 스쳐갔는지.
그 시간 속에서
어떤 노래를 들었고
어떤 문장이 남았는지.
당신을 지켜준 사람은 누구였고
지금 당신이 지켜야 하는 사람은 누구인지.
노래를 들으며
따뜻한 수프와 고기를
마음으로 받아 들었다면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시작해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