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HIR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 질문을 자주 듣는다.
“이제 데이터도 연결되는데,
그럼 헬스케어 서비스는 뭐가 더 어려운 거죠?”
아이러니하게도,
FHIR이 등장한 이후 헬스케어 서비스는 쉬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기획자의 고민은 더 깊어졌다.
이유는 단순하다.
기술적 ‘불가능’이 줄어든 대신,
기획자의 ‘선택’이 전면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FHIR 이전의 헬스케어 기획은
종종 여기서 멈췄다.
“병원 데이터 연동이 안 됩니다”
“시스템이 달라서 어렵습니다”
“표준이 없어서 불가능합니다”
기술은 늘 장벽이었다.
하지만 FHIR 이후,
이 문장들은 점점 설득력을 잃고 있다.
연결은 가능해졌고
데이터 구조도 어느 정도 합의되었고
API 기반 연동도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었다
이제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데이터를 어떻게 써야 할까?”
FHIR은 데이터를 연결해준다.
하지만 데이터를 이해하게 만들어주지는 않는다.
검사 수치는 여전히 어렵고
의료 용어는 여전히 낯설며
정보의 맥락은 여전히 설명이 필요하다
여기서 기획자의 역할이 분명해진다.
FHIR 이후의 기획은 ‘연결된 데이터의 해석 책임’을 진다.
어떤 정보는 보여주고
어떤 정보는 요약하고
어떤 정보는 아예 숨길 것인가
이건 기술 문제가 아니라
경험 설계의 문제다.
FHIR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만든다.
병원 기록 전체를 가져올 수도 있고
모든 검사 결과를 그대로 노출할 수도 있고
모든 데이터를 한 화면에 담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위험한 함정이 생긴다.
가능한 것을 전부 제공하려는 욕심
헬스케어 서비스에서
정보 과잉은 친절이 아니라 부담이 된다.
FHIR 이후의 기획자는
이 질문을 피할 수 없다.
이 정보는 사용자의 어떤 결정을 돕는가?
지금 이 타이밍에 필요한 정보인가?
불안을 키우지는 않는가?
즉, ‘기술 기준’이 아니라 ‘사람 기준’으로 걸러내야 한다.
FHIR은 기술적으로 말하면
데이터 이동과 공유를 쉽게 만든 표준이다.
하지만 사용자 입장에서 중요한 건 이것이다.
“이 데이터는 누가 보고, 누가 통제하는가?”
자동 연동이 편리한가?
내가 끄고 싶을 때 쉽게 끌 수 있는가?
설명 없이 공유되고 있지는 않은가?
FHIR 이후,
데이터의 윤리와 신뢰는 기획의 영역이 된다.
동의 UX
데이터 사용 맥락 설명
투명한 권한 구조
이걸 설계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서비스도 신뢰를 잃는다.
FHIR은 병원, 서비스, 기기, AI를 연결한다.
하지만 그 연결이 곧 관계는 아니다.
병원은 왜 이 서비스를 신뢰해야 할까?
사용자는 왜 이 앱에 데이터를 맡겨야 할까?
의사는 이 시스템을 왜 써야 할까?
FHIR 이후의 기획자는
각 주체의 입장과 리스크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이건 단순한 기능 정의가 아니라
이해관계 조정에 가깝다.
FHIR은 훌륭한 인프라다.
하지만 인프라는 방향을 정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FHIR 이후의 기획은
점점 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온다.
이 서비스는 환자를 덜 불안하게 만드는가?
의료진의 판단을 더 안전하게 만드는가?
일상 속 건강 관리를 실제로 돕는가?
기술이 아니라,
의도와 기준이 서비스의 성격을 결정한다.
FHIR은 헬스케어 서비스의 출발선이다.
결승선이 아니다.
PHR이
“개인의 건강을 다루는 방식”을 바꿨다면,
CDSS가
“전문가의 판단을 지원하는 방식”을 바꿨다면,
FHIR은
이 모든 변화가 가능한 토대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위에서 무엇을 만들지는
이제 온전히 기획자의 몫이다.
FHIR 이후의 헬스케어 기획은
기술보다 ‘사람에 대한 선택’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