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살 수는 없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해주었지만 여전히
처음 듣는 것 같은 이야기.
"돈으로 안락을 살 수 있지만 행복을 살 수는 없습니다."
내일(미래)을 걱정하느라 일생동안 오늘(현재)을 생략하는 어리석은 삶이 자본주의가 만든 노예제다. 왜들 그리 체제 안에 못 들어가서 그 안에서 한 칸이라도 못 올라가서 난리일까, 꼭대기까지 가봐야 부자의 상머슴 노릇인데, 오늘 하루 배곯지 않고 나를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산책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천국인 걸.
- 우리는 고독할 기회가 적기 때문에 외롭다(김규항 아포리즘) 중에서 -
설 연휴 첫날 우리 가족은 서점을 쇼핑했다. 나는 서점 쇼핑이 세상에서 제일 즐겁고 행복하다. 아내가 이 책을 집어줘서 한번 보라고 했는데, 글이 좋으니 지갑이 열린다. 좋은 글은 쇼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확실하다.
작가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피라미드의 꼭대기까지 서로 오르려고 경쟁하는 우리의 모습을 안타깝게 써 내려갔다. 그리고 우리가 모호해하는 안락과 행복에 대한 경계를 분명히 해주었다. 그러면서 자본주의 체제 안에 살면서도 행복할 수 있는 비결에 대해서도 알려주고 있다. 분명 이 글에서 필자가 이러한 행복한 삶을 누렸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나 역시 하루 배곯지 않고 나를 믿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산책할 수 있는 것이 행복한 길이란 걸 인정한다. 그리고 그러한 삶을 추구한다. 그러면서 친구 중에 한 명이 떠올랐다. 그 친구는 30대 중반에 글로벌 기업의 상무가 되었고,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롤모델과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최근에 그 친구를 만나면서 나눈 대화중의 주된 내용은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행복해 지기 위한 방법, 비결 같은 주제들이었다.
그 친구는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가장 롤모델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그 친구 스스로는 그 자본주의 체제를 극도로 혐오하고 있는 걸 보았다. 그리고 그 극도로 혐오적인 자본주의 체제를 벗어나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히 달리고 있는 친구의 모습 속에서 현대인의 치열한 삶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었다.
4-5년 전에 그 친구가 한 말을 아직도 있지 못한다.
"큰 가시나무를 꽉 껴안고 있지만, 그 가시나무에서 주는 혜택 때문에 그 나무를 버릴 수는 없어."
그래 우리는 어쩌면, '행복'이라는 눈에 잘 보이지 않고 추상적인걸 얻고자
눈에 보이고 쉽게 만져지는 '안락'이라는 걸 얻기 위한 우리의 많은 자원들을 희생시키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에 대한 추상적인 개념은 더욱 모호해지고 멀어져 버리고,
눈에 보이고 쉽게 만져지는 '안락'이 최종 목적이 되어서
우리의 삶에 불필요한 '가시나무'들이 넘쳐나는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 아닐까?
돈으로 안락을 살 수 있고,
그 안락은 행복을 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믿는다.
나의 네트워크에 한계가 있어서 그럴 수 있지만,
주변에 나름 돈 있는 사람들이 그 돈에 비례하여 행복한 거 같지 않다는 건 분명하다.
즉, 삶에 '안락함'이 높아질수록 '행복감'이 증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행복은 수치화할 수 없고, 개념화하기에도 어렵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무엇이 행복인지 잘 모를 수 있는 것 같다.
그래서 행복을 추구한다고 하지만,
무엇을 추구하면서 사는지 구체적으로 모르고 사는 경우가 대부분 아닐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
이것이 행복한 일임에는 분명한 듯하다.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다면, 그건 이미 행복을 쥐고 있는 삶이다.
그리고 그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서 필요한 건, 가까이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이다.
다음이 아닌,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