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는 네 명이었다.
어쩌다 보니 아이 셋
은 아니었다.
사실 우리의 목표는 네 명이었다. 한 명이 부족한 것이다.
이 글을 와이프가 보면 안 된다 하하
우리의 목표가 아닌 나의 목표였는지도 모른다.
분명 결혼 당시에는 목표가 넷이었다.
넷에 대한 이유?
그런 것도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넷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었다.
결혼 후 첫째를 낳고 여러 가지 우리의 환경들이 변하면서 목표는 셋으로 바뀌었다.
사실 우리는 첫째가 돌이 조금 지나서 한국에서 살지 않게 되었다.
둘째와 셋째는 모두 외국에서 임신했다.
우리가 셋을 낳을 수 있었던 이유와 목표는 분명했다.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우리를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가족이었다.
나라마다 다를 수 있지만
외국에서 한국인이 살아간다는 것은 다양한 정서적, 문화적 공감대에서 손실이 많다.
그 큰 정서적 손실을 채워줄 수 있는 가장 베스트 한 건 가족이다.
우리들의 정서를 채워주는 것도 필요했지만,
아이들끼리의 정서를 채워주기 위해서 우리는 최소 3명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걸 실행에 옮겼다.
그런데 우리 가정에 큰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의 삶의 터전은 한국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 삶의 터전을 한국으로 옮기게 된 것이다.
한국에서 3명의 아이를 키운다는 건 계획에 전혀 없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아이들 3명을 키우기가 어렵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
한국에 돌아와서 직업도 없고 돈도 없는 상황, 그리고 집도 이렇게 비싼 줄 몰랐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떠한 계획도 생각도 잘 되지 않는다.
그냥 난민들이 외국에 와서 치열하게 생존하면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듯이
그러한 심정으로 나도 치열하게 생존하기 위해서 뭐든 닥치는 대로 해야 했었다.
그런데 3년간 천천히 시간이 흘렀던 나라에 익숙했던 나의 몸은 그렇게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왔을 때, 막내가 막 태어났었는데
이제는 자기의 의사표현을 거의 정확히 하는 나이가 되었다.
어떻게 시간이 흘러왔는지 정확히 기억해 낼 순 없으나,
이 아이들 덕분에 한국에 다시 적응해야 한다는 과제를 뒤로 하고 삶에 치열하게 대처했던 것 같다.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에 작지 않은 스크래치들이 생겨났지만,
그 스크래치들을 무단히 이겨낼 수 있었던 건 이 사랑스러운 아이들의 존재 아니었을까?
때로는 삶을 멀리하고 싶은 충돌을 일으키는 원인을 제공했다가도,
다시금 삶을 가장 가까이로 되돌려주는 갈망을 자연스럽게 발생시키는 존재이기도 했다.
비록 우리의 목표와 방향과 다른 삶이 전개되었지만
큰 삶의 목표와 방향에서 흐트러짐 없이 전진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 아이들의 존재와 그걸 함께 헤쳐나가는 동반자이자 절친인 아내 덕이다.
셋을 낳은 이유가 중요할 수도 있지만,
셋이 우리 곁에 있다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 존재감은 오늘도 쉽지 않은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며,
여전히 관계를 맺고 사는데 부족한 나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부족한 부모와
부족한 아이들이 만나서
삶이라는 정답 없는 긴 여정에
퍼즐을 맞추어 나가는 인생의 묘미는 황홀하기까지 하다.
점점 개인화되어가는 사회현상 속에서
하나보다는 둘이 낫고,
둘보다는 셋이 낫고,
셋보다는 넷이 낫다고
외쳐본다...
그러다가
사람들이 별로 관심 없음에 실망을 하려다가,
내가 누리고 있는 행복을 그냥 조심히 귀한 보물처럼 간직해보려고 한다.
누군가가 알면 더욱 좋겠지만,
때로는 비밀스러움이 더욱 귀하게 빛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