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셋이라 행복하다.
코로나 여파로 아이들과 2달 동안 함께 뒹굴고 있다.
때로는 소리치고 화내면서
때로는 너무나 사랑스럽게 아이들을 안아주고 그들을 즐기면서
그리고 아이들이 원하는걸 마음껏 해주면서 새로운 시간들을 채워나간다.
아이 셋이라 힘들지만,
아이 셋이라 행복하다.
힘든 만큼 그 행복은 배가가 된다.
아이 셋을 낳는다는 건 그만큼 큰 대가를 치르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특별히 지금과 같이 공동육아가 힘든 시기에는 말이다.
그래도 아이 셋이 아이 하나나 둘보다 좋은 점도 많다.
그중 하나는 아이들을 그냥 내버려 두어도 된다는 것이다.
아이 하나인 부모들은 아이들과 오랜 시간 같이 놀아줘야 한다.
이 같이 놀아준다는 것이 참 부모들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나의 수준을 아이와 같이 낮추어야 하는데, 그것이 어른들에게는 쉬운 일이 아님에는 분명하다.
또는 아이들의 창의성에 맞추거나 그 수준을 따라가야 하는데, 어른들의 머리는 많이 굳어있다.
그들의 창의성을 따라갈 수 없다.
그래서 놀이는 아이들이 주도하고 어른들은 그 아이들의 주도에 적극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좋다.
우리 집 현관문 쪽에는 분리수거할 것들을 둔다.
박스를 분리수거하기 위해서 정리했는데, 아이들이 그것을 가지고 집을 만들기 시작한다.
첫째가 계획을 하고
둘째가 보조를 맞추며
셋째는 응원한다.
중간에 한 번 뜻대로 잘 되지 않아서 박스로 집 만들기가 중단되었다.
둘째가 첫째의 생각만큼 보조를 잘 맞추지 못한 것이다.
아이들의 회복탄력성.
중단된 지 몇 분이 지나지 않아서 다시금 일어서서 박스로 집 만들기를 재개한다.
결국, 성공했다.
세명이 다 들어가기에는 조금 좁았던지,
첫째는 자기의 임무를 다 마친 것에 뿌듯해하며 동생들에게 멋지게 집을 선사한다.
둘째, 셋째가 너무나 행복해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것을 바라보는 엄마와 아빠는 그냥 행복할 뿐이다.
내가 힘을 들이지 않아서 행복하고,
아이들이 스스로 일을 만들고 문제를 해결하고 서로를 위해줘서 행복하고,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버려질 물건들을 재미난 놀이로 바꾼 창의력에 감탄한다.
아이 셋을 낳으면 좋은 점이 많이 있다.
그중에 하나는 이렇게 자기들끼리 행복하게 잘 논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