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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네가족 Apr 23. 2020

결혼 10년 차 그러나 전업주부는 처음

남자는 자고로 집안일을 할 때 진짜 남자가 된다.

남자는 자고로 집안일을 할 때 진짜 남자가 된다.


왜 나의 어머니는 집안일을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일까?

나를 위해서?

아니면 어머니를 위해서?

그것도 아니면 내가 도망간 것이겠지..


결혼한 남자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일이 있다.

아내와 엄마를 혼동하는 거다.


나도 한참을 그러했고,

지금도 가끔 그러고 있다.

정말 몹쓸 짓이지.


가끔은 과거에 살았던 남자들이 부러울 때도 있다.

그런데 조금씩 집안일을 하면서 깨닫게 되는 건 과거의 남자들이 불쌍하다는 것이다.


남자는 자고로 집안일을 할 때 남자가 된다.

많은 남자들이 아마 나를 싫어할 것 같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이건 사실이다.




결혼 10년 차, 그러나 집안일은 난생처음.


그래 정확히 이야기해야 한다.

글의 제목만 보면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은 남자라고 오해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렇진 않다.

나는 첫아이 태어날 때부터 밤에 기저귀도 내가 다 갈고,

첫째랑 둘째는 모유수유를 해서 밤에 다행히 밥을 먹이진 않았지만, 최소한 신생아 때 트림 시켜주는 건 내 몫이었고,

그리고 아이들 기저귀는 내가 거의 다 갈았던 것 같다.

음..

근데 더 쓸게 없다.


결국 집안일을 했다기보다는 육아를 조금 도와준 것.

그것이다.


요리를 제대로 해본 적도 없고

설거지도 마지못해서 가끔 했으며,

빨래랑 정리는 시키는 것도 제때 못했다.

집안 청소는 못마땅해하면서 해왔었다.


그래 나는 한 번도 내가 집안일을 주도적으로 해온 적이 없었다.

그냥 시키는 걸 마지못해 하거나,

여러 번의 잔소리 끝에 겨우 몇 번의 일을 겨우 해낸 정도다.


그런데 이런 내 삶에 이제는 내가 보조하는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 연출되었다.

우리 집의 경제활동의 주축이 나에게서 아내에게로 넘어가는 과도기가 되었다.


아내가 바깥활동을 많이 하고

일이 많아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집안일과 아이들 양육과 이 모든 것들을 주도적으로 해야 하는 입장으로 바뀌었다.


물론 내가 좋아서 한일이었고,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일이 시작하고 보니 그건 정말 엄청난 착각이었다.


나는 요리도 전혀 할 줄 몰랐으며,

전혀는 아니다. 국 몇 개랑 카레, 짜장, 볶음밥 정도는 할 줄 안다.

그런데 우리 5 식구가 살아가기에 그 정도 수준으로는 택도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정말 절망에 빠졌다.

이걸 어떻게 다하지?

그리고 그동안 나의 아내는 어떻게 이걸 다 해낸 거지?


아.. 정말 존경스러웠고

정말 미안했고,

이제라도 깨닫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한들..

닥쳐진 일들을 해낼 능력이 없음을 깨닫고 또 한 번 절망에 빠진다.


아이들의 밥을 하루에 세 번이나 해줘야 하는데,

뭘 해줘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겠고

정말 뭔지 몰라서 멘붕에 빠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래도 뭔가 해줘야 한다는 긴급함이 나에게 다가왔다.


그래서 겨우 해준 것.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떡볶이.



첫 작품 치고는 꽤 성공적이다.

엄마의 고급 요리 입맛에 길들여져 있지만,

그래도 떡볶이는 그냥 아이들이 다 좋아하는 음식이라서 맛있게 먹어준다.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떡볶이 하나에

나는 작은 자신감을 가지고

아무도 봐주지 않고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지만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에

나 스스로 아내의 도움 없이 해냈다는 자부심에 기뻐한다.



결혼 10년 차,

처음으로 집안일과 육아를 내가 전적으로 담당하게 되었다.


물론 아내가 뒤에서 엄청 도와준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는 내가 있다.

그녀는 없다. 가깝지만 먼 곳에 있기 때문에 이건 나 스스로 다 해내야 한다.

도와줄 부모님도 없다.

오직 나 스스로 해내야 한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이 몇 가지 있다.

그건 남자라면,

아빠라면,

집안일과 육아를 풀타임으로 해봐야 한다.


아이들이 흘린 걸 닦고,

아이들의 짜증을 감내하고,

아이들의 실수를 덮어주고,

나의 실수도 덮어주고,

외로움도 느껴보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된 것 같은 상실감도 느껴보고,

그 상실감이 더 커져서 나의 존재 이유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계속 되풀이한다.

그러면서 일반 남자들이 가질 수 없는 감수성과 공감, 타인을 이해하는 배려를 배우게 된다.


권위적인 남자에서

부드러운 남자로

일을 중요시하는 남자에서

사람을 중요시하는 남자로

조금씩 변하게 된다.


사회에서 일만 해서는 도저히 배울 수 없는 것들을

집안일과 육아를 통해서 배울 수 있다.


아주 쪼끔

젠틀한 남자로 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것이다.



전업주부 초보가

너무 말을 많이 한 듯하다.

집에서 아이들만 보고 집안일만 하다 보니 외로워서 그런 거다.


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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