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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주부대디

짙게 깔린 어둠 뒤의 빛

우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공포

by 김씨네가족

"한 사람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백만 명의 죽음은 통계 숫자에 지나지 않는다"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전 세계가 상당한 공포의 어두움에 사로잡혀 있다. 2020년 2월 4일 기준으로 중국에서 공식 발표된 확진자가 20,471명, 의심환자가 23,214명, 사망자가 426명이다. 중국의 내부통제상황을 감안하면 실제 숫자는 이보다 많을 것이라고 많은 전문가들이 이야기한다.


독일의 소설가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가 한 이야기가 우리의 현실이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는 1차 세계전쟁에 참여하여 자신의 동료가 죽어가는 비극을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했다. 그리고 본인 역시 죽음의 그림자 문턱에서 인생의 허망함과 두려움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다. 전쟁이 끝난 후 많은 이들이 그 결과를 통계의 숫자로 보고 하였을 때 죽음이라는 끔찍하고도 현실적인 문제를 단순한 숫자로 표현되는 단순화에 그는 이러한 표현을 한 것이 아닐까?


중국 우한은 현재 극심한 고통과 두려움 가운데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이러한 상황을 경험해보지 못했지만 다양한 영상과 인터뷰 등을 통해서 그들의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된다.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죽음의 그림자를 지나치게 된다. 그 그림자가 무척이나 가까이 다가올 수도 있고 조금 멀리 자신의 곁을 지날 수도 있다.



나에게도 몇 번의 죽음의 그림자가 내 삶을 덮친 적이 있었다. 키르기스스탄 오쉬라는 지역에서 3년 정도 살았는데 내가 지내던 때에 몇 번의 큰 지진이 발생했다. 다행히 큰 인명피해는 많지 않았지만, 강도 7 정도 되는 지진을 몇 번 경험했을 때 '죽음'이라는 '실제'를 가슴 깊이 경험케 되었다.


그 두려움과 무서움 그리고 내가 삶을 전혀 통제할 수 없고 죽음이 나를 주도적으로 이끌고 가는 느낌은 '죽음'의 위기를 경험한 이들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타인이지만 나의 일부 같은 자녀들의 죽음 역시 가까이에서 경험했다. 한 번은 아들이 가와사키라는 병이 걸렸는데, 처음에는 그 병인지 알지 못하였다고 다양한 검색 및 한국에 있는 의사에게 여러 번 문의한 결과 알게 되었다. 그런데 의사의 말이, 상당히 위험할 수 있고 지금 빨리 조치를 취하기 위해서 가능한 한 빨리 한국으로 귀국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한국에 아는 의사가 나에게 보내준 메시지는 이러했다.

"치료는 대용량의 아스피린과 면역 그로부린을 사용하고 하나님께서 은혜 베푸시면 며칠 치료하면 극적으로 치유됩니다. 합병증은 심장 관상동맥이 부풀어서 동맥류를 만들어지면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빠른 치료가 필요하다는 거였는데, 내가 있던 지역에서 한국으로 가는 건 최소 2일은 걸리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최대한 가는 기간 동안 아스피린을 계속 투여한 덕분인지 아들은 건강히 회복이 되었다. 빠르게 비행기표를 예약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과정은 너무나도 긴박한 시간이었다.


가와사키.jpg [가와사키에 걸렸던 첫째]


재난상황인 우한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교민들의 두려움보다는 덜하겠지만, 최소한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과 공포를 나도 비슷하게 겪었던 것 같다.




둘째 딸도 죽음의 그림자를 지난 적이 있다. 태어난 지 한 달이 되지 않았을 때 숨소리가 이상해서 병원을 데려갔는데 열이 안 난다는 이유로 괜찮다는 의사의 답변을 들었다. 괜찮다는 이야기에 지어준 약을 먹이면서 며칠을 지켜봤는데 뭔가 상당히 찜찜함을 부모로서 느낄 수가 있었다. 그래서 다시 찾아갔는데 여전히 열이 안 나서 괜찮다는 답변을 들었다.


밤에 아이가 숨을 멈추다가 다시 쉬는 걸 보고 너무 이상하게 느껴서 대학병원을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음날 찾아갔다. 의사의 첫마디는 충격적이었다.

" 왜 이제 오셨어요?"


상태가 심각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는 이야기도 함께 해주었다. 준비해야 한다는 말처럼 들렸다.

그리고는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하여 호흡기를 달고, 하루에 2번만 면회를 할 수 있었다.


주은이아플때.jpeg [호흡이 힘들었던 둘째]


정확히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4-5일 이후에야 호흡이 좋아져서 호흡기를 땔 수 있었다. 4-5일이라는 숫자와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짧은 시간일 수 있지만, 그 당시 부모였던 우리에게는 너무나 길면서 또 너무도 짧은 시간이었던 것 같다. 상황이 좋아지지 않을수록 불안감은 커져갔고 그로 인해서 둘째를 더 이상은 못 볼 수 있다는 두려움은 밀려들었다. 그 누구의 위로도 위로가 되지 않았고 그냥 조용히 이 아이를 살려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첫째도, 둘째도 죽음의 고비를 넘길 때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끈질기고 모든 힘을 다하여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사람이 그나마 믿는 의사들이 부정적인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는 의료기술을 의지하지만 그것보다 더 큰 힘을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우리 아이들은 모두 건강히 잘 지내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위기의 상황이 오면(사람들마다 위기라고 느끼는 것이 다른 것 같기는 하다.) 나는 아이들을 잃을 뻔했던 기억과 나의 몸이 함께 반응하는 걸 본다. 그래서 남들보다 더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이미 공식 발표된 사망자수가 426명이다. 이제 시작된 바이러스이므로 앞으로 이 숫자가 더 많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숫자의 증가로 사람들은 두려움과 함께 죽음이 숫자로, 통계로 표현되는 무감각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의 죽음은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다.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숫자로 표현되는 죽음일 수 있지만 저 숫자의 이면에는 많은 이들이 사랑했던 소중한 이들의 죽음이다.


타인의 죽음을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의 죽음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이 깊은 어둠과 끔찍한 재난 앞에 처해 있는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아픔을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인류 역사는 여러 번의 어둠의 그림자를 통과했다. 지금의 두려움과 고통을 인류는 극복해 낼 것이다. 물론 극복한 뒤에 많은 상처와 아픔이 인류 역사에 기록되는 슬픔을 제거할 순 없다.


불안함과 공포와 어두움이 우리의 현실을 옭아매고 있지만, 인류는 여전히 강인하며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헌신적이고 지혜로운 이들이 많다. 누구를 비난하기보다 함께 힘을 모아 이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것이 함께 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 아닐까?


아무리 어두움의 그림자가 짙어도, 그 속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빛줄기를 발견하는 이들이 인류 역사를 계속 이어오게 했던 걸 기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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