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치듯이 시작된 첫 기차여행

그렇게 우리는 SOS를 요청했다.

by 김씨네가족

여전히 코로나의 여파는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바꾸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피부로 직접 느끼는 마스크의 불편함으로부터 시작해서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누구 하나 차별 없이 고난의 끝자락에 와 있다.

계속되는 고통스러운 삶은 삶을 더욱 단단하게 하고 바뀌어진 삶에 익숙하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의 정신력과 체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SOS가 필요한 시점이 있다.

그걸 놓치게 되거나, SOS를 외쳤으나 아무도 응답하지 않으면 트라우마가 되기도 한다.


SOS.png

SOS는 구조를 위한 대표적인 모스 부호이다. ( · · · — — — · · ·) "Save Our Souls, " "Save Our Ship" "Save Our Shelby, " "Shoot Our Ship", "Sinking Our Ship", "Survivors On Shore", "Save Our Seamen"과 같은 낱말들의 머릿글자라고도 알려져 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이 sos의 부호가 간결하고 판별하기 쉽기 때문에 이렇게 정해진 것이다. 195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제전기통신조약 부속 무선 규칙에 의해 세계 공통의 조난신호로 규정되었다. [위키피디아]


SOS는 모스부호 중에서 누구나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간단한 방법으로 표현되었다.

긴급하고 긴박한 상황에서 죽음의 가까이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힘으로 자신의 상황을 주변 사람들에게 알린다.

자신에게 남아 있는 체력도 중요하지만, 알린 메시지를 누군가 듣고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점점 개인화되어가는 사회이지만, 역시 우리 인간은 스스로 살아갈 순 없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

모든 것들이 서로 엮여 있고, 모든 것들이 상호의존적인 관계로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스스로 생존하기 시대에서는 삶이 더욱 각박해질 수밖에 없다.

육아 역시 더욱더 주변의 사람들과 도움을 주고받아야 주양육자가 더욱 힘내서 아이들을 양육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이러한 주고받는 도움을 기대하기 가장 어려운 시기가 되었다.


사회는 급변했고,

육아는 그 급변하는 시대를 따라가기에는 부족한 역량이 많다.

그래서 아이들을 놓지 않는 것에 대해서 그 누구도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음은 분명하다.


지금 시대에 아이들을 키워보니,

왜 아이들을 낳지 않는지 절실히 이해된다.



우리는 지쳤다.

설날 이후로 아이들을 학교와 유치원 어린이집을 보내지 않았다.

3개월째 일하며 아이들을 돌보며 집에서 반복되는 일상을 이겨냈다.


그래 이겨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잘했다는 말은 분명 부족함이 있고,

실패하지 않은 건 분명하고(아이들이 건강히 잘 지내고 있으니)

어려움이 많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오늘까지 살아냈기에 이겨냈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그렇게 3개월을 이겨냈지만 이제는 체력과 정신력이 바닥이 났다.

그래 바닥을 기어가도 살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또 다른 길이 보인다.

그 또 다른 길은 조금 멀리 계시지만 나의 부모님 집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SOS를 요청했다.

그리고 나는 그동안 열심히 달려온 아내에게 쉼을 주고 싶었다.

나와 아이들의 기차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물론 아이들은 구체적인 기차여행의 이유까지 모른다.

그리고 관심도 없다.

그냥 기차를 타니깐 너무 신날 뿐이다.


기차여행.jpg



여행은 기약 없이 떠날 때 가장 설렌다.

왕복 티켓보다는 편도 티켓을 끊을 때 더 기대된다.

무언가 계획하기보다는 환경의 변화에 나의 여행 일정을 던져본다.


우리는 언제 다시 집으로 돌아올지 모른다.

아마 집이 그리워지거나,

이곳의 생활이 무척이나 불편해질 때쯤이겠지?


여행기간 동안,

아이들도

나도

나의 아내도 충분한 쉼과 회복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멋지고 좋은 곳만이 여행은 아니다.

일상에서 벗어나서 조금 다른 삶으로 전환하는 것은 충분히 멋진 여행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과거의 삶으로 회귀하는 것도 괜찮은 여행이 될 수 있다.


부모님 집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온다는 것은,

지금의 일상의 소중함을 더욱 깨닫게 하고

나의 과거의 삶과 지금의 삶을 비교하게 하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성숙했는지를 깨닫게 하기 때문에 큰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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