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가정에서의 의무를 다한 대가로 가족의 사랑을 상실한다
-버트런드 러셀-
부모와 자식관계는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관계다.
가장 사랑하는 관계이면서, 가장 원수 같은 관계가 바로 부모 자식관계다.
서로 가장 사랑하기에도 부족한데 왜 원수 같은 관계로 변하는가?
아마도 그건 버트런드 러셀의 말대로 너무 많은 애정을 쏟은 것 아닐까?
사랑이라는 단어를 빌려 썼지만, 자신의 욕구를 위해서 자식을 이용한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부모와 자식관계에도 적절한 거리가 필요한 듯하다.
토스터마다 다를 수 있지만,
우리 집에 있는 토스터는 3에서 4 정도가 가장 맛있는 토스트를 만들어 낸다.
너무 온도가 높으면 토스트가 많이 타버리고, 너무 온도가 낮으면 토스트가 뭔가 밋밋하다.
물론 그 온도는 토스터마다 다르고 사람마다 원하는 스타일도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온도는 토스터의 생명줄과도 같다.
부모와 자식관계 역시 토스터에서 설정한 온도조절이 필요하다.
아이들은 나이가 어릴수록 높은 온도의 사랑을 필요로 한다.
조금씩 커가면서 아이들은 적절한 온도를 원한다.
그런데 부모는 여전히 높은 온도를 자식들에게 주고선 스스로 상심한다.
아이들은 이제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많아졌는데,
부모들은 여전히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은 자랐으나, 부모는 성장이 멈춘 탓이다.
이제는 조금 더 거리를 두어야 하는데,
부모에겐 여전히 그 거리를 두는 것이 두렵다.
자식과의 관계가 멀어진 게 아니라, 적절한 거리의 길이가 멀어진 것이다.
그 거리가 끊어진 게 아니라 그 거리의 범위가 넓어졌고 길이가 길어진 것이다.
그런데 부모는 왠지 그 거리가 끊어졌다고 느낀다.
이전의 짧은 거리에서의 기억과 추억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추억에서 벗어나서 새로운 거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자녀들이 부모보다 친구를 더 좋아하는 게 아니라,
부모의 관계에서 확장되어 친구관계들까지 넓어진 것이다.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게 줄어든 게 아니라,
더 많은 활동과 관계들을 할 수 있는 시간들로 그 시간을 채워가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관계도 토스터처럼 적당히 태워주는 기술이 필요하다.
3에서 4 정도.
때로는 뜨겁고 열정적이게 자녀들에게 사랑을 주다가도,
때로는 조금 외면하고 거리를 두면서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놓아주는 용기가 필요하다.
적당히 뜨겁고 바삭바삭하면서도 많이 타지 않은 토스트가 맛있다.
그건 토스터의 온도를 어느 정도로 조절했는지의 결과다.
너무 뜨겁지 않으면서도 적절히 뜨거운 온도에서 최상의 토스트가 만들어진다.
너무 뜨겁지 않으면서도 적절히 뜨겁게 자식을 사랑한다면
자식 때문에 상심하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최상의 토스트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적절한 토스터의 온도를 맞추듯이,
부모 역시 자녀들과 적절한 온도조절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