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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주부대디

생존을 위한 거짓말의 유혹

by 김씨네가족

그 누구도 거짓말을 좋아하진 않는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거짓말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우린 모두 생존을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를 설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설득으로 인해서 결국 우리는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거짓과 진실을 가리는데 애써야 한다.


좋고 삶에 도움이 되는 많은 것들은 가르치는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고 하여 아이들이 그대로 흡수하거나 배운다는 보장은 없다. 부모는 노력하되, 자녀들이 배울 수 있기를 기대할 뿐이다.


그런데, 거짓말은 가르치거나 배우는데 전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지 않는다. 물론 그 자신에게는 그 유혹과 진실의 경계선에서 고민하고 마음 졸이는 건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러한 몇 번의 단계를 넘어서면 그다지 어렵지 않게 거짓말하는 걸 배우게 되고 능수능란하게 사용한다.


그 효과를 톡톡히 봤기 때문이다. 역시 배움은 어떤 영역이든 그 배움의 효과에 따라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다.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거짓말의 유혹은 꽤 유용하다는 걸 자연적으로 습득한다. 울지 않아도 될 때에 울었더니 부모님이 달려오는 행동을 통해서 스스로 굉장히 거짓말이 효과가 있다는 걸 몸소 체험하는 거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 현상은 더 심해진다.


형제, 자매간 싸움 뒤에도 그 현장에 없었던 부모님이나 선생님들을 어떻게 설득하고 거짓말을 적절히 섞는지에 따라서 듣기 싫은 혼냄과 꾸중에서 자유로워지는 걸 몇 번 경험하고 나면 아이들은 스스로 거짓말의 능력을 체험하고 그것을 발전시켜 나간다.



분명 같은 식탁에서 아들과 딸 둘과 함께 아침식사를 했다. 나도 분명히 앉아 있었지만 이것저것 챙겨주느라 아이들을 집중하진 못했다. 둘째 딸과 셋째 딸이 뭔가 싸움의 조짐이 보이는 듯하더니 갑자기 셋째가 둘째의 얼굴을 가격한다.


내가 앞에 있었고, 오빠도 있었는데, 분명 무슨 일이 일어나긴 했다. 그런데 그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는 보지 못했다.


셋째는 혼났다. 서럽게 울고 있는데 첫째가 둘째가 먼저 코를 때린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둘째는 때린 적이 없다고 한다. 첫째에게 다시 물어본다. "둘째가 첫째 때린걸 정확히 봤냐고." 그렇진 않다고 한다. 나도 그 전 과정을 보진 못했다.


이럴 때가 제일 난감하다. 분명 셋째가 둘째를 때린 걸 봐서 셋째는 혼났다.

그런데 둘째는 자신은 동생을 때린 적이 없다고 한다.

첫째는 그 과정을 본 것이 정확하지 않다.


뭔가 심증은 있는데 물증이 없다. 증인의 증언도 정확하지 않다.

그리고 추측해서 둘째가 때렸다고 결론 내린다면 둘째는 큰 상처를 입는다.

그런데 실제 둘째가 때렸다면? 셋째도 그냥 많이 억울하다.


이미 셋째는 혼이난 상황이고

둘째의 행동에 대한 어떠한 판결(?)이 필요한데, 판결을 하기 위한(?) 근거와 이유와 증거가 명확하지 않다.

이럴 때는 다음엔 싸우지 말고 서로 때리는 건 나쁜 거야! 정도로 교육하고 마무리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렇게 마무리 하긴 했지만 여전히 뭔가 찜찜한 건 사실이다.

둘째가 한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땐 그냥 믿어주는 게 낫다.

거짓말이었을지라도 믿어준다면, 딸아이는 다음번엔 거짓말보다는 진실을 말하려고 노력하지 않을까?

그리고 의심보다는 아이의 말을 진심으로 믿어주는 게 더 서로의 관계 형성에 좋다고 믿는다.



우린 생존의 위협이 있을 때 거짓말을 한다.

그것이 돈일 수도 있고, 가족부양일 수도 있고, 명예일 수도 있다.

사람마다 삶에 있어서 생존의 의미는 다양하다.


누군가에게는 돈이,

누군가에게는 명예가,

누군가에게는 권력이,

누군가에게는 친구가,

누군가에게는 가족이

누군가에게는 그냥 자기 자신이.

누군가에게는 어떠한 사상과 가치관이.


어린아이들도 자기 나름대로의 생존에 위협이 생겼을 때 거짓말로 그 위기를 모면하려고 한다. 우리 모두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루를 온전히 진실된 언어만 사용하면서 살아간다면 이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모두 어느 정도의 거짓말과 자기 치장으로 삶을 포장하고 있는데, 그 포장을 벗기는 행위는 다른 이들로부터 경계와 위협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우리는 알고 있으면서도 진실보다는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누군가는 생존보다는 진실만을 추구하고 이야기할 때, 오히려 생존에 더욱 가까워지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은 모두가 거짓보다는 진실을 원하기 때문이다. 다만 그 진실을 내가 아닌 남이 이야기해주기를 바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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