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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네가족 Aug 24. 2020

부부도 적절한 거리가 필요하다.

환상적인 아름다움과 따뜻함을 선사할 것 같았던 여행지를 막상 도착해서 지내보면 상상했던 것만큼 좋지 못한 경험들을 많이 한다.

사람들을 여행지로 유혹하기 위해서 잘 만들어진 사진 한 장과 좋은 글에 속아서 일수도 있고,

너무나 큰 기대를 품고 여행지를 떠났는데, 생각보다 그 가는 길이 순탄치 않거나 도착해서 보니 여러 가지 불편한 것들이 많이 생겨서일 수도 있다.

그래도 가기 전에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누구나 여행을 하고 나면 좋은 추억으로 그곳은 남겨진다.


환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사진 속 여행지는 분명 현실과 적절한 거리가 있다.

이 적절한 거리가 우리로 하여금 더욱더 여행을 갈망하게 만든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왜 결혼을 하는 걸까?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상상 속 결혼은 어떻게 형성되었꼬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걸까?


적절한 거리가 있는 연애관계를 깨부수고

더 이상의 거리는 존재하지 않는 결혼관계속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무슨 이유로 결혼을 하는 걸까?


결혼하기 전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아마 이러한 생각을 깊게 했다면 결혼을 못했을 수도 있고, 하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이다.

다행인 것은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결혼해서 어찌어찌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막상 결혼을 해보니,

그 적절히 있던 거리를 깨부순다는 것이 절대 평범하고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지키려 한다.

그 지키기 위함에는 보호막이라는 적절한 거리가 있는데, 결혼은 이 보호막을 완전히 없애버린다.

자신의 발가벗은 모습과, 남들에게는 감추었던 모든 모습이 온전히 드러난다.

그 온전히 드러난 나의 누추한 모습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결혼이다.

내 문제만 드러내는 건 그나마 괜찮은 것 같은데, 내가 기대했던 아름다운 그녀(그)의 누추한 모습을 직면해야 하는 것도 역시 결혼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여기서 실패한다.


나의 누추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 까진 괜찮은데,

내가 사랑했던, 그리고 정말 사랑하고 싶은 그(그녀)의 누추한 모습까지 직면하려니 너무 괴로운 것이다.

그리고 그 누추한 모습이 바뀌지 않고 죽을 때까지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사실을 결혼하기 전에는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미 일은 저질렀다.

거기다가 저지른 일로 인해서 나랑 상대방과 비슷한 또 하나의 인격체가 태어난다면..

이건 더 이상의 답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어차피 답은 없다.

그저 다시금 연애시절처럼 적절한 거리를 둘 수 밖에는 없다.

그런데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이,

거리를 두는 것이 그(그녀)를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우리에게 거리는 필요하다.

그 거리에 대한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거리를 둔 상태에서 거리를 가깝게 하는 것과,

계속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과는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큰 차이가 난다.


어떤 시한폭탄을 둘이서 꽉 껴안고 있는 상황에서,

그 시한폭탄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꽉 껴안고 있는 팔을 먼저는 느슨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그 시한폭탄을 서로 이야기하면서 조심히 내려놓는 게 필요하다.


그렇게 내려놓은 시한폭탄을 조금 떨어져서 본다면,

그리고 전문가들에게 그 시한폭탄을 제거해 줄 것을 요청한다면,

의외로 그 시한폭탄은 폭탄이 아니라 둘을 잘 살게 해 줄 수 있는 기막힌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도 있다.


우린 누구나 그 폭탄을 꽉 껴안은 채, 서로 더 껴안으면서 그 폭탄을 제거하려는 듯하다.

더 꽉 껴안으면 폭탄은 터진다.

오히려 조금 떨어지는 게 필요하다.


사랑에는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하는데,

하나는 자신이 원하는 어떠함을 얻기 위함이고

또 하나는 상대방이 원하는 것을 온전히 주는 거다.


이 두 가지에 대한 감정은 상당히 뒤섞여 있어서 본인 조차 어떠한 것을 원하는지 모를 때가 많다.

그래서 정확한 본인의 감정을 읽기 위해서는 적절히 떨어지는 시간과 거리를 두는 게 상당히 도움이 된다.


더욱 친밀하고 사랑스러운 관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폭탄을 터트리기보다는 폭탄을 제거하는 게 필요한데,

그러기 위해서 아프지만 잠깐 떨어져 지내는 것도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는데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이 황금시기를 놓쳐서 서로 떨어지는 시간을 가진다면,

영영 떨어질 수도 있다.


감정이 더욱 손상되기 전에

나 자신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 최소한 알 수 있는 상황에서

적절한 거리두기는 부부관계에 있어서 긍정적인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문제를 어디 창고에 처박아 두었다면, 적절한 거리두기가 아닌 격리, 그리고 더 심한 상황까지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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