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주부생활을 위해선 조금은 사치스러운 취미활동이 필요하다.
어떤 일이든 어떤 마음으로 그 일을 대하는지가 중요하다. 오랫동안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통해서 일을 해왔던 나는 주부생활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저 막막했다. 외로움인지 고독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 애매한 경계선에서 나 자신을 찾지 못해서 방황하는 게 다른 그 어떤 것보다도 힘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 더 이상 이 일을 뒤로 미룰 수도 없고 다른 일을 하기에 너무 많이 와버렸다. 그렇다면 그저 이 주부일을 나의 본업으로 삼고 이 안에서 어떻게 행복하게 살지를 고민하는 게 조금 더 내 삶을 윤택하고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에서 얼마 전 시작한 운동이 있다. 바로 보드. 그것도 롱보드. 보통 여자들이 많이 타는데, 남자들도 적지 않게 많이 탄다. 스피드감이 있어서 아주 재밌게 탈 수 있다. 무엇보다도 공원에서 아이들은 킥보드나 인라인, 자전거를 탈 때 같이 탈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그리고 운동이라는 것이 사실 스스로 하기에는 어려운데, 아이들 덕분에 의지박약인 나에게 운동을 할 수 있는 엄청난 동기부여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원래는 수영을 배웠었는데, 지금과 같이 실내 운동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정말 이만한 운동이 없는 듯하다. 재미도 넘치고 아이들과도 함께 할 수 있고, 무엇보다도 한참 달리다 보면 확실히 정신이 맑아지고 스트레스가 사라지는 걸 느낀다. 거기다가 땀에 흠뻑 젖어 있는 나를 보면 왠지 모를 뿌듯함과 함께, 아직 죽지 않았다는 자부심까지 든다.
즐거운 주부생활을 위해선 조금은 사치스러운 취미활동이 필요하다.
주부생활을 즐겁게 잘하기 위해선 일상에 있어서 약간의 변화를 주는 게 필요하다. 모든 일들이 대부분 비슷한 일상의 반복이지만, 주부는 더욱 이 일상의 반복이 최고조에 달한 직업인 듯하다. 그래서 쉽게 이러한 삶의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다. 주부생활 초기에는 이것저것 배우기도 하고 자기 계발도 하지만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그냥 익숙한 삶에 자신을 그저 별 볼 일 없는 평범한 주부로 만들어 버리는 위험에 노출시킬 수 있다. 이러한 노출에서 자신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서는 조금은 일상에 특별함과 변화를 줄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
주부의 일상과 상관없는 다른 어떤 것. 그것을 취미로 해야 한다. 그게 건강을 위한 것일 수도 있지만, 단순히 건강을 위해서만 한다면 쉽게 지칠 수 있고 오랫동안 지속하기 힘들 수도 있다. 그래서 약간의 돈이 들어가면서 재미도 있는 무엇이어야 한다.
나는 그중에서 이 롱보드를 선택했다. 당연히 장비는 좋은 걸로 뽑아야 한다. 그래야 오래 탈 수 있고 왠지 투자한 게 아까워서라도 열심히 탄다. 이렇게 시작한 지 1개월은 지난 듯하다. 이제 제법 빠르게 달리기도 하고 조금씩 묘기 비슷한 것도 시도해본다.
40의 나이에 롱보드는 너무 늦은 거 아닌가?라는 생각은 전혀 합리적이지도 어떠한 합당한 근거도 없다. 그저 이러한 취미가 나에게 유익이 되고, 거기에다가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놀이라면 더더욱 좋을 따름이다.
주부생활이 점점 행복해지기 시작했다.
롱보드를 신나게 타면서 느낀 점이 있다. 이전에 정장을 입고 회사에서 열심히 키보드 앞에서 씩씩거리면서 일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출퇴근길에 4시간을 쏟아붓던 그 곤욕스러운 시간도 생각이 났다. 기껏해야 점심시간에 산책할 수밖에 없었던 제한된 자유 속에서 자유를 꿈꾸던 그때가 생각이 났다.
그러면서 그토록 원했던 자유와 시간이 주어졌는데, 이 시간들을 잘 누리지 못했던 나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하나씩 주부생활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엔 주부라는 어려운 숙제를 생존의 문제로 인식했는데, 조금씩 익숙해지고 여유가 생기면서 취미생활까지 할 수 있는 나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이전에 받았던 사회적 위치에서 오는 나 스스로의 정체성에서 벗어나서 이 순간을 즐기고, 자연 속에서 아이들과 함께 무엇보다도 소중한 이 순간순간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 주부생활 꽤 매력이 넘치는데? 하는 생각으로 바뀌게 되었다.
역시 모든 건 생각하기 나름이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지가 중요한 듯하다. 그리고 그걸 실천할 수 있는 약간의 노력만 있으면 의외로 세상 모든 일들은 즐겁고도 행복하게 바뀔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정말 힘들 수 있는 일이더라도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익숙해지고, 그 가운데서 미처 다른 데서는 발견하지 못하는 즐거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걸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