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최전선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의료진 덕분에 여전히 우리에게 희망은 남아 있다. 군인이 최전선에서 치열한 전쟁을 하는 이유는 최후방어선 뒤에 있는 국민을 안전히 지켜주기 위해서다. 최전선에서의 전투도 중요하지만, 최후방어선을 어떻게 지켜내는지가 전쟁의 마지막 승패를 결정한다. 코로나 전쟁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시끄러운 게 당연하다. 그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했고,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 매일 발생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장 두려워하는 게 불안인데, 코로나는 이 사람들의 불안의 심리를 극도로 자극한다. 누구나 코로나 19에 감염될 수 있고, 누구나 코로나 19로 인하여 심한 후유증을 앓을 수도 있고, 심한 경우에는 죽음에 이르기까지 하기 때문이다. 죽음 앞에서 불안하지 않다면 그는 더 이상 이 땅에 존재하지 않아도 될 듯 하니 모두가 불안하다는 건 기정사실임에는 분명하다.
그렇다고 불안해할 수만은 없다. 우리는 이 코로나 19에 맞서서 삶을 살아내야 한다. 오늘도 하루가 주어졌고, 어제와는 너무도 다르고 기존에 내가 살아왔던 삶의 방식과도 너무나 다른 삶이 숙제로 주어진다. 그리고 이 숙제를 성공적으로 마친 모범생이 우리 주위에 없다. 아니 이 숙제를 내 준 선생이 누군지 조차 알지 못한다. 그러니 지금의 상황이 혼돈의 상황임 또한 분명하다.
거리두기 2.5단계로 격상되면서 아이들을 다시 학교, 유치원,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게 되었다. 첫째인 아들은 원격수업을 해야 하고 둘째와 셋째는 그 사이에서 오빠가 원격수업을 열심히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를 해줘야 한다. 이 일을 잘해 낼 수 있는 전업주부가 얼마나 될까? 이 일이 어려운 일은 난생처음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첫째 아이의 원격수업을 봐주면서 둘째, 셋째의 놀이도 함께 챙겨줘야 한다. 나이차가 있기 때문에 같은 내용을 공부할 순 없다. 1인 3역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초등학교 아들의 원격수업은 생각보다 빨리 끝난다. 그리고 혼자서 의외로 잘 해낸다. 큰 도움 없이 스스로 할 수 있다. 아마도 아이들은 어른보다 새로운 걸 배우는 게 익숙하고 빨라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이것만 한다면 굳이 코로나의 최후방어선이 주부가 책임진다는 조금은 거창한 표현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유치원 선생님과 어린이집 선생님, 그리고 학교 선생님들은 가르치는 일만 열심히 하면 된다. 아이들 간식과 점심, 그리고 청소는 직접 하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전담 선생님들이 계신다. 역할이 분리되어 있다. 그리고 그 역할을 하루 종일 하지는 않는다. 쉬는 시간도 있고 잠깐 여유를 돌릴 수도 있다. 물론 주부도 어떻게 시간관리를 하는지에 따라서 이게 가능하다. 그런데 이러려면 대단한 정신력과 집중력 그리고 여러 노하우도 필요하다.
코로나 19 이전의 전업주부는 아침에 집중적으로 바쁘고 저녁 이전에 아주 바쁘다. 그리고 낮 시간도 이래저래 바쁘다. 그런데 코로나 19 이후의 전업주부는 어떠한 시간을 정하지 못한다. 그냥 계속 바쁘다. 쉼 없이 일하고 쉼 없이 움직인다. 그래서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금세 무너져 버린다. 이 무너짐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내가 코로나 19의 최후방어선에서 나라를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이라도 가진다면 조금 낫지 않을까? 아니, 그런데 실제가 그러하다.
코로나 19가 격상되고 나서 우리 아이들을 봐줄 수 있는 곳이 사라졌다. 학교도 문을 닫고, 유치원도 어린이집도 문을 닫았다. 그럼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을 누가 봐줄 수 있는가? 결국 부모뿐이다. 그것도 전업주부가 아니면 지금의 상황을 대처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냥 그런 전업주부가 아닌 집안에서도 하루를 아이들과 잘 지낼 수 있는 전업주부여야 이 상황을 이길 수 있다. 이게 과연 쉬운 일일까?
오늘의 일과를 잠깐 살펴보면 쉽지 않음을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아침 6시에 일어나서 개인적으로 매일 하는 활동을 한다. 그리고 7시부터 집안 이런저런 일들을 시작한다. 밥을 하고 빨래를 돌리고,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한다. 글로 쓰니 짧게 끝나버렸는데, 이 일은 그렇게 짧게 끝나는 일이 아니다. 아무튼 이렇게 아침을 준비하고 아이들과 아내를 챙겨준다. 그리고 나면 아내는 집을 떠난다. 집을 떠났다는 표현보다는 우리 집의 기본적인 경제활동을 책임지기 위해서 잠시 바깥에 나갔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그러고 나서 첫째 아이의 원격수업을 봐주고 둘째, 셋째에게 할 일을 준다.
이제야 겨우 샤워를 한다. 그리고 남아 있는 설거지도 하고 분리수거도 한다. 이 분리수거는 왜 이렇게 매일 많이 쌓이는지 잘 모르겠다. 5명이 이렇게 많은 쓰레기를 배출하는데, 지구에 얼마나 쓰레기가 많을지 괜히 쓸데없는 걱정까지 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나의 생활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노력까지 하기에는 조금 벅차다. 일단 내 멘탈이라도 잘 지켜내는 게 지구의 안전을 지키는 거라고 스스로 위안한다.
샤워하는 중에 셋째가 다가온다. 언니가 자기 그림에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그래. 아빠 샤워하고 있으니깐 조금 기다려!.” 이렇게 달래주고 급히 샤워를 마친다. 샤워도 천천히 할 여유를 찾기가 쉽지 않다. 언제 어떤 사건이 발생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저 여유 있게 샤워했으면 그것 하나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운 하루가 될 수 있다.
그렇게 어찌어찌 내 할 일을 끝내 놓고 첫째 아이의 원격수업도 끝이 난다. 이제 나에게 정말 잠깐의 휴식시간을 준다. 커피와 글쓰기. 그것을 위해서 미안하지만 잠깐 넷플릭스 키즈채널의 힘을 빌려온다. 예전에는 유튜브를 활용했는데, 넷플릭스가 더 괜찮은 듯하다. 첫째는 로블록스라는 재미난 게임의 환상 속으로 잠깐 빨려 들어간다. 그렇게 아이들에게 1시간의 마약과도 같은 시간을 선물로 부여해준다. 아니 사실 아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시간이다. 더 좋은 대안이 없어서 미안한 마음은 가지고 있지만, 이것마저 없으면 전업주부를 잘 해내기가 어려울지도 모른다는 왠지 모를 불안감에 그저 나에게 허락해준다.
그렇게 주어진 시간에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1시간 안에 커피도 마시고 글도 마쳐야 하니 좋은 글이 나오기는 힘들겠지만, 솔직하고도 그저 하루를 살아가는 나의 평범하고도 의미 있는 시간들에 대한 글은 쓸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자유시간이 끝나면 그때부터 또 긴장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오늘의 점심은 카레를 준비했다. 카레를 위해서 이 자유시간이 끝남과 동시에 나는 또 분주히 움직인다. 앞에도 언급했지만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에서는 각자의 역할이 분리되어 있다. 요리사는 요리를 하고 선생님은 아이들을 가르치면 된다. 그리고 관리인은 학교의 이것저것을 관리하고 수리한다. 그래서 자기 일에 집중하면 학교, 어린이집, 유치원은 잘 운영된다.
그런데, 집은 그렇지 않다. 요리를 하고 있는 중에 둘째와 셋째가 싸우기도 하고, 셋 모두 싸우기도 한다. 그럼 잠깐 요리는 중단되고 아이들의 다툼을 중재해야 한다. 그것뿐인가? 요리 재료를 사기 위해서 장을 봐야 하는데, 아이 셋 다 끌고 다니면서 장보기는 여간 쉽지가 않다. 그래도 해야 한다. 이 고통이 심해지면 먹지 않고 살 수 없을까?라는 말도 안 되는 고민을 하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코로나 19라서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내지만, 계속 집에 있을 순 없다. 아이들은 에너지가 넘쳐나는데, 이 넘치는 에너지를 집에서만 가두어두기에는 서로가 힘들 뿐이다. 그래서 중간에 잠깐의 산책이나 킥보드를 타거나 자전거를 타는 시간을 갖는다. 어른은 이런 운동을 하고 나서도 스스로 씻고 자기 관리가 되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다. 바깥활동 이후에 다시 씻겨줘야 하고 머리도 말려주고, 할 일이 많다. 이 할 일이 끝나고 나면 저녁을 준비한다. 저녁 준비 역시 점심과 똑같다.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른다. 문제는 이 시간쯤 되면 체력이 거의 바닥이 나있다는 것이다. 체력뿐 아니라 정신력도 이미 상당히 소진되어 있다. 이때가 가장 위험한 때이다.
이 위험한 고비를 잘 넘기고 나면, 그때는 정말 모든 게 귀찮아진다. 쌓여있는 설거지를 보는 것 자체가 역겨운 기분이 들 때가 있다. 그 역겨운 기분을 다시금 활기차게 바꾸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신력과 생각의 빠른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다 전업주부는 체력보다는 정신력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그렇게 쌓여있는 저녁 설거지까지 끝내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시긴이 온다. 이때쯤 되면 그래도 괜찮다. 조금은 여유롭게 소파에서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책도 읽어주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면서 하루를 마감한다. 곧 아이들은 잠을 청할 것이고 그 이후에 나만의 시간이 주어진다는 희망 덕에 이 시간이 조금은 희망적인 시간이 된다.
그렇게 아이들과 집을 위해서 거의 모든 걸 소비하고 나서 다시금 나를 충전한다. 그리고 오늘과 똑같이 상당히 고된 하루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방전된 체력을 다시 보충하기 위해서 침대 속으로 빨려드려 가듯이 잠을 청한다. 이렇게 전업주부의 일과는 마무리된다. 그저 평범한 주부의 일상 같지만, 이 평범한 일상 덕분에 우리 아이들이 코로나 19로부터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음에 삶의 보람을 느끼게 된다. 비록 전업주부의 일과를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지만, 전업주부들은 알고 있다. 우리가 코로나 19를 지키는 마지막 최후 방어선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