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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네가족 Dec 27. 2020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하는 이유


누구나 삶을 살아간다. 그렇다고 삶에 모두 의미를 부여하진 않는다. 어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기반으로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어떤 이들은 여러 사람들의 의견에 자신의 생각을 조금 추가하여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때로는 이런 의미 부여보다는 그저 하루하루 겨우 버티면서 살아가는 사람도 상당수다.


삶에 있어서 의미를 부여한다는 건 상당히 큰 의미가 있는데 특별히 그 의미를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진정으로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자세가 된다. 지금의 세상은 이전과는 다르게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서로가 서로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이전보다 더욱 많이 준다. 이런 시대에는 더욱더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의미를 보유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러니 대부분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행위 자체를 포기하거나 그저 남들이 만들어 놓은 그럴싸한 의미들을 자신의 삶에 부여하고 살아간다.


그건 자신의 삶이 전혀 아니다. 남들의 삶도 아니고 그저 의미 없이 살아 있으니 겨우 버티거나 생존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 물론 버티거나 생존하는 것 역시 큰 의미가 있다. 삶에 있어서 버티거나 생존의 중요성을 간과해서 삶 자체를 저버리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누구나 여기에서 예외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예상치 못한 불행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지속된다면 이러한 상황을 버틸 수 있는 인간은 찾아보기 어렵다. 특히 큰 성공을 거둔 이들에게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걸 보면 인간은 역시 크게 대단한 사람도 크게 부족한 사람도 없이 그저 자신의 삶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지기에도 연약한 존재임을 깨달을 수 있다.


성공 뒤의 허무함과 허망함뒤의 두려움 때문에 성공 자체를 평가절하하거나 그러한 위치에 있는 사람을 깎아내리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행위 역시 아름답지 못하다. 아니 아주 비굴하고 구차한 행동이다. 그럴 시간에 자신의 삶을 성공의 근처까지 끌고 가는 것이 더 삶을 아름답고 귀하게 대하는 태도다.


자신의 삶에 자기 자신만의 고유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은 결론적으로 성공이라는 결과물을 얻게 된다. 성공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영역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김연아의 화려한 성공스토리를 대부분 알고 부러워하지만 그녀와 동일하게 살아볼 것을 권유한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제안을 거절한다. 결과물의 화려함 뒤에 숨겨져 있는 수많은 고통과 상처 인내들을 감당하기에는 본인에게 너무 벅찬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크게 보이는 성공뿐만 아니라 삶의 작은 일 역시 이 성공의 법칙은 예외가 없다. 아침에 일어나서 침대를 정리하는 데 성공하는 일, 운동을 하기로 마음먹었는데 1년 이상 꾸준히 해내는 일, 사랑하는 사람에게 크리스마스, 연말, 연초에 편지를 써주는 일, 소중한 사람들에게 나의 마음을 표현하는 일, 잘못을 깨닫고 그 잘못에 대해서 솔직하게 사과하는 일 등.. 작고 크게 느껴지는 모든 일상에서 일들을 해내고 성공적으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인내와 참음, 상처 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을 내려놓는 일 등이 필요하다.


 나는 오늘 내 삶에 어떤 성공을 거두었는가? 그 성공이라는 단순한 단어 뒤에 숨어 있는 의미부여는 어떤 것이었는가?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가? 내일은 분명 오늘보다 더 의미 있는 삶으로 변해있을 것인가? 1년 전과 오늘의 나는 변화하였는가? 


나이가 들었는데 변화가 두렵고 어렵다면 그건 분명 삶에 대한 의미부여를 다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0대가 30대 또는 20대 시절 꿈꿔왔던 이상을 지금도 실현하려고 한다면 아마도 삶에 대해서 의미를 부여하는 행동을 어느 순간 귀찮아서 버렸을지도 모른다. 


삶을 살아가는 이들은 많고 이전에 부여했던 삶의 의미를 붙잡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어제와는 달라진 오늘에 어제 부여했던 삶의 의미를 붙잡고 있다면.. 그리고 달라질 내일 오늘의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면... 그리고 계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지금의 이 순간을 과거에 매여산다면..그는 삶을 그저 버티거나 생존하는 수준에 머루를지도 모른다. 아니 버티거나 생존이 아닌 퇴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하다.


삶에 어떤 의미부여를 하는지에 따라서 삶은 여전히 아름답고 고귀하고 기대감과 행복감으로 넘쳐날 수 있다. 여전히 정복해야 할 삶의 영역은 넓고 내가 경험하지 못한 삶은 여전히 넘쳐난다. 죽음이 내 삶을 마감하기 전까지 나에게 주어진, 그리고 주어질 수 있는 삶의 다양한 영역을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왜 마다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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