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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네가족 Jan 28. 2021

언제쯤 집안일이 익숙해질까?

고비의 순간은 대부분 저녁에 찾아온다. 어떤 날은 계획이 틀어질 대로 틀어지고 일이 꼬일 때로 꼬여서 저녁시간이 되면 이미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거의 탈진한 상태가 된다. 그런데 그런 나의 상태와 아무런 상관없이 자기들을 제자리에 놓아달라고 집안 구석구석 아우성을 친다. 도대체 언제쯤이면 집을 AI 같은 로봇이 나와서 자동으로 깨끗하게 해 줄 수 있을까?라는 쓸데없는 생각도 못한 채 그저 멍하니 쌓여있는 일들을 쳐다볼 뿐이다. 어디 그뿐인가? 왜 하필 이런 날 아이들은 서로 싸우고 짜증내고 평소보다 더 말을 잘 안 듣는 것 같을까? 사실 아이들은 원래 어른들의 말을 잘 안 듣는데 그날의 컨디션에 따라서 더 잘 안 듣는 것처럼 느껴질 뿐인데 말이다. 


 그렇다. 대부분 집안일이 평소보다 더욱 고된 날은 이 느낌 때문이다. 뭔가 일이 꼬였고 내 뜻대로 되지 않은 날은 감정이 엉망진창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모든 일들이 과장되어서 해석되고 여전히 아이들은 이쁘고 사랑스럽지만 나의 눈에는 그 이쁘고 사랑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는 시선은 이미 저기 멀리 달아나고 있다. 아니 붙잡기 힘들 정도로 너무 멀리 가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나의 시선을 그나마 눈치챈 큰 아들이 동생들을 잘 봐주려고 하고 동생들도 어느 정도 눈치를 볼 때면 괜히 미안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렇다. 그런데 그런 마음이 들더라도 이 집안일을 아이들이 해주진 못한다. 쌓여있는 일들을 누군가는 오늘 해야 하는데 그걸 할 사람이 나뿐이다.


 그저 거실 한구석에 누워서 멍하니 나의 처지를 바라본다. 괜히 우울해지기도 하고 슬픔에 빠지면서 우울하고 슬픈 노래들을 더욱 듣고 싶어 진다. 일들은 계속 뒤로 미룬 채 온갖 유혹에 빠져든다. 그런 유혹들은 더욱더 나를 무기력하고 힘없이 만들어 버린다. 뭔가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그럴 힘이 나에겐 전혀 없다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속삭이는 나쁜 녀석의 말을 자꾸만 듣고 싶고 믿고 싶다. 결국엔 그 녀석의 말을 믿고 행동으로 옮긴다. 그런데 여전히 마음속 구석은 불편하고 기분은 나쁘다. 괜히 아이들에게 나의 기분 좋지 않은 불똥이 튈까 봐 최대한 아이들을 빨리 재우는 게 나의 지금의 최선이라고 우겨된다. 그렇게 아이들은 평소보다 더 일찍 강제적으로 잠자리에 들어야 한다.


 각자의 침대로 가니 아주 조금 여유가 생기는 것 같다. 그래도 여전히 쌓여있는 집안일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어디선가 힘을 얻어야 하는데 힘을 얻을 데가 없다. 이미 마음속은 온통 어둠 속으로 가득 차 있어서 한줄기 빛이 필요한데 그 빛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도와줄 수 있는 이도 없고 스스로 이 어둠 속에서 헤어 나오기란 여간 어렵다는 설득만 계속 스스로 당하고 있다.



 빛을 찾아야 한다. 빛은 분명 내 안에 존재한다. 그것을 끄집어내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 그나마 조금 희미하게 남아 있는 의지의 빛을 활용해서 일단 푸시업을 시작한다. 이건 매일 하기로 했으니 오늘 모든 걸 실패하더라도 이것 하나만이라도 성공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일단 어렵게 시작한다. 가슴을 땅바닥에 내리고 올리고를 반복하고 팔에 힘이 들어가면서 꽤 힘들어지는 순간을 겨우 넘긴다. 그렇게 목표로 했던 개수를 채우고 나니 정말 내 속에 빛이 조금 보이기 시작한다. 모든 걸 실패한 것 같지만 이 순간 이 운동만큼은 성공했다. 그리고 그 성공의 힘이 내 안에 있었던 빛을 조금씩 밝혀준다. 그 빛의 도움을 얻어서 조금씩 엉망진창인 집안일을 하나씩 해내간다. 그렇게 운동으로 얻은 빛을 모두 소진하고 나니 집안이 어느새 정리가 되어 있다. 이렇게 정리된 걸 보니 또 다른 힘이 생긴다. 그리고 마음의 여유도 얻게 된다. 이제 겨우 정신이 들어서 주부의 고단함과 함께 이전보다 조금 나아진듯한 나의 모습에 괜히 칭찬을 해준다.


 집안일이란 게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삶이란 게 꽤 어렵고 복잡해서 그 어렵고 복잡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이 집안일을 하루도 빼놓지 않고 해야 하는 게 어렵다. 그래 겉으로 보기에 집안일은 쉬워 보일 수 있지만 삶이란 건 누구에게나 꽤 버겁고 힘겨울 수 있는데 그러한 버겁고 힘겨운 삶을 어깨에 메고 있으면서 단순하고 쉬워 보이는 집안일을 하기 때문에 그 단순하고 쉬워 보이는 집안일의 무게는 삶의 무게에 가중치가 붙어서 보통일보다는 훨씬 힘든 일이 되는 거다.


 이제는 이러한 게 익숙해질 때도 된 것 같은데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걸 보니 정말 어려운 일임에는 분명하다. 유튜브를 가끔 보면 집안일을 아주 아름답게 묘사했는데, 여전히 그렇게 아름답게 집안일을 꾸준히 해내는 주부들을 보면 정말 존경스럽다. 오롯이 자기 스스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이들만이 해낼 수 있는 일이라 더 가치가 있고 위대한 일임에는 분명하다. 그래도 그 위대한 일을 너무 늦지 않은 시기에 시작했다는 것을 위로로 삼아 본다. 이 위로의 끝에는 분명 나도 위대한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놓지 않은 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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