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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네가족 Feb 22. 2021

클럽하우스, 인싸와 아싸 그 어디쯤...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우리는 지극히 단편적인 모습만을 볼 수 있고, 그 또한 상당히 왜곡된 모습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왜곡은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일 수도 있고 스스로 속였을 수도 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 왜곡은 결국 드러나게 되어 있는데, 그렇게 우리는 사람들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또 그 실망을 다시금 회복하기 위해서 무리한 기대를 걸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사람이 된다는 건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다. 그 반면에 많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고 외롭게 사는 건 상당히 슬퍼 보이는 일이기도 하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이러한 단순함으로 인해서 어떤 이들은 인싸가 되기 위해서 상당히 노력을 하고, 인싸가 되기를 포기하고 그냥 아싸로 지내기도 한다. 사실은 인싸나 아싸 그 어떤 것도 사람을 정의하고 평가할 수 없는데 사람들은 단순히 인싸와 아싸로 쉽게 평가하는 걸 선호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새로운 걸 좋아한다. 그래서 클럽하우스가 나왔을 때 열심히 구경하고 참여도 하고 나름 중독되기도 했다. 지금은 중독에서는 벗어나서 스스로 관리하면서 사용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다. 어떤 전문적인 그룹에서 내가 발언을 했을 때 그 발언의 매력에 의해서 나를 팔로우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괜히 더 인싸가 되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는 걸 발견했다. 그러한 욕망은 나를 더 포장하고 더 있어 보이게 만들기 위한 채찍질을 더했다.


 반면에 그저 아무 목적 없이 친목을 위해서 만난 방에서는 나의 발언에 힘을 들이지 않았다. 좀 더 솔직한 이야기들을 나누었고 다른 사람들이 나를 팔로우 하든 그렇지 않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그 방에 있는 게 좋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다. 오히려 프로필을 보고 나를 쉽게 규정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프로필을 더 간단하고 단순하게 바꾸게 만들었다. 


 우리는 누구나 인싸가 되고 싶기도 하고, 또 아싸가 되고 싶기도 한다. 인싸들은 팬이 많아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가 없다. 감출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고 더 포장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다. 팬들이 그걸 원하기 때문에 그 팬들을 잃지 않기 위해서 포장과 과장과 스스로에게 없는 걸 있는 것처럼 보여 주어야 하는 쓸데없는 책임감 같은 게 생긴다.


 아싸는 그런 면에선 아주 자유롭다. 팬이 없기에 포장할 것도 과장할 것도 없다. 스스로에게 있는 걸 그대로 보여주어도 이미 기대할 어떤 수준이 없기 때문에 실망할 사람들도 없다. 그래서 어떤 측면에서 보면 인싸들이 더욱 외롭고 아싸들은 덜 외롭다. 외로움이란 건 많은 사람들이 주위에 있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 자신을 진정으로 드러내고 그 진심을 상대방이 알아줄 때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인싸도 외롭고, 아싸도 외롭다. 그저 인간은 모두 외로운 존재다. 진심을 알아주길 원하지만 사실 그 진심을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은 찾기 쉽지 않다. 그저 외로워서 인싸가 되고 싶다면, 외로워서 아싸인데 그 외로움을 벗어나기 위해서 인싸가 되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그 어디에서도 외로움을 해결하진 못한다.


 그저 인간은 어떤 상황에 있든 외로운 존재라는 걸 깨닫는 게 더 유익하다. 그리고 그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게 낫다. 그런데 외로움에서 고독으로 넘어가는 방법을 어떤 사람도 가르쳐 줄 수 없다. 오직 스스로 배워야 하는 것이기에 이러한 고독의 가치를 배우기에는 인싸든 아싸든 출발점이 똑같다.


<클럽하우스에서 외로움은 달랠 수 있지만, 고독은 배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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