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대기조보다 더 열악한 주부의 상황
군대에 5분 대기조란게 있다. 최근에는 이 용어를 신속대응부대, 신속대응조, 즉각 출동조라는 용어로도 사용한다. 용어에서 알 수 있듯이 언제든지 긴급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는 부대, 팀이다. 이들은 언제든지 출동해서 다양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긴장된 상태와 완벽한 복장을 갖추고 있다.
아이들이 커가면 조금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지만, 아이들이 어릴 때 주부는 이런 5분 대기조와 같다. 아니 사실 이보다 더 심하다. 5분 대기조는 팀이라도 있지만 보통은 홀로 아이들의 다양한 요구를 즉시 들어주거나 필요를 채워줘야 하는 상황이 수시로 발생한다.
군대에서 이 5분 대기조는 일정기간이 있다. 그 기간에 긴장하고 대기하고 항상 출동준비를 갖추고 있지만, 주부들은 이 일정기간이 없다. 마라톤보다도 더 장기적인 시간에서 긴장한 상태로 항상 대기하여 여러 필요들을 채울 준비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사람은 이렇게 장기간 계속 반복적인 요구에 응할 수 있을 만큼 강인하지 않다. 누군가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서는 자신도 필요를 채움 받아야 하고, 그 필요가 다 떨어졌을 때는 재충전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필요로 하는 요구를 채워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역효과가 많이 발생한다.
그 역효과는 짜증, 화, 분노 등으로 표출된다. 가끔 짜증 낼 수 있고 가끔 화낼 수 있고 가끔 분노를 표출할 수 있지만 이러한 현상이 지속적으로 반복되고 있다면 자신이 필요를 채워야 하는 시기라는 신호로 인식해야 한다. 그 어떤 부모도 완벽하지 않다. 완전하지도 않다. 부모는 모두 그저 부족할 따름이다.
다만 아이들보다 그 부족함을 스스로 채울 수 있는 능력이 조금 더 많고, 아이들보다 조금 더 세월의 힘겨움을 지나 봤기 때문에 조금은 앞선 입장일 뿐이다. 신체적으로 크고 정신적으로도 경험이 많고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아이들보다는 조금 앞서있지만 그 앞서 있음이 채움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세상의 많은 소리들과 요구들에 잠시 귀를 닫는 것이 필요하다.
많은 육아 서적들이 넘쳐난다. 많은 전문가들이 부모는 이러해야 한다고 외친다. 그리고 주변에서도 이런저런 다양한 조언과 이야기들을 한다. 그렇지만 그들이 직접 와서 우리 아이들을 봐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나의 일을 대신해 주지도 않는다. 무엇보다도 나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해 줄 수 있는 이는 사실 그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잠시 귀를 닫을 필요가 있다. 육아서적들은 저 멀리 던져버릴 필요가 있다. 차라리 소설을 한 권 읽는 게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재미있는 영화라도 한편 보는 게 정신건강에 더 좋다. 그 어떤 전문가도 나의 상황을 정확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정확하지 않은 이해에서 어떻게 정확한 조언을 할 수 있을까?
그냥 내가 건강하면 된다. 내가 잘 먹고, 잘 자고, 내 삶을 행복하게 살 고 있다면 그 보다 더 육아나 집안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전문가를 찾기보다는 내 안에서 그걸 발견하고 내가 나의 상황에 가장 전문가임을 스스로 깨닫는 길이 더 빠른 길일 수도 있다.
많은 정보는 오히려 혼동과 방황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그저 자신이 처해 있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현실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것이 가장 좋은 육아비법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을 돌볼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을 스스로 찾아내고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지속적으로 즐길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런 글쓰기를 할 때 가장 나 자신이 안정감과 행복감을 맛보는 것 같다. 무엇이 그 사람에게 가장 좋은 휴식과 돌봄일지는 그 누구도 조언해줄 수 없다. 그저 자신을 잘 살펴보고 무엇을 할 때 가장 행복한지 다양한 시도를 해보는 것 정도까지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조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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