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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씨네가족 Jun 11. 2021

위엄 있는 주부

위엄 있는 주부란 누구인가?


한자로는 위엄 위(威) 엄할 엄(嚴)

영어로는 majesty, dignity이며

그 뜻은 존경할 만한 위세가 있어 점잖고 엄숙함, 또는 그런 태도나 기세를 의미한다.


주부라고 다 같은 주부가 아니다.

위엄 있는 주부들이 있다.

그들의 삶은 정말 존경할만하다.

어떠한 것이 위엄 있는 주부로 평가할 수 있을까?


아이들을 어린이집이나 학교에 보내고 나서 커피숍에 삼삼오오 모여서 그저 수다나 떨고 있다면 그걸 위엄 있는 주부라고 평가할 수 있을까? 혹은 사람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서 집에서 혼자 조용하게 커피 마시면서 책을 읽고 있는 주부를 위엄 있는 주부라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위엄 있는 주부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그 위엄 있는 주부가 되기에는 넘어야 할 난관들이 많다는 걸 깨닫지 못했다. 아직 그 목표는 잃지 않았지만 언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최소한 내가 생각하기에 위엄 있는 주부가 되기 위해서 지켜져야 할 첫 번째 원칙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 첫 번째 원칙은, 항상 집이 청결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하루의 세 번의 식사가 항상 준비된 상태로 나와야 한다.

원칙은 한 줄이지만 나에게 세 번의 식사가 항상 준비된 상태로 나와야 한다는 이 성실에 있어서 실패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원칙을 바꾸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주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것이 식탁에 있다고 믿는다. 그러하기에 현대를 살아가면서 위엄 있는 주부가 되기는 결코 쉽지 않다. 특히나 자신의 일이 있으면서 주부일을 동시에 하는 입장이라면 아마도 이 첫 번째 원칙에서 실패할 확률이 가장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원칙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렇게 길지 않게 하고 있는 주부생활이지만, 가장 어려웠던 난관은 역시 식사에 있었다. 몇 번은 잘할 수 있고 몇 달도 어떻게 해낼 수 있다. 그런데 이게 1년, 2년, 아니 죽을 때까지 해야 한다는 사실은 정말이지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아니 먹기를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괴로운 일이라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특히나 주말이 되면 여러 유혹이 솟구친다. 식사를 대충 하는 것, 외식을 하는 것, 혹은 그냥 시간을 흘러 보내는 것 등의 다양한 유혹들이 넷플릭스의 달콤함(?)과 함께 스며들어서 주부의 위엄을 망가뜨린다. 그래 아무래도 이번 생애는 위대한 주부, 위엄 있는 주부가 되기를 포기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어온다. 그런데 그 생각을 내 가치관으로 정립시킬 순 없다. 옆에서 내가 긴장을 놓을만하면 긴 채찍과 함께 나를 부엌으로 몰고 가는 아내의 눈빛을 난 이겨낼 자신이 없다.


 그래 솔직하게 위대한 주부, 위엄 있는 주부가 되기도 어렵지만.. 아내의 채찍을 이겨내기는 더 어렵다. 그래서 그냥 중간에 끼여서 목표만 저기 멀리에 두고 어찌어찌 하루를 살아내고 있다. 그래 살아내고 있다는 표현이 가장 정확하다.

 

 위엄 있는 주부의 원칙 같은 거 다 때려치우고, 그저 우리 5 식구 최소한 굶기지만 말자.라는 후퇴작적은 펼쳐보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 작전보다 더 큰 우리 집 대장이 시선은 또다시 나를 첫 번째 원칙을 어떻게든 이뤄내도록 몰아간다.



그래 역시 주부가 가장 위대하고 가장 어려운 직업이자 소명이다.


 그렇게 긴 인생을 산건 아니지만, 살면서 이것저것 많은 일들을 해봤다. 이름을 알려주면 알만한 회사에서 열심히 인정받으면서 일도 했었고, 스타트업이라는 걸 만들어도 보고 망해도 보고, 외국에서도 꽤 시간을 지내면서 서바이벌도 성공해봤고, 또 실패도 해봤고, 백수로도 지내보고 프리랜서로도 지내보고 이런저런 좋은 일에 대한 제의도 꽤나 받아봤다. 그리고 아직까지 많이 늙지 않았기 때문에 집안일과 아이들을 다 뒤로 해버리면(?) 지금보다 훨씬 좋은 조건에 더 좋은 일들을 많이 할 수 있다. 해낼 수 있는지 까진 모르겠고 할 순 있다. 그래 그런데 지금 나는 묶여있다. 집안일과 아이들 그러면서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해야 할 나의 일들과 함께 묶여있는 인생이다.


 그런데 이것저것 해보면서 느낀 건 역시나 가장 어려운 직업과 소명은 주부다. 웬만한 일들은 끝이 있고 휴식도 있고 주말도 있다. 그리고 은퇴라는 가장 멋진..(아니 사실 우울한 것일 수 있다.) 희망과 기대가 나를 반겨준다. 그런데 주부는 퇴근도 없고 주말도 없고.. 까진 괜찮다. 가장 우울한 소식은 은퇴가 없다는 사실이다. 아.. 은퇴가 없는 직업이라니.. 좋은 걸까? 나쁜 걸까?


그러니 주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어려운 직업이다. 정말 대단한 자기 소명이 없으면 이뤄낼 수 없는 일이 주부임은 분명하다.


그러니 국가는 주부들에게 연봉 1억씩은 매년 지급해야 하지 않을까?

아, 조건이 있다.

위엄 있는 주부여야 한다는 조건 말이다.

위엄 있는 주부의 첫 번째 조건은

항상 집이 청결하고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고 하루의 세 번의 식사가 항상 준비된 상태로 나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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