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사는 법을 배운 지 1년 9개월
차 타고 조금만 나오면,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초원들이 이곳 곳곳이 펼쳐져 있다.
매번 차에서 눈으로만 감상하다가 이번에는 어떤가 하고 차에서 내렸다.
역시 사진으로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실제 가까이에 오면
뭐랄까? 거칠고, 잘 다듬어지지 않은 느낌이 든다.
원래 초원 자체는 멀리서 볼 때 더 아름답고, 가까이에서는 듬성듬성 비어있는 곳들도 많고 잡초나 기타 이쁘지 않은 것들도 많이 있다. 이런 것들이 멀리서 볼 때는 가려져서 아름답고 평화스럽게 보이는 것이다.
우리의 인생도 그러하지 않을까?
멋있어 보이는 연예인들의 삶, 그 뒤에 숨겨져 있는 아픔과 대중들에게 보여줄 수 없는 것들.
그런 것들이 다 보이면, 대중들은 그 연예인들을 더 이상 흠모할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기에..
사실 인간은 모두 동일 한대.. 그것을 망각하고자, 아니면 헛된 희망을 좇으려고 무언가 대단할 것 같은 사람을 좇아가는 현상들인 것 같다.
여기는 그러한 거품과 겉모습, 남들에게 잘 보여주기 위해서 나의 단점들을 감추어야 할 이유들이 많이 사라진다.
보여줘야 할 대상도, 보여줄 사람도 없다.
그냥 오롯이 우리 스스로 우리의 모습에 만족하며 살아갈 뿐이다.
누구랑 비교하기도 힘들고,
비교 대상도 마땅히 없다.
그래서 무인도는 아니지만, 무인도에 살듯이 스스로에게 잘 살고 있다고 되뇌며 생존하는 법을 터득한다.
우리끼리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애써서 증명하고, 또한 그 증명에 우리 스스로를 칭찬하게 된다.
사람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성장한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들을 키울 때도 주변에서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라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그런 말을 들으면 더욱 우울해지는 현상을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시대로 돌입하는 현시대에서 그러한 말들은 오히려 정신적 폭력을 가미하는 것 아닐까?
누구 하나 도와주지 않고, 도와주기 힘든 사회적 구조에서,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살아가기 힘들다는 명제를 준다면, 그건 희망이 아닌 고통이 될 것이다.
사회적 관계와 도와줄 수 있는 좋은 인프라가 있으면 그것은 큰 힘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것이 없어도 오롯이 가족만의 힘으로도 아이들을 잘 키워낼 수 있다.
물론 버겁기도 하고 도망치고 싶기도 하는 순간들이 있을 수 있다.
그건 단순히 아이를 키우는 것뿐만 아니라 모든 일이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주변과 사회에서 도와주기를 바라는데, 그 도움이 없으면 우리는 쉽게 좌절할 수 있다.
그런데, 도와주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생존하고 잘 키워낼 수 있도록 다짐하는 길이 더 나은길 아닐까?
남들과 환경을 탓하기는 쉬우나,
자기 스스로를 탓하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그런데 사회는 점점 더 개인화되고 있으니 이러한 사회변화에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더욱 스스로에게 책임을 더 부여하는 게 생존을 위한 바른 선택이라 생각한다.
우리는 키르기스스탄에서 3년간의 시간 동안
이러한 생존의 법칙을 조금 터득한 것 같다.
그래서 다시 한국에서 살아가니, 남들의 도움과 사회적 인프라에 대해서 큰 불평, 불편함이 없다.
오히려 너무 과하게 잘되어 있다고도 때로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어도,
놀만한 인프라가 갖추어지지 않았어도,
우리 안에 다양한 놀이의 아이디어가 있으며,
우리 안에 미쳐 발견하지 못한 놀라운 지혜의 섬들이 넘쳐난다.
멀리서 찾기보다는,
내 안에서 그러한 것들을 찾아내는 지혜가 필요하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것이
때로는 진정으로 나를 도와주는 지름길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