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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베리 Oct 24. 2024

습관 만들기: 라이프 엔지니어링

운동, 식단, 영어, 수면, 글쓰기, ...

퇴사 후 좋은 습관들을 만드는 데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퇴사 직후에는 돈은 못 벌지만 뭐라도 생산적인 걸 하자는 생각이었는데, 두 달이 지난 지금 아주 잘한 결정인 듯싶다.

내게 습관은 가능한 매일 규칙적으로 하는 무언가를 의미했다. 한번도 무언가를 오래 지속해본 적이 없는 나이지만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시간의 힘을 체감해왔다. 그렇기에 나도 이번 기회에 앞으로 살아가면서 친구가 되어줄 습관을 잘 다져놓자고 생각했다.


우선 운동부터 시작했다. 내게 운동의 목적은 미용보다는 건강한 신체를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었다. 한편 나는 지루한 운동을 싫어한다. 내게 지루한 운동은 반복적이고 정적인 운동이다. 그렇다. 나는 웨이트 트레이닝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맥킨지 입사 전 쉬는 기간에 몇 달정도 했던 크로스핏이 생각났다. 크로스핏은 다양한 동적 운동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또한 프로그램에는 시간 제한을 포함한 가이드가 있기에 나의 나약한 의지보다는 프로그램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된다는 점도 좋았다. 다만 크로스핏은 높은 수준의 신체 협응성과 유연성을 요구하는 역도 동작이 많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나는 유연성이라고는 없기에 다칠 위험이 높다고 생각했고, 그럼 매일 운동하자는 취지에 방해될 개연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안으로 F45를 선택했다. F45는 고강도 서킷 트레이닝이라는 점에서 크로스핏과 비슷하지만 동작의 수행 난이도는 비교적 낮아 보였다. 그리고 체육관이 집에서 도보 5분이라 접근성도 좋았다. 상담을 하러 가서 구경해보니 조금 좁아 보이기는 했는데, 일단 3만원에 8일 체험권을 주길래 해보기로 했다. 막상 해보니 그렇게 좁게 느껴지지는 않았고, 확실히 운동은 되었다. 그래서 지금 2달이 조금 안되는 기간동안 30번을 출석했으며 앞으로도 일주일에 4~5번은 꾸준히 운동할 듯하다.


다음으로는 식단이었다. 기존의 식단은 최악이었다. 나는 종종 야식을 시켜먹었으며 군것질을 매우 좋아한다. 이는 건강에도 좋지 않거니와 비용도 많이 드는 방식이었다. 그래서 이참에 비용을 절감하면서도 비교적 영양가 있는 음식들로 식단을 바꿔보고자 했다. 요리는 꾸준히 할 엄두가 나지 않았기에 처음부터 조리로 방향을 잡았다. 컬리에 밀키트가 많다고 들어서 들어가봤는데, 막상 밀키트도 조리 순서가 복잡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은 눈길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바로 데우면 되는 볶음밥이랑 닭가슴살만 우선 주문했다. 하지만 2달이 지나가는 지금까지 처음 시킨 볶음밥을 다 먹지 못했다. 식단을 바꾸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의지가 필요한 일인 듯하다. 하루이틀 노력하다가도 어느새 배달앱을 켜거나 식당에 앉아있는 나를 발견하곤 했다. 운동과 무슨 차이일까 생각해보면 운동은 일어나서 출발하기만 하면 그 뒤로는 내 의지가 작용할 필요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매일 똑같은 목적지로 가서 시키는 대로 하면 되니까. 그런데 식단의 경우 냉동음식을 꺼내고 뎁히는 과정이 상당히 이질적이고 귀찮게 느껴진다. 또한 먹고 나면 혹은 다음에 먹기 전에 설거지도 해야 한다. 해당 과정들이 운동을 ‘출발’하는 것보다 내게는 많은 에너지를 요구하는 듯하다. 그러한 반면 이미 익숙해졌으며 편리한 대안들은 너무나 많다. 배달앱들은 이제 클릭만 몇번 하면 결제까지 된다. 아무튼 그래서 식단은 아직 성공적으로 변화된 습관을 정착시키진 못했다.


그다음은 영어였다. 살면서 영어 때문에 좌절한 순간이 정말 많다. 학부 시절 일해보고 싶었던 VC에서는 최종 면접을 영어로 봤는데, 완전히 절어서 떨어졌다. 절치부심해서 맥킨지의 인터뷰 프로세스는 어찌저찌 통과했는데, 근무하는 동안 영어로 일하는 건 어떻게든 피하려고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SNU in SV를 갔을때도 운좋게 선발은 됐지만 스탠포드 가서 영어 때문에 많이 애먹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영어 말하기를 꾸준하게는커녕 살면서 몇번 공부해본 적도 없다. 영어 말하기는 중학교 때 청담어학원에서 잠깐 스크립트 외워서 말하기 정도를 해본게 다이지 않은가. 말하기 연습을 하지도 않아봤으면서 말하기를 잘하길 바라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영어 말하기를 꾸준히 연습해보기로 했다. 대안은 쉽게 떠올랐다. 근래 몇년간 스픽이라는 앱을 여기저기서 들은 기억이 났기 때문이다. 찾아보니 스픽은 1년 기준 한달에 만 원 정도면 사용할 수 있었다. 7일 무료체험을 해보니 정말 너무 좋았다. 하루에 20~40분 정도만 투자하면 되는 등 하루 학습량이 매우 적절했고, AI와 프리토킹하는 것도 비싼 링글 하는것과 비슷한 효용을 주었다. 그래서 스픽은 대략 4주 정도가 되었는데 거의 매일 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다.


마지막은 수면이다. 개인적으로 수면을 넘어 누워있는 모든 시간동안의 자세가 좋지 않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었다. 베개를 두 개로 겹친 다음 목을 치켜올린 자세를 주로 취하는데, 목의 어디가 어떻게 안좋다는 것을 찾아보지 않아도 내 자세가 안좋다는 것쯤은 느껴졌다. 다만 그동안은 심각하게 문제가 있던 것은 아니라서 매번 미뤄 왔는데, 이번 기회에 어떻게든 바꿔보고자 했다. 일단 결론은 베개를 바꾸는 것이었다. 다른 것들도 중요하겠지만 직접적으로는 베개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좋은 자세를 형성시켜 줄 베개가 있다면 훨씬 좋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간단하게 인터넷으로 서치해본 다음, 청담동에 위치한 베개 체험관을 두 군데 예약하고 방문했다. 베어 보니 가누다 베개라는 것이 꽤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어줄 것 같은 사용 경험을 주었다. 그런데 가격을 들어보니 20만원이 좀 넘었다. 현재 수입이 없는 나로서는 꽤나 부담스러운 금액이었다. 그래서 돌아서면서 혹시나 당근에 검색해 보았는데 운이 좋게도 6만원에 파고 있었다. 바로 그 주에 여의도까지 가서 구매해 와서 지금까지 쓰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감상은 그저 그렇다. 경추베개를 잘 활용하려면 똑바로 누워서 자야 하는데, 나는 보통 옆으로 잔다. 또한 아침에 일어났을 때 목이 꽤 뻐근하다. 아마 높이가 아주 잘 맞지는 않나보다. 매일 7시간~8시간을 깨지 않고 자고, 일어나면 기존보다 확실히 피로감이 덜한 상태를 기대했는데 아직은 그에 미치지는 못하고 있다.


이렇게 뭐 하나 꾸준하게 해본적 없던 나는 시간이 많아지자 꾸준하게 할 수 있는 습관 만들기부터 시작해보고 있다. 그리고 오늘부터는 글쓰기가 새로운 습관 만들기의 타겟이 되었다. 두달 간 이것저것 보면서 내린 결론은 별다른 기술/스킬이 없는 내가 생산해낼 수 있는 아웃풋은 결국 글이라는 것이다. 그 글이 콘텐츠 대본이 될지, 제품이나 사업 기획서가 될지, 마케팅 문구가 될지는 모르지만, 많은 생각 없이 매일 써보려고 한다. 매일 쓰다보면 뭔가 쌓이고 보이고 만들어지겠지 하는 막연한 기대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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