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선택한 여행이니까 '만족'합니다
‘혹시 살면서 만족하셨던 적이 있을까요?’
몇달 전 이직을 위한 인터뷰 자리에서 받은 질문이다.
하긴 나의 한 페이지짜리 이력서를 보면 궁금할 법도 하다. 지난 10년이 담겨 있는 종이 한 장은 그렇게 요란할 수가 없다.
스무살 때 처음 입학했던 대학을 자퇴하고 수능을 다시 봐서 다른 대학에 입학했다. 스물세 살에는 전공을 바꾸었다. 스물여섯 살에는 잠깐이지만 법인을 세웠었다. 스물일곱 살에는 마음에도 없던 양복 입는 큰 회사에 입사했다. 스물아홉 살에는 다 합치면 15명인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물론 그 사이에 업종이 하나도 겹치지 않는 인턴 다섯 번이 포함되어 있다. 여기까지가 위의 인터뷰 당시에 제출했던 이력서에 기재된 내용이고 직후에 다른 회사로 이직했다. 그리고 3주만에 그만두었다.
이러니 인터뷰 보는 회사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상식적으로는 어떤 회사를 가도 1년은 적응기간이고 3년은 다녀야 뭘 조금 기여할 수 있다고들 하니까. 그런데 이녀석은 3년은 커녕 1년 반을 넘기는 일이 없으니, 우리 회사에서도 그러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피어날 것이다.
아무튼 이건 회사 사정이고 그들이 판단할 일이다. 다만 서두에 있는 질문은 꽤 흥미로웠고 돌아서서도 생각이 났다.
일단 그때나 지금이나 저 질문에 대한 답은 같다. 결과적으로 당시에 머물던 곳에서 채워줄 수 없는 부분이 있어 떠나게 되었지만 대부분의 선택과 그에 따라 보내온 과정에 만족해왔다는 것. 매번 변화를 택할 때마다 이번에 가는 곳에서 평생을 몸담아야지. 평생은 아니더라도 몇 년은 있어야지 생각해 본적은 따로 없다. 그냥 그때그때 원하는 바가 있으면 그걸 충실하게 쫓아갔을 뿐이다. 원하는 것이 변해갔을 뿐이다. 혹은 새로운 경험을 통해 실제로 원했던 것이 무엇인지 발견했을 뿐이다.
그리고 조금 더 깊이 어떤 구조로 내가 이런저런 결정을 했는지, 왜 이런 요란한 이력서를 갖게 되었는지 돌아보고 싶었다. 잠깐 생각해보니 나는 내면의 목소리에 솔직하되 후회하지 않도록 매번 제대로 해야 한다는 대원칙이 있다고 느낀다.
먼저 내면의 목소리에 솔직해진다 함은 앞서 말한 대로 그때그때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쫓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여기서 어려운 점은 일관성 있는 사람이 되려고 혹은 그렇게 보이려고 집착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나는 대학생활 4년 내내 컨설팅이니 금융을 주제로 하는 동아리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아직 직장인도 아닌데 동아리원들이 양복을 입은 단체사진을 포스터로 만들어 캠퍼스 여기저기에 붙여놓는 것이 괜히 심술이 났다. 나는 과외하느라 저런거 할 시간도 없는데 배부른 친구들이구나 하는 못난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결국 첫 직장으로 컨설팅 펌에 입사했다. 창업하다 접어 보니 생존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면서 제일 돈 많이 주고 이름값이 높은 회사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대학생활 내내 친구들한테 컨설팅 동아리 욕한게 있어서 엄청 민망했다. 그렇지만 결국 지금의, 당시의 내가 원하는 것을 쫓아갔다.
다음은 제대로 한다고 함은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나는 후회하지 않을 확신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는 스스로와 타협하지 않는 것이 늘 과제이다. 쉽게 포기하는 거면서 사실 이건 내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고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여기서는 스스로의 기준과 남의 시선이 다를 때가 많다. 예를 들면 창업 경험은 다른 사람이 들으면 대학생 때 도전적인 경험을 해봤다고 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기엔 어디 가서 얘기하기 부끄럽다. 시작해놓고 제대로 해보지 않고 포기했기 때문이다. 법인을 세우고 7명 팀을 모으고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즈음 VC들이 선제적으로 투자 의사를 밝혔다. 며칠 고민했는데 솔직히 무서웠다. 투자 받으면 그때부터는 돌이킬 수 없다고 느껴졌다. 동시에 그럴 마음까지는 준비가 안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투자를 거절한 뒤 이를 공유하고 팀도 해산했다. 반대로 이후 다녔던 컨설팅이나 스타트업은 평균보다 좀 짧게 다녔던 거 아닌지(그래서 제대로 일을 해봤을지) 걱정하시지만 스스로는 충분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설득력 있는 경험을 공유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아쉽지 않다.
여기까지가 10년 동안의 방황 혹은 여행을 정당화하는 나만의 궤변이었다. 쓰고 보니 역시 나는 결국 내가 중요한 사람이구나 싶다. 결국이라 함은 나는 기본적으로는 눈치를 많이 보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뭘 바라는지 대충 다 알지만 결국 그 기대를 저버리고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된다.
아무튼 요즘 바라는 것은 오래도록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다. 10년 동안은 세상에 뭐가 있나 이것저것 헤집고 다녔다면 이제는 내 작품을 하나 만들고 싶다. 그런데 작품이 나오려면 적어도 10년은 매진해야 하지 싶다. 시작하려니 만만치가 않다. 20대 동안 어디 합격하고 가서 필요한 기여를 하는 것은 익숙해졌는데, 이제는 그런 게 아니니까. 잘 팔리는 이력서 한 장을 만들어왔던 지난 10년과는 다른 방황이 시작되고 있다. 그렇지만 '만족'한다. 언제나 그랬듯 내가 원해서 선택한 길이고 방황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