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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씰리 Feb 23. 2024

교양 있게 화내는 법

은 아직 나도 모른다. 연구 중이다.




올해의 다짐은 이거다. ‘화가 날 때 참지 말되 욱하지는 말고, 교양 있게 화를 내자.’


나는 극렬한 회피성향의 인간이며, 가깝고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화를 잘 못 낸다. 또한 인생에 정말 중요한 몇 가지 외에는 딱히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않는 편이며 좋은 게 좋은 거지 마인드로 산다. 나는 대체로 상대방의 의사를 많이 수용해주는 타입이다. 어차피 난 웬만하면 다 맛있으니까 너 먹고 싶은 거 먹자. 여행을 가도 어차피 난 아무 계획이 없으니까 너 가고 싶은 데 가자. 아 넌 이게 싫으니? 그럴 수 있지, 그럼 니가 옳다고 생각하는 방향으로 해보자 까짓 거.


그런 덕분에 친구들 사이에서 나는 오랫동안 ‘예스걸’이었다. 무엇을 원하든 ‘예스!’를 외쳐주는 가장 착한 친구. 이따금 어느 정도 선을 넘더라도 도통 화를 내지 않는 보살 같은 친구. 그게 나였다. 당시 나에게 그녀들은 무엇이든 ‘응’ 해도 좋을 참 좋은 친구들이었다. 다만 시간이 흘러 우정에 갈등이 생기고 절교의 위기가 찾아왔을 때, 한 친구가 너무나 서글프게 펑펑 울면서 이런 말을 했다.


늘 ‘예스’라고 해주던 니가 한번이라도 ‘안돼’ 라고 말하면 너무 충격이야. 딴 사람은 몰라도, 너만큼은 나한테 백번 잘해주다 한번만 못해도 나는 견딜 수가 없어!

그 말이 내 마음속에 오랫동안 충격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나는 무언가가 단단히 잘못되었음을 인지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이십대 중반에 마침내 생에 첫 목하열애에 빠져있었다. 꿈꿔왔던 완벽한 사랑을 만났기에 (그땐 그렇다고 믿었다) 남자친구가 내 일상의 0순위였다. 더불어 마침내 지망생 신분을 벗고 막내로 일을 시작하게 되어 한창 바쁘던 참이었다. 딱히 출퇴근을 하지 않는 프리랜서였지만 언제 업무콜이 올지 몰라 늘 예민한 대기모드였다. 일은 내 인생에 연애와 더불어 공동 0순위였다. 그 0순위들을 사수하는 것만으로도 눈코뜰새 없이 바빴기 때문에 그밖에 다른 것들은 자연스레 뒷전이 되었는데,


친구들은 그런 나를 이해하지 못했다. 집에서 일하는 프리랜서였기 때문에 그녀들이 이해하기가 더욱 어려웠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아니 집에 있는데 왜 못 나와? 원래는 바로 나와줬잖아? 일하고 남친 생기니까 변한 거야? 니가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넌 우리들의 예스걸이었잖아!!!


... 앞서 나에게 큰 충격발언을 안겨줬던 친구와는 결국 끝끝내 시답잖은 사건으로 인해 절교했다가 다행히 3년쯤만에 재결합하여 지금까지도 잘 지내고 있다. 그것은 그녀와 나 둘 다 당시 그 일에 대하여 똑같은 크기로 깊게 반추하고 많이 반성할 만큼 자란 덕분이다. 3년의 절교 구간 와중에 우리 공통의 절친 결혼식에서 한번 만났었다. 그때 신부대기실에서 눈꽃처럼 환하게 웃는 신부 뒤에 나란히 서서 무표정 저승사자처럼 찍힌 우리들의 사진은 화해 후 오랫동안 모두의 웃음벨이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면서도 명확하게 자기 선을 잘 긋는 사람들을 선망하기 시작했다. 그런 이들을 우러러본지가 꽤 오래되었음에도 전혀 그들의 발뒤꿈치도 따라가지 못했다.


그들의 그것은 본능적인 순발력이다. 나 같은 프리랜서 나부랭이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매일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숨 쉬듯 인간들에게 치이고 시달리고 학습하면서 키워진 후천적 본능인 것 같다. 건강한 자기방어기제. 예를 들면 이런 것. 회사의 팀장님과 업무미팅 후 막간의 일상 대화를 나누던 중 막내피디가 몹시 외로워한다는 근황을 듣게 된다. 그런 얘길 듣자마자 나는 마침 요즘 그 막내와 똑같이 몹시 외로워하며 나잇대도 비슷한 내 남동생을 떠올리게 된다. 내가 좋아하는 두 사람 모두 어서 빨리 좋은 사람을 만나 외로움이 종식되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때마침 나잇대도 서로 비슷하다. 그런 좋은 게 좋은 거지의 마음으로 이 둘의 소개팅을 주선해볼까?! 내가 반농담처럼 운을 떼는 순간 팀장님이 웃는 얼굴로 부드럽게 선을 긋는다. ‘그들의 연애는 그들이 알아서 하게 하는 것이 모두에게 좋아요.’


그것이 3년 전쯤 일이고, 그녀의 말대로 지금은 그 둘 모두 각자 알아서 본인에게 꼭 맞는 좋은 사람을 만나 잘 연애하고 잘 살고 있다. 만약 그때 그녀가 애매하게 굴어서 혹시라도 정말 소개팅이 주선되고 만에 하나 혹시라도 그 둘이 연애를 했다면? 꽤 높은 확률로 모두가 몹시 피곤해졌을 것이다. 그 상상을 하다 작게 몸서리를 치며 그녀의 선긋기 순발력에 내내 감탄한다.


나도 그녀처럼 부드럽게 선을 잘 긋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상대가 무례하게 선을 훅 넘으면 참지 않고, 그러면서도 망가지지 않고 교양 있게 화를 ‘잘’ 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하지만 그 길은 내겐 아직도 너무나 요원하다.


나이가 들어도 나의 선긋기 능력은 도통 자라질 않았다. 그 때문에 여러 명의 사람들을 결국 영영 잃게 되었다. 절연의 이유는 대체로 모두 똑같다. 늘 너그럽게 나를 받아주던 너였는데 변했어! 라고 상대가 욕을 퍼부으며 떠나거나, 난 이제 더 이상은 너를 받아줄 수 없어. 라며 내가 먼저 이별을 통보하거나.


내가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상대가 보는 만큼 내적으로도 무한의 수용성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오히려 절연할 일도 없고 모든 게 쉬웠을 거다. 하지만 나의 내면은 생각보다 예민했다. 또한 내가 수용 가능한 마지노선은 타인보다 많이 높은 대신, 그 마지노선 이상의 내 0순위들은 절대 그 누구도 건드려선 안됐다. 그게 나의 가장 큰 괴리였다.


우습게도 또 한편으로 나는 굉장히 잘 욱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주로 생판 남인데 (그 남들은 대체로 남성들이기도 하다) 초면에 밑도 끝도 없이 무례를 범할 때. 단전에서부터 올라온 부글부글함이 목젖까지 차올라옴을 깨달은 순간에 이미 나의 주둥이는 거침없이 나불나불 그들을 단죄하고 있다.


하지만 오래된 관계일수록, 소중한 관계일수록 좀처럼 화를 제때에 내지 못한다. 그 타이밍을 놓친 뒤에 다시 얘길 꺼내는 건 우습다. 그러니 그냥 잊고 묻고 싶지만 또 그러지도 못한다. 그 순간에 이렇게 받아쳤어야 했는데... 하며 이미 철지난 유행가보다 더 옹색한 말들을 시도 때도 없이 혼자 읊조리며 가슴을 탕탕 친다. 그런 수십 번의 켜켜함들이 쌓인다. 상대는 이미 선을 한참 여러 번 많이도 넘었고 그럼에도 별 일이 없음이 앞서 수십 번쯤 학습됐기에 이미 관성이 돼있다. 하지만 나는 혼자서 마음속에 어둡게 쌓인 게 많고많아 이미 극한의 임계점이다. 갈등회피형 인간이 혼자서 관계의 엔딩을 지은 채 보여주는 모습은 차갑기 그지없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대는 그런 내가 그저 당황스럽고 혼돈스러울 뿐이다. 그러다 파국에 이른다.     


그렇게 몇 번의 이별을 겪던 중 내가 찾은 첫 번째의 방법은 ‘글로 화내기’였다. 편지 혹은 메일. 이것은 내가 존경했던 선배에게서 배운 거였다. 그녀는 화가 나는 순간에도 몇 번을 참고 참다가 못 다한 말이 마음속에 쌓이고 견딜 수 없어지면 새벽에 메일창을 열었다. 오랫동안 정제하고 정제한 본인 ‘화’의 알맹이를 글로 정확하게 써서 상대에게 전달했다. 그런 메일을 나도 여러 번 받았다. 나 이외에도 본인 주위 여러 명들에게 보낸 메일도 공유받거나 메일의 내용을 다음날쯤 디테일하게 전해들었다.      


그것은 우리처럼 ‘사회적 화내기 순발력’이 낮은 사람들에게 가장 적합한 창구였다. 상대의 얼굴을 보고 말할 자신은 없고, 말보다는 글이 훨씬 익숙한 직업을 가졌고, 오래 쌓아온 서운함의 말들을 A부터 Z까지 명확하게 전부 전달할 수 있으므로.      


한동안 나는 글을 통해 ‘잘’ 교양 있게 화를 표출할 수 있었다. 한때는 완벽한 사랑이라 믿었으나 끝내 지리멸렬해져버린 생에 첫 남자친구에게, 나에게 메일로 화내는 법을 몸소 가르쳐준 선배에게.  등등등.   


나는 이를 ‘새벽 3시의 메일 살인마’라고 불렀다. 그 기간 동안의 나는 마음이 꽤 편안했다. 몇 번 참더라도 결국엔 끝내 수 틀리면 쌓은 말을 정제하고 정제해 글로 써서 전하면 되니까. 내가 쓴 메일이나 편지에는 이미 오랫동안 갈고닦은 내 분노의 기승전결이 완벽하기에 상대는 대체로 하는 수 없이 수긍하며 사과를 건넸다.평생 이 정도로 점잖게 화내며 살아도 충분할 줄 알았다.     


한때 몹시 좋아했던 후배에게 끝내 크게 실망하게 된 사건이 있었다. 지나고 보니 결국엔 전부 나의 원인 제공이었다. 당시의 나는 오래 가까이 지낸 선배에 대해 깊고 어줍잖은 살리에르 증후군을 겪고 있었다. 그딴 증후군을 겪을 시간에 내 미래를 위해 글이나 한 자 더 적고 있었어야 했으나 그러지 못했다. 내 안의 괴리를 그 애에게 몽땅 투사하고 너도 나와 같은 감정을 겪어야만 해, 라며 감히 어줍잖게 가스라이팅을 시도했으나 전혀 잘 되지 않았고 결국 그 애는 나를 영영 등지고 나의 그 어줍잖은 상대적 박탈감과 천박함을 모두 폭로했다. 눈이 뒤집힌 나는 날선 날것의 말들을 맘껏 써갈긴 메일을 전송했다.     


후배는 메일을 읽은 뒤 나에게 앞서 톡으로 통화가 괜찮은 시간을 물은 뒤 전화를 걸어왔다. 그렇게 이어진 통화에서의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후배는 자기 나름의 설명과 변명, 그리고 나에 대한 실망을 토로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덧붙였다.     


앞으로는 저한테 서운하신 게 있으면 그런 메일 말고 전화로 해주세요. 어쨌든 서로 목소리를 들으면서 얘기하는 게 낫잖아요.

그게 그 애와의 마지막 연락이었다. 메일 말고 전화로 나눌 만한 어떤 갈등이나 일상도 그 이후에는 모두 차단당했지만, 그럴 만했다. 다만 깊은 깨달음은 얻었다. 나 혼자서 방구석에 앉거나 누워 정제해 보낸 메일이나 편지는... 찌질해. 상대에겐 그저 테러일 뿐이야.      


이후로는 상대가 선 넘는 무례한 말을 할 때마다 바로 받아치는 게 목표였으나, 그래야 그나마 상호관계가 빨리 쉽게 병들지 않고 더 오래갈 수 있는 방법임을 깨달았지만,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2년쯤을 혼자 속으로 깊게 앓았다. 심리상담 시간에도 그것이 큰 이슈 중 하나였으나 당시에 그것보다 더 큰 개인적 사건들이 더 많았기에 그 부분은 차치가 되고 결국 선생님과 겉핥기 대화만 잠시 나눈 채 종결되고 말았다.     


혼자 속으로 깊게 앓은 병이 진짜로 곪아가기 전에 내 나름의 두 번째 방법을 찾았다. ‘카톡으로 말하기’이다. 이 화내기의 유통기한은 메일이나 편지보다 훨씬 짧다. 카톡문자 혹은 통화 중 누가 봐도 객관적으로 화낼 만한 일이 생겼을 때 10분, 길면 30분 내의 유통기한 내에서 유효하다. 연락을 끝낸 뒤 아무리 곱씹어봐도 이건 상대가 무례했다, 라는 생각이 들면 조심스레 카톡을 보낸다. 있지, 아까는 왜 그렇게 말했어? 라고 묻거나, 아까 그렇게 말한 이유가 혹시 이것 때문이야? 라고 묻는다. 상대가 응 하며 이모저모한 답변을 보내면 나는 네가 그렇게 말할 때 이러이러한 기분을 느꼈어, 니가 왜 갑자기 그런 말을 했는지는 대충 알겠지만 네가 그렇게 말할 때마다 나는 사실 굉장히 당황스러워. 라고 말한다. 그러면 (아직까지도 다행히는) 상대는 아 그렇게 느꼈구나? 난 그 정도까지의 의도는 아니었는데. 네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앞으로는 주의할께. 라고 답해준다. 그 답장이 오기까지의 꽤 긴 간극 동안 상대는 황당-당황-이해-수긍-다짐 쯤의 단계를 거칠 것이다. 실은 상대가 느낄 그 소화의 단계들을 상상하는 것까지도 몹시 피곤한 것도 맞으나, 한편으로는 분명히 고맙다.     


나의 최종목표는 당연 이런 구차한 단계들을 겪으며 혼자 애먼글먼 전전긍긍 방바닥을 뒹굴며 괴로워할 것 없이 상대가 선 넘는 발언을 뱉는 순간에 웃으며 교양 있게 딱 명확히 선을 긋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여전히 명확히 묘연하기에 오늘도 나는 추운 방에서 홀로 머리를 쥐어뜯으며 이렇게 일기나 적을 뿐.


그런 바람 속에 최근 산 책의 제목은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 작가가 책 머리말에 적은 것은 한 버라이어티에서 남자연예인의 외모지적을 들은 김숙이 “어, 상처 주네?” 하고 웃으며 가볍게 받아쳤다는 얘기다. 그녀의 그 다부진 순발력을 몸소 계승받고 싶다. 적어도 부디 지천명 전에는 가능하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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