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갖추어야 하는 것

시창작 합평반 1회차 후기

by 김시산



시를 배우기 시작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합평반’에 등록을 한 것이라, 내 시를 내어 놓고 평가를 받는 자리다. 시의 좋은 점, 아쉬운 점을 듣고 시를 쓸 때 참고할테니 배운다고 표현하는 게 영 어색한 것만은 아니다. 그리고 피드백은 회사 다니면서도 일상적으로 들어왔으니까.





정작 어색한 것은 ‘내 시를 내어 보인다’는 점이었다. 예술의 범주에 들어가는 모든 산출물이 그럴텐데, 창작자의 속에서 오랜 시간동안 숙의하는 과정을 거쳐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노출되었지만 여전히 내밀함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텍스트라는 투명한 망토를 뒤집어 쓴 내 속 얘기.





아, 오해할 수 있는데 부끄러움 때문이 아니다. 책임감이다. 글을 내어보인다는 건 내 이야기를 읽어주십사 하고 타인의 시간을 할애받는 행위이다. 그리고 누군가의 배꼽 저 아래에서 발원한 혹은 뇌 어딘가에서 갑자기 촉발된 이야기이니 가닿기가 쉽지 않다. 결국 상대방의 시간에 대한 책임감이 된다.





글을 쓰기 위해 홀로 고투하는 시간은 즐겁지만, 빈 곳이 많이 만져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쓰긴 쓰는데 이게 맞나? 내 스타일은 만들어지고 있나? 내가 보는 세계는 정확히 뭘까?. 채워지지 않는 질문들로 채워지고 있다.

질문은 많은데 답이 없다는 건 혼자서는 찾을 수 없는 답이거나, 질문이 잘못됐을 확률이 높다. 어느 쪽이든 누군가를 만나야했다. 이 마음이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용기보다 컸다.





강의장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나는 어떤 마음으로 여기에 참여해야 할까 를 생각해보았다. 합평이 처음이기도 했고, 창작의 영역이 으레 그렇듯 수용할 지 배제할 지를 정하기가 모호하기 때문에. 기준 없음과 고집은 한끗 차이기도 해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합평이 시작됐다.





종래의 나는 시는 규모가 크고 자유로운 구름 같다고 믿었다. 시인은 구름을 받아서 시를 쓰는 사람이고. 그렇기 때문에 설계된 구조물 안에 가두고 이해하는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어쩌면 교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다. 받아 적은 모든 시는 다르니까.





합평 수업을 하면서 내가 놓치고 있는 걸 알았다. 설득력. 시를 이해하는 것은 독자가 할 일이 맞고 독자들만의 틀로 시도하면 된다. 여기서 시인이 할 일은 설득력을 갖춘 시를 쓰는 것이다.


앞서 밝혔듯 긴 시간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답한 고민의 발로가 시라면, 글이라는 외관을 갖추고 밖으로 튀어나올 수 밖에 없었다면, 그것은 일종의 진술이자 고백이 된다. 듣는 이가 있는 세상에 내놓았다면 듣게 만들어야 하고 듣게 만들려면 듣는 이를 내 글 앞에 붙잡아 두어야 한다. 설득력이 필요해진다.





물론 합평에서 나온 이야기 중에 ‘독자를 설득하기 위해서~’로 시작한 건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난 잠자코 그 이야기에 귀를 귀울이게 됐고 이해하게 됐다.

설득당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