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는 것 만큼,
치열하게 읽는 것이 중요해

시창작 합평반 2회차 후기

by 김시산



지난 번 첫 합평에서는 쓴 맛을 봤다.






나의 시는 독자를 끌어들이고 설득하기 보다는 이미 답을 정해 놓고 던지는 방식이라는 평. 나의 세상을 규정해놓고 독자에겐 “내가 쓴대로 보고 이해하면 돼”라고 강제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관점이 흔들렸다






그간 내가 바라본 세상과 생각을 전달하는 매개체가 시라고 생각해왔다. 그래서 단언하는 진술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방향이 시가 가진 고유의 힘을 억누르고 읽는 이의 재미를 빼앗는 효과를 낳았다. 그래서 두번째 합평에서 나눌 시는 힘을 빼고 썼다.






합평에서 좋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의 시를 음미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이 지점이 가장 만족스러웠다. 음미, 참가한 분들이 나누는 이야기에서 타인의 시를 굉장히 열심히 읽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인상적이었다. 왜 그럴까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합평반이 열리는 곳은 조그마한 강의실이다. 책상을 둥글게 배치하고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가 서로를 모두 볼 수 있는 구조. 그리고 여기서는 모두가 응시자이면서 채점자가 된다.


그래서 자연히 두 가지의 의무가 생긴다. 첫째는 나의 시를 내보여야 한다는 것 둘째는 다른 이의 시에 대해 평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전 연재글에서 첫번째의 마음에 대해서 다루었고 이번에는 두번째에 대한 이야기이다.






평가라는 건 어떤 기준에 따라 측량을 한다는 뜻인데 공통의 교육 과정이 있을 수 없고 공동의 목표 또한 없으니 모두가 동의하는 확고한 기준을 세울 수 없다. 오롯이 각자의 판단과 감상에 따라 타인의 시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 나의 주관적인 감상을 타인에게 내보여야 한다. 결국 첫번째 의무와 비슷한 부담감을 지게 된다.






여기서 중요해지는 건 세밀한 독법이다. 읽는 속도를 올려보기도 하고 늦춰보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연과 연 사이를 붙여보고 저 멀리 띄워서 읽어보기도 하고. 또 문장 단위로 쪼개서 보거나 연을 통째로 흡입해보기, 다시 읽어 보고, 어떤 행이나 연은 지워서 읽어보고. 타인의 시에 내 몸을 계속 치대보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감상이 단단하게 뭉쳐진다. 반죽처럼.






읽는 노동과 쓰는 노동이 동일한 무게일 순 없겠지만, 치열하게 썼을 과정을 떠올려 보면 읽는 이도 치열하게 읽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응시자이면서 채점자. 돌아가면서 다른 역할을 맡게 되지만 종국엔 같은 입장과 마음을 공유게 된다. 동료.

그러니까. 시를 써본 사람은 타인의 시를 대할 때 다정한 자세를 잡을 수 밖에 없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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