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키스스탄] 내겐 너무 특별한 도로

by 김시산

운전을 좋아하지 않는다. 너무 싫어서 핸들만 잡아도 소름이 끼치는 수준은 아니지만 가급적 하지 않으련느 편이다. 운전을 하지 않은 것과 비교할 때 차를 가지고 도로에 올라서는 건 나를 더 위험한 환경에 놓아두는 행위에 가깝다고 생각하기 때문. 다행히 처음 배울 때 잘 배운 덕에 운전을 차분하게 하는 편이고 10년 넘는 무사고 경력을 가지고 있다. 근데 도로 위의 사정이라는 게 나만 주의를 기울인다고 봐줄 수 있는게 아니지 않나. 나의 의지 혹은 부주의와 상관 없이 사고는 언제나 발생하기 마련이다. 무사고는 너무 당연한 것임에도 무사고를 '경력'으로 쳐주는 것에는 이러한 함의가 미량으로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지나친 기우라고 할 수도 있는데, 운전하면서 늘 머리에 사고나면 어쩌지를 담고 있진 않고 남들처럼 주의를 기울이고 조심할 뿐이다. 운전하면 자연스레 기울여야 하는 사주 경계. 다만 난 그런 공정들에게 피로감을 잘 느끼는 편 같다. 그 피로감이 싫어서 가급적 운전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럼에도 운전을 하는 게 나을 때가 있다. 바로 멀미가 예상될 때. 멀미의 괴로움은 운전의 피로감을 능히 이기고도 남는다. 멀미에 지나치게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서, 운전을 험하게 하는 택시를 타면 거의 100%의 확률로 속이 울렁거린다. 운전 습관 문제 뿐만 아니라,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처럼 고부랑길이거나 신호와 교통 체증으로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서울 한복판을 통과할 때면 어김없이 멀미가 찾아온다. 차라리 운전을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기도처럼 섬기며 그 시간을 견딘다.

비단 자동차 뿐만 아니라 배와 비행기처럼 나의 발을 대체해주는 운송 수단을 이용할 때면 어김없이 멀미를 했다. 특히 '캐빈 크루 레디 포 랜딩'이라는 기내 방송이 나오면, 나는 읽고 있던 책을 덮고 자세를 바로 하고 창 밖 멀리 봐야 한다. 딱히 볼 게 없는 낮은 하늘이라도 보고 있어야 착륙을 위해 기체를 기울인 채 선회하는 비행기 안에서 멀미를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의 기본값은 멀미모드이고, 멀리 있는 풍경을 볼 때마다 그 모드가 잠시 꺼졌다 다시 켜졌다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차 내지 비행기라는 편리를 이용하려면 곤혹스러움을 비용으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내가 사는 곳에선 이 대가관계가 늘 작동해왔었으니까. 카자흐스탄 알마티 공항에 착륙할 때도 어김없이 잠시였지만 매스꺼움에 고생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비행기에서 그런 고생은 알마티에서 키르키스스탄의 카라콜로 향하는 7시간의 이동에서 말끔히 잊혀졌다. 떠나기 전에 현지의 도로 상태가 좋지 않고 장거리 이동이 많으니 멀미약을 챙기라는 후기를 봤었다. 나도 좋은 컨디션으로 여행을 하고 싶어서 멀미약을 챙겨 갔었는데 굳이 먹지 않아도 됐다. 도로 상태는 들쭉날쭉했다. 큰 도시에 가까운 도로들은 대부분 말끔히 포장이 잘 돼있었지만 한적한 시골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먼지가 숱하게 휘날리는 비포장 도로가 이어졌다. 당연히도 승차감은 안정적이지 못했다. 노면 상황에 따라 몸은 자꾸 들썩이고 그럴 때마다 심상치 않은 도로의 사정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럼에도 멀미를 하지 않았다. 이 사실을 출발한지 몇 시간이 지나서야 갑자기 깨달았을 정도로 순탄하지 않은 노면과 다르게 내 몸 속의 신경계들은 꽤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역시 여행이 주는 설레임이 감각을 마비시킨건가, 싶을 때 주변 풍경이 더 선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송전탑과 말들이 아주 작은 피규어처럼 보이는 광활한 땅. 드넓은 땅을 훑고 지나가다 지평선 부근에 시선이 닿으면 그제야 보이는 험준한 산맥들. 너무 평평한 지역이 넓어서 말과 양들을 가두는 울타리가 무한하게 연장되어 있는 방대한 평원. 키르키스스탄은 이런 고른 땅에 오르막과 내리막이 거의 없는 지형이라 도로를 낼 때 사잇길 혹은 커브로 된 길을 고려할 필요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이 직선도로였고 커브길 역시 아주 완만한 굴곡을 가지고 있어서 오히려 직선에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몸을 일렁이게 만드는 길 모양이 없으니 아무래도 몸에 부담이 덜 될 수 밖에.


얼마나 직선이냐면 도로의 중앙선이 하얀 점선으로 돼있다. 한국의 중앙선은 누가 봐도 그 선을 함부로 넘으면 얼굴이 노랗게 뜰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경고를 하듯 샛노란 실선으로 돼있다. 점선이란 건 언제든 차선을 옮겨 가도 된다는 뜻이고, 앞차를 추월할 것을 언제나 허용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여기에 드라이버들은 직선 구간, 커브 구간 구분 없이 언제든 추월을 시도하고 성공한다. 별로 위험하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시야 때문이다. 사방이 트여있는 광활한 땅에 사뿐히 놓여있는 도로는 저 멀리에서 오고 있는 맞은 편차량을 볼 수 있게 해준다. 커브를 돌면서 갑자기 차가 나타날 우려를 낳게 하는 도로가 없는 도로. 그래서 언제든 넉넉하게 추월할 거리와 시간이 확보되는 도로. 오히려 중앙 차선이 점선이 아니었다면 도로를 낭비하는 것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게다가 멀미를 할 때마다 꼭 듣는 말이 '멀리 있는 것을 보아라'였고, 그 때마다 교회 첨탑 끝, 강 건너에 있는 빌딩에 시선을 고정시키기 위해 애쓰곤 했었다. 그럼에도 멀미는 쉽게 가시지 않았는데 보는 것과 몸이 느끼는 것을 일치시키기엔 거리가 짧았던 것 같다. 하지만 키르키스스탄에서는 거의 모든 풍경이 멀리에 있다. 거리를 정확히 알 수 없을 정도로 멀리. 창 밖을 내다 보면 가까이에는 눈을 두고 싶어도 뚜렷한 지형지물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멀리 바라 보게 된다.


'어쩔 수 없음'. 키르키스스탄의 도로를 달리면서 가장 떠오른 말이다. 이곳은 놀라움을 낳는 동시에 무력함을 느끼게 만들었다. 만약 도로를 놓겠다는 결심을 한 사람이 없어서 내가 이 곳을 하염없이 걸어야 했다면, 나는 이 곳을 어딘가에서 함께 걷고 있을 누군가의 눈에 보이긴 했을까. 그런 압도된 마음이 빼곡하게 들어차서 멀미를 느낄 틈이 없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 어딜 둘러 봐도 나를 작게만 만드는 풍경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경외심을 품는 것과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작음을 동시에 깨닫는 것이었다.


여행의 시작할 때 가장 먼저 접하는 인프라는 도로이다. 공항에서 내려 숙소 혹은 다음 여행지까지 갈 때 반드시 이용하게 되는 도로, 그래서 내게 여행의 시작이기도 헀던 키르키스스탄의 도로는 멀미를 삼키고 놀라움을 뱉어서 보여주었다. 다시 떠올려봐도 참 설레는 여행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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