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임필성 감독을 아시나요?
"네!"
어휴, 당연히 아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한 소년의 몽롱한 시점을 담아낸 단편영화 <소년기>(1998)를 시작으로
어느 누구도 도달하지 못한 남극의 '도달불능점'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남극일기>(2005)로 장편 데뷔를 한 이후
계속해서 자신만의 영화 세계를 구축하고 도전하고 계신 감독님이죠.
특히, jtbc 전체관람가란 프로그램을 통해
찍힌 단편 영화 <보금자리>는 제가 주변에 항상 추천하는 영화입니다.
2017년에 찍힌 영화인데,
청약에 당첨되기 위해 아이를 입양한 부모의 이야기로
어쩌면 지금 더 우리에게 와닿는 영화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친구들이라면 굳이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직접 보시면 이 작품의 가치를 누구보다 빠르게 아실 것 같습니다.
마침, 찾아보니 jtbc에서 운영하는 스튜디오 룰루랄라 채널에 올라와 있네요.
이번 기회로 보시면 좋을 듯합니다.
https://tv.naver.com/v/2309068
짧은 단편 영화에
핵심적인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하면서도
시각적인 힘과 배우들의 연기까지
과도하지 않으면서도 적절하게 녹인 작품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단편 영화의 정석이라고 생각해요.
<보금자리>를 본 직후부터
임필성 감독님과 가볍게라도
영화 수다를 떨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어요.
이 작품을 보고 나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연락을 드렸는데,
흔쾌히 얘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셔서
5월 15일에 2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정확하게 녹음을 2시간 정도 했고,
끝나고 나서도 카페에 가서 몇 시간을 더 이야기했어요.
감독님과 이런저런 영화 수다를 한참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에 대한 영화, 즉 '메타 영화'에 관심이 많은데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은 것 같아요.
서로 이 영화 저 영화 추천하다가 시간이 훌쩍 가버렸죠.
여러분에게만 알려주면, 그때 감독님이 저에게 꼭 보라며 추천한 작품은
<Electric Boogaloo: The Wild, Untold Story of Cannon Films>입니다.
아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1967년부터 1994년까지
저예산으로 별의별 희한한 영화를 다수 제작한 Cannon Films이란 회사가 있었는데,
좀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제가 알기론 슈퍼맨4도 이 회사에서 제작했습니다.
정말 제목이 이상하거나 특이한 영화는 알고 보면 이 회사 작품이 많습니다.
진짜 ..추억 속 영화사라고 해야 할까요?
그 영화사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이 영화 너무 보고 싶다!"라며 흥분하는 감독님을 보니,
저도 너무 보고 싶더라고요.
근데 국내에 이게 배급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나중에 영화제에서 가져와주시면 너무 좋을 것 같습니다.
자, 서론이 너무 길었네요.
그때 녹음한 영화 수다를 여러분과 함께 들어보려고 하는데요.
전반적으로 감독님의 모든 작품을 다루려고 욕심을 부렸는데,
시간도 짧았고 제가 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끌어내지 못한 게
좀 아쉽긴 하지만 [임필성 영화 세계]를 탐닉하고픈 분들에겐
작은 자료가 될 거라 생각합니다.
https://audioclip.naver.com/channels/5445/clips/22
팟빵에서 들으실 분은 [클릭]
편집을 했지만, 무려 90분에 달하는 수다인데요.
그중에서 일부만 살짝 발췌를 해봤어요.
1.
김시선 : 넷플릭스 오리지널 <페르소나> - 썩지않게 아주 오래 (주연 아이유/이지은)는 어떻게 나온 작품인가요?
임필성 : 지은 씨 노래 중에 '잼잼'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어떤 남녀가 잘 아는 사람 같기도 하고 모르는 사람 같기도 한데 뭔가 거짓말 베틀을 하면서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거나 유혹하는 스토리거든요. 마침 제가 예전에 써둔 '마녀'가 나오는 아이템이 있었어요. 그거랑 접목해서 어리석은 남자를 좀 혼내주는 매력적인 여자 캐릭터가 나오는 그런 스토리를 해보면 어떨까.. 그 이야기를 지은씨가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2.
김시선 : 감독님이 찍은 영화들은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좀 멀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임필성 : 얼마 전에, 굉장히 나름 유명한 드라마 작가님의 해피엔딩 스토리인 드라마가 들어왔었는데, 되게 해보고 싶었거든요.. 이런 것도 한 번 진짜 찍어보고 싶다. 그런데 작가님이 제가 워낙 스릴러 장르 영화 위주로 찍다 보니 고민이 된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제 영화 중에 가장 해피엔딩인 영화는 <인류멸망보고서> - 헤비 버스데이라고 할 수 있죠.
김시선 : 감독님이 단편을 참 잘 찍는 거 같아요. '단편의 왕'이라는 생각까지 드는데
임필성 : 20대에는 단편의 왕이 괜찮은데.. 중년에는 단편의 왕은 굶어 죽습니다. 단편 영화는 판매처라는 게 애매하죠. 음악으로 따지면 싱글을 발표하는 거죠. 음악은 노래 한 곡으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오래갈 수 있는데, 영화는 그렇지 않죠.
3.
김시선 : 감독님은 시나리오를 어떻게 쓰시는 편인가요?
임필성 : 처음 5~ 10페이지 쓸 때까지가 가장 힘들고요. 거기에 첫 세팅을 해가지고 어디서 시작할 것인가. 주인공은 처음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 이런 것들을 고려해나가죠. 그러다가 중간 즈음에 위기가 한 번 와요. 미친 듯이 안 써지는.. 또는 벽에 딱 막히는? 거기서 돌파구를 찾으면 후반까지는 가요. 근데 그걸 넘어가지 못하면 한두 달 그냥 가요. 왜냐하면, 후진 이야기는 많이 떠오르는데 제일 좋은 방법이 안 떠오르니까.
김시선 : 감독님은 어디서 글을 쓰세요?
임필성 : 작가님들마다 다 다르겠지만, 예전에는 집에서는 못 썼어요. 요즘은 따로 작업실을 얻어서 쓰기도 하고 지방에 내려가서 쓰기도 하고. 저는 방해 안 받는 동굴 같은 곳에서 쓰면 좋더라고요.
근데 작가를 겸하는 감독이 힘든 게 뭐냐면, 작가만 하는 분들은 글을 쓰기 위한 루틴이 있을 텐데 영화감독은 거기에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거든요. 투자자도 만나야 하고 배우도 만나야 하고. 그래서 영화감독은 아주 예민한 아티스트적인 면과 경영을 잘할 수 있는 면 사이를 왔다 갔다 한다고 생각하셔야 해요. 그러다가 갑자기 글을 쓰려고 하면 집중되기가 쉽지 않죠.
<남극일기>를 쓸 때를 생각해 보면, 1년 이상 썼는데.. 뒤쪽이 막혀 있어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었어요. '한글과 컴퓨터' 워드 프로그램을 보면 커서가 깜빡 거리잖아요. 예전에 썼던 프로그램은 그게 깜빡거리지 않았어요. 근데 이 워드는 계속 깜빡 거리니까 그게 너무 신경 쓰여서 회사에 전화해서 이거 어떻게 끄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그만큼 예민해지는 작업이죠.
김시선 : 그거 끌 수 있나요?
임필성 : 못 꺼요. ㅎㅎㅎㅎㅎㅎㅎㅎㅎ
이외에도 워낙 임필성 감독 입담이 좋으셔서 재밌는 내용이 많습니다.
특히, 창작을 하는 분들이라면 공감하실 내용이 많을 것 같아요.
얼마 전에 연락을 드리니,
영화 수다 앞 부분에 말한 그 작품을 계속 찍고 계신 것 같더라고요.
많은 피드백(?)을 받는 대표적인 감독님이신데,
그만큼 영화 관객들의 기대감이 높다고 봐도 될 것 같고
능력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저는 그가 반드시 거기에 도착할 거라 믿는 사람입니다.
다음 영화가 나오기 전에, 이 오디오를 들으면서
임필성 감독의 전작을 가볍게 살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참고로, [김시선의 영화코멘터리]는 제가 제 욕망을 채우기 위해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영화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쭈욱 진행하도록 할게요.
아직 확정은 아닌데,
조만간 아주 뛰어난 감독님과 코멘터리 녹음을 할 것 같아요.
벌써 설레네요. 과연, 어떤 얘기를 나눌 것인가.
그럼 여기까지, 영화친구 김시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