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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향 Jul 16. 2023

맺고 끊음에 대하여

나와의 관계가 끊긴 그리고 앞으로 끊길 당신에게 전한다.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소중히 여기는 편이다.

당신이 그렇게 느꼈든 아니든,

나에겐 소중한 인간관계가 많다.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고 좋아하지 않는 표현이지만, 누군가는 인간관계를 관리하는 것이 ‘도움’과 ‘이용’을 위해서라고 한다. 고작 스물한두 살 때 처음 듣고 꽤나 충격이었던 이 말, 개인적으로 사람에게 ‘이용’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는 편이다. 내가 “나를 이용해”라고 말할 수 있다 쳐도 보통은 그 반대로 그 단어가 사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신이 믿든 안 믿든 나는 인간관계를 도움을 구하기 위해 관리하지 않는다. 사실 앞으로 한참 더 살아야 할 인생을 살며, 도움이 필요한 순간은 언제, 어떻게 생길지 모른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생각해서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난 생각보다 내 얘기를 정말 안 하는 편이다. 우리가 아무리 친해도 내 고민이 뭔지, 내가 최근에 무언가에 상처를 받았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렇듯 나는 단순히 그 사람이 ‘좋아서’ 기꺼이 시간을 내 만남을 갖고 못 본 지 10년이 됐더라도 매년 두세 번은 안부연락을 먼저 보내곤 한다. 그게 내가 좋아하는, 혹은 관심 있는, 혹은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게 결국 이용을 위한 방식 아니야?”라고 묻던 말이 통하지 않던 당신에게.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몰라도 솔직히 생긴 것과 정말 다르게 나는 애교도 없고 살갑지 못하다. 그런 내 최고의 애정 표현은 ‘예의’다. 개인적으로는 이 ‘예의’를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고 친하고 가까운 사이일수록 이 가치를 더 중요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몇 년 동안 정말 지독하게 친한 사이라 할지라도 1살이라도 나보다 언니나 오빠라면 말을 쉽게 놓지 않는 편이다. 물론 연장자인 상대방이 나와의 합의하에 내게 말을 편하게 하는 것은 괜찮다. 그러나 나는 ‘경어체‘를 유지한다. 때로는 상대방이 ”내가 불편해서 그러니 제발 (말을) 놓아달라“고 해서 몇 번 놓기도 한 것 같다. 거의 없는데 그밖에 혹시 내가 말을 놓은 관계가 있다면 그건 내가 당신을 많이 믿고 따른다고 생각해 주면 좋겠다.


20대의 첫출발, 대학생활 때부터, 사회생활 중인 지금까지 정말 많은 개인 혹은 단체와 인연을 맺었다. 우리의 시작이 혹여 쉬웠을지라도 정이 많은 성격이 아니지만, 또 정이 많은. 무엇보다 ‘사람을 너무 잘 믿어 탈인’ 내게 ‘끊음’은 이상하게도 마주하고 싶지 않은 단어였다.


인간관계에 있어 내 신조는 이거다. “일하기도 바빠 죽겠고 세상에 스트레스받을 게 얼마나 많은데 사람 때문에 굳이 스트레스받고 살아야 하나”. 10대, 사춘기 청소년들에게는 친구관계의 작은 마찰도 엄청난 고통을 주곤 한다. 어릴 때 친구와 아주 작은 트러블이 한 번이라도 있었다면 당신도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나를 초등학생 때부터 봐왔던 친구들이 내게 했던 말이 있다. “수정이는 다른 사람에게 ‘누가’ 싫다는 말을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는데 네가 만약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문제일 거야”라고. 누구와도 거리낌 없이 잘 지내려는 내게 참 좋은 말이나,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 말을 100%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나도 누군가에겐 ’문제‘의 인물일 수도 있을 테니.


예시가 길어졌는데 두 문단 전 이야기의 결론은 내가 한 번 인연을 맺으면 잘 끊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대외활동이든 동아리든, 그 단체 생활에 문제가 있었을지언정 임기를 다 채우고 활동을 마무리지었다. 그전에 그만둔 케이스가 손에 꼽을 정도로 있는데 그건 다 너도 알고 쟤도 알고 얘도 아는, 너도 나도 쟤도 얘도 그만두게 만든 ‘이유’가 있어서였다. 나는 일, 활동이 힘들어도 사람이 좋아서 못 그만두는 사람이기에. 재밌는 건 그리고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그들은 나에게 연락이 왔고 도움을 청했다는 것.


사회생활을 하니 더 다양한 사람을 만났는데 난 예나 지금이나 내가 어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앞길 창창한 ‘나이’때문에 혹여 내가 안주할까 봐. 지금도 ‘쟤는 왜 맨날 바빠’로 보이듯 대학생 때도 난 늘 바빴다. 그래도 어딘가에 정말 소속돼 돈을 받고 근무한 것은 24살부터였으니 그때부터라고 쳐보자. 흔히 사람들이 내게 말하듯 나이가 어렸고 어렸기에 내가 본 그 다양한 사람들은 대부분 나보다 ‘훨씬’ 어른이었다. 나보다 어린 후배가 생긴 지도 오래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일을 하면서 또래를 만난 적이 없었고 늘 나이 상 막내였다.


그리고 내가 그 다양한 ‘어른’을 보며 느낀 것은 ‘존경‘과 ’실망‘이었다. “나도 이다음에 저런 (인생) 선배가 돼야지, 나는 후배가 생기면 저런 못된 마음은 안 들 것 같은데” *여기서 말하는 선배는 꼭 같은 직종 업계를 뜻하는 것이 아니니 오해 없길. 상사, 직원, 어떤 사람이든 인생의 길을 먼저 걸어 본 ’선배‘로 표현할 수 있는 거니까.


내 인생은 감사하게도 ‘존경’을 느끼게 해 준 어른이 더 많다. 그러나 손에 꼽을 정도의 ‘실망’을 안겨준 어른들도 있기에. 이 구구절절한 글도 시작된 셈이다. 그들은 놀랍게도 공통된 말을 했다. “다 너를 위한 거야, 지금은 돈을 벌 때가 아니라 공부하고 배울 때야.”라고. 여기서 그들이 말하는 공부와 배움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일’이다. 지금 나는 학생이 아니니까. 프리랜서로서 5년 간 여러 회사, 기관, 외주 업체, 혹은 개인과 일을 해왔기에 때로는 ‘내가 부르는 게 값, 혹은 그들이 부르는 게 값’인 경우가 많았다. 그들의 눈에는 아직도 내가 ‘어리기’때문에 후자로 치부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게 문제지만. 주체가 나인지, 당신인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정말로 슬프게도 나는 5년을 일해도 당신보다 어리고, 10년을 일해도, 20년을 일해도 계속해서 당신의 눈에는 ‘어리다’. “쟤는 나이는 많은데 실력이 없어서 안돼”라고 하는 그들은 “어린데 너만 한 애가 없어”라는 그들은 말 그대로 ‘모순적’이다. 실수로 달력을 잘못 둔 걸까, 그들의 시계는 고장 났을까.


세상은 참 좁다. 얘랑 쟤가 아는 사이고 얘는 나랑 친구고 쟤는 나랑 적일 수도 있는 게 인생이다. 그런 좁은 세상, 든든한 관계가 많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방적 ‘도움(요청)’과 ‘이용’이 아닌 ‘의지’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는 관계가 더 많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뒤에서 하는 이야기를 참 싫어하지만 내가 안 한다 쳐도 들리는 걸 막을 수는 없더라. 좁은 세상이다 보니 때로는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도 들린다. 좋은 이야기면 함께 기뻐하고 그의 ‘미담’을 보탠다. 하지만 내가 몰랐던 당신의 이야기라면 (그 사람이 그럴리가, 오해겠지) 의심하고 혹은 나도 느꼈던 당신의 문제일지라도 혼자만 묻어둔다. 우리의 관계는 우리가 맺었으니 ‘끊는 것’도 우리만의 이유로 해야지 않겠는가.


그리고 나는 ‘끊음’을 준비 중이다. 거절하지 못했던 성격 탓에 내 시간과 비용, 이미지를 손해 보면서까지 도와주던 나, 문제는 그걸 ‘손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순진했던 나. 한때 친구라고 생각했던 관계에게 무리한 요구에 대해 정중히 거절 혹은 실망감을 드러낸 적이 있다. 돌아보면 내가 친구라고 생각했던 그들은 나를 ‘이용’했었구나 싶은데, 그들은 결국 이용권 연장에 실패한 셈이다. 몇 년을 참다가 정돈된 이유와 함께했던 ‘한 번의 거절’은 몇 사람을 거쳐 ‘상처’ 줄 단어로 돌아오더라. 참 재밌는 게 사실 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이상 주변 사람에게 관심이 없는 편이라 연락이 뜸해지면 이름과 얼굴을 잊어버린다. 그런데 어딘가에서는 내게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몇 있더라. 내가 내 뒷이야기를 들으면 그걸 전해준 친구에게 하던 말이 있다. 그냥 제발 나한테 물어봤으면 좋겠다고. 우리는 누구보다 정보 출처의 중요성을 잘 알지 않는가.


작년과 올해 나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었다. 그리고 다가올 내년을 기다리며 이제는 ‘끊음’을 준비 중이다. 아직도 여린 나지만, 당신의 행동에 나는 답가를 보낸다. 아직은 부족한 나지만, 앞으로의 한 단계 ‘성장’이, 먼 훗날 ‘성공’이, 당신에게 ‘훈장’이 되지 않도록.  


2023.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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