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상처(2)

해피 저축은행 김선수(효라빠 장편소설) 4회.

by 효라빠

선수는 어리버리와 정신없음으로 첫 날을 보내고 퇴근을 했다. 힘들고 피곤했지만 아르바이트가 아닌 직장이 생겼다는 마음에 기분만은 가뿐했다.

선수가 오래된 중고 화물차를 아파트 주차장에 세우고 현관 비밀 번호를 누르고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 저 왔어요."

"......"

"엄마!"

"......."

자신의 첫 출근을 기쁘게 반겨줄 줄 알고 집으로 왔는데 집안 분위기가 왠지 모르게 냉랭했다. 선수는 엄마를 한 번 더 부르며 전 여사의 방문을 열었다.

"엄마! 저 왔어요?"

"응~ 왔구나. 첫 출근인데 잘하고 왔어?"

전 여사가 힘없는 목소리로 말하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엄마. 어디 아파요?"

"몸살 기운이 좀 있나 봐. 컨디션이 별로 좋지 않구나"

"약은 드셨어요?"

"아니, 아직. 이따가 더 심해지면 먹어야겠다."

"아버지는요?"

"글쎄. 모르겠다. 어디 나갔나 보다."

아버지를 찾는 선수의 질문에 짧게 대답했다. 선수는 또 무슨 일이 있었구나 하는 느낌이 바로 들었다.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게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전 여사 손등의 상처가 선수의 눈에 들어왔다.

"엄마, 손이 왜 이래? 다쳤어요? 밴드를 많이 붙였네. 많이 다친 거 같은데?"

"아니야. 아침에 음식 하다 칼에 살짝 베었어"

전 여사는 선수가 출근하고 나서 있었던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힘없이 대답했다.

괜히 말해서 아들이 걱정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거실의 유리 조각은 전 여사가 다 치워버려서 선수는 아침의 상황을 눈치챌 수 없었다.

"엄마 병원 가봤어? 상처가 큰 거 같은데?"

"아니, 안 갔어. 피도 멎있고. 약도 발랐으니 이제 괜찮을 거야"

"그래도. 다쳤을 때 바로 가지 그랬어. 칼로 베인 상처는 바로 꼬메야 빨리 아물어"

"응. 더 아파지면 그러도록 할게. 첫 출근은 할만했어? 배고프지?"

"응. 첫날이라 정신없었어. 아~ 배고파. 엄마 밥 줘!"

전 여사는 말을 돌리려는 듯 일부러 선수의 첫 출근에 관한 말을 꺼냈다.

"빨리 씻고 와. 저녁 맛있게 차려 줄게"

"네. 알겠어요. 아, 배고파~"

선수는 씻으러 들어가고 전 여사는 아픈 손을 이끌고 저녁을 차렸다.


전 여사는 김 선생과의 싸움이나 언쟁이 있을 때 세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자신만 힘들면 되는데 아이들까지 힘들게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그래서 전 여사는 가슴의 상처와 외로움이 더 컸을는지도 몰랐다. 단지 그뿐만 아니었다. 집안일을 하다가 크게 다쳐도 가족들한테 말하지 않았다. 문지방에 걸려 넘어져 손목이 부러졌어도 혼자 병원에 가 깁스까지 하고 오는 전 여사였다.

전 여사는 여자의 삶보다는 엄마의 삶을 택했다. 그동안 모든 게 아이들에게 맞춰져 있었다. 그런 삶을 살다 큰딸 예린이 결혼을 하며 서울로 떠난 후로는 마음 한구석이 텅 비어버리는 거 같았다. 행복한 결혼식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온 전 여사는 홀로 방에 누워 하염없이 울었다. 그나마 옆에서 대화 상대가 되어 주었던 딸마저 떠나 버리자 그 빈자리가 너무나 크게 다가왔다.

이제 선수가 취업을 하자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그럴수록 비참해지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식탁에는 선수가 가장 좋아하는 청국장찌개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다. 선수는 꿈질 꿈질한 냄새만 맡았는데도 어금니 안쪽에서 시큼한 침이 고였다.

"우와~ 내가 제일 좋아하는 청국장찌개네~ 이야. 냄새부터 죽인다. 하하하. 엄마 잘 먹을게!"

"응. 그래. 체할라 천천히 먹어."

"엄마는 안 먹어?"

"별로 생각 없어. 먼저 먹어"

선수는 청국장 국물과 찌개 속에 든 돼지고기 덩어리를 압력밥솥에서 막 퍼서 따끈따끈한 흰쌀밥에 비벼 한 움큼 입에 넣고 볼이터져라 씹어댔다. 지쳐있던 몸이 엄마의 사랑으로 기운이 솟아나는 듯했다.

정신없이 밥을 먹던 선수의 눈에 식탁 구석에 있는 이상한 무언가가 들어왔다. 손으로 만져 보니 작은 유리 조각이었다. 식탁 위에 놓여있는 몇 개의 영양제 통을 들어 내자 눈에 보일 듯 말듯한 작은 유리 조각들이 흩어져 있었다.

전 여사가 치운다고 치웠지만 경황이 없어 구석의 작은 유리 파편까지는 치우지 못한 듯했다.

청국장을 오물거리던 선수의 표정이 굳어지기 시작했다.

"엄마! 손 줘봐?"

"왜. 그래. 갑자기?"

"아씨~ 엄마 손 줘보라고! 아까 무슨 일 있었죠?"

"아냐. 아무 일 없었어"

"무슨 일 있었잖아. 솔직히 말해봐. 아빠랑 또 싸웠지? 손에 상처도 아빠 때문에 생긴 거 아냐?"

"......."

전 여사는 거실 소파에 앉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엄마, 아빠랑 또 싸웠지?"

"......"

"엄마 말해봐. 나라도 알아야 할 거 아냐? 왜, 항상 아무 말도 안 하는 거야?"

선수는 손에 들고 있던 숟가락은 놓았다. 유리조각과 엄마 손등의 상처를 보자 화가 나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배고픔과 허기짐도 이내 사라져 버렸다.

"선수야, 엄마 너무 힘들다."

전 여사가 닫혀 있던 입을 힘겹게 열고 짧게 한마디 했다.

"또. 싸웠어? 손등에 상처도 아빠 때문이지?"

"그래."

"식탁의 유리 조각도?"

"응"

"아~~~. 진짜!!! 아빠는 왜 그러는 거야! 미치겠네!"

성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어떤 상황이 발생했을지 대략 상상이 같다.

"엄마, 무슨 일 있었는지 있는 그대로 말해봐!"

"너 출근 한 뒤로 아빠와 말싸움을 했어, 아빠가 또 흥분해서 숟가락을 던졌는데 식탁 위에 있는 컵에 맞았어. 컵이 깨지면서 유리 조각이 내 손등에 박힌 거야."

"뭐라고요? 아니. 아빠는 갈수록 왜 그러는 거야. 이제 나이 드셨으면 조용해질 때도 되지 않았어!"

"나도 모르겠다. 이런 일이 하루 이틀이냐. 옛날부터 그랬는데 그때는 내가 아무 말도 않고 쥐 죽은 듯이 조용히 다 받아주고 살았으니까 이런 일이 안 생겼던 거지."

"돌아버리겠네. 진짜! 아빠는 어디 가셨어요?"

"모르겠다. 이제는 어디 갔는지 신경 쓰기도 싫다. 엄마는 지금까지 너희들 잘 자라는 게 내 인생의 목표였고 전부였다. 그래서 지금까지 참고 살았어, 누나는 시집갔고 너는 이제 취직했으니 나도 좀 편하게 살고 싶다. 성수는 아직 공무원 공부하고 있지만 그 나이면 지 앞 길 충분히 갈 나이가 됐고."

"그럼, 이혼하시게요?"

"......"

이혼하고 싶냐는 선수의 질문에 전 여사는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전 여사의 마음속에는 이혼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쉽게 결단이 서지 않았다. 많지 않은 재산이지만 분할을 해서 위자료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평생을 전업 주부로만 살아온 그녀가 혼자됐을 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잘 자라기만을 바라보며 살아온 인생이 한순간에 바보같이 느껴지자 그동안 참고 있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선수 너는 엄마 마음 모른다. 엄마는 너희 아빠랑 살면서 단 한 번도 행복이라는 걸 느껴 본 적이 없었어.

엄마도 이제 나이가 60이 넘었지만 여자란다. 아빠한테 사랑한다는 표현을 해달라고 바라지도 않아. 같이 밥 먹을 때 많이 먹으라는 말 한마디와 추운 날씨에 감기 드니까 따뜻하게 입으라며 옷깃 여며주는 손길 하나 만이어도 행복했을 거야. 그런데 엄마는 이날 이때까지 살면서 너희 아버지한테 단 한 번도 그런 말, 그런 행동을 못 받아봤다. 아니지 그런 거 바란 내가 미친년이지. 말하다 흥분해서 물건 집어던지지 않고, 내가 말할 때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지 않았어도 지금처럼 이런 마음 들지도 않았을 거야."

"네. 저도 엄마 마음 알아요. 아빠가 엄마한테만 그랬나요. 우리한테도 엄하기만 한 아버지였지."

"정말 이제는 더 이상 못 받아주겠다. 그런다고 이혼을 해야 할지 아니면 집을 나가야 할지.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흑, 흑, 흑"

전 여사가 말하면서 감정이 복받치는지 폭풍 오열을 했다. 먹다 만 청국장찌개를 앞에 두고 앉아 있는 선수는 깊은 한숨이 나왔다. 선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서울에 있는 누나 예린에게 전화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띠! 띠 띠디~ 띠디딕! 철컥!' 현관문의 비밀번호가 열리는 전자음이 들려왔다. 선수의 아버지 김 선생이 밖에서 일을 보고 들어온 것이었다.


다음 5회에 계속됩니다. (월, 금요일 주 2회 올릴 계획입니다. 바쁘면 못 지킬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