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상처(1)

해피 저축은행 김선수(효라빠 장편소설) 3회.

by 효라빠

선수가 서둘러 출근을 하고 분주하던 집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방 안에서 티브이를 보고 있던 김 선생은 무릎이 튀어나온 추리닝 바지를 주섬주섬 끌어올리며 거실로 나왔다.

배에서는 '꼬르륵~' 소리가 났지만 아침 먹으라는 전 여사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참다 참다 배가 고파 스스로 밥을 챙겨 먹기 위해 주방의 냄비와 밥통을 뒤졌다.

밥통의 밥을 퍼서 그릇에 담고 선수를 주기 위해 끓인 소고기 뭇국을 국그릇에 담는데 갑자기 짜증이 밀려왔다.

"어이~ 밥도 안 주고 뭐 하고 있는가?"

"......"

"방에서 뭐하냐고?"

"......"

김 선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방으로 들어간 전 여사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밥과 국으로만 밥을 먹고 있던 김 선생의 머리에서는 서서히 열이 오르기 시작했다.

"빨리 와서 반찬 차려 주게!"

"......"

"아~ 진짜! 반찬 꺼내 주라고!"

주방에서의 김 선생의 고함소리에 못 이긴 듯 전 여사가 방에서 나왔다.

"당신이 찾아 먹으면 되잖아요? 지금까지 37년 동안 당신 밥 차려 줬으면 이제는 알아서 차려 먹어도 되지 않아요? 내가 당신 종 이에요? 선수도 이제 취직했으니 저도 좀 편하게 살게 귀찮게 하지 좀 마세요!"

"아니, 이 사람이 뭐라는 거야? 선수 취직하고 당신 편한 거랑 뭔 상관이야?"

"뭐긴 뭐예요! 앞으로는 당신 밥 안 차릴 거니까 알아서 차려서 먹어요! 나도 이제 엄마 자리 내려 놀 거예요. 선수는 먹어야 하니 밥이랑 반찬은 해 놀 테니 당신이 차려 먹든가 말든가 알아서 하세요"

"뭐가 불만인데 요즘 계속 짜증 내고 그러는 거야?"

"당신은 그게 문제요? 나하고 37년을 살면서 아직 까지 모르겠어요?"

"아침에 선수 출근하는데 소리 질렀다고 그러는 거야?"

"휴~~~ 옛날이나 지금이나 당신은 변한 게 하나도 없어요!"

"아~ 그러니까. 말을 하라고 말을, 서운 한 거 있음 말을 하면 될 거 아니야?"

"내가 지금까지 말을 안 했어요? 그러면 당신이 바뀔 수 있어요? 그리고 지금 까지 살면서 내가 이러는 게 처음이에요? 당신 성격 맞춰 주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그 순간만 미안하다고 하고 또 버럭 화내는 성격 이제는 지긋지긋해요. 결혼하고 살면서 단 한 번이라도 나에게 따듯한 말 해준 적 있어요? 우리가 이런 걸로 처음 싸워요? 교사 박봉에 애들 셋 키우고 도련님이랑 아가씨 누가 다 대학까지 보냈어요? 아직도 그런 걸 몰라요?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당신은 알 수가 있어요? 더 말해봐요?"

선수의 어머니 전 여사는 그동안의 쌓여있던 울분을 토해내듯 소리를 질렀다. 조금이라도 더 흥분하면 눈물이 쏟아질 듯 눈자위가 발갛게 도드라져 보였다.

"아니~ 그러면 나는 놀았는가? 애들 키우기 위해 필요한 돈, 그 돈 누가 벌어다 줬는데? 그거 내가 벌어다 준거 아냐? 왜 자네만 다 했다고 그러는 거야? 씨발!"

"아버지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 아니에요? 당신이 돈 벌어다 준 거 말고 한 게 뭐가 있어요? 애들 어렸을 때 셋 한꺼번에 키우면서 단 한 번이라도 옆에서 도와준 적 있어요? 아니면 학교 다닐 때 조금이라도 신경 써준 적 있어요? 항상 소리만 지르고,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윽박지르고, 물건 깨부수고 이제는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요. 도저히 이제는 이렇게 살 수 없어요!"

"그래서? 이제 와서 다 내 잘못이라는 거야?"

"당신은 항상 당신 생각만 했어요. 언제 한 번이라도 살갑게 말이라도 해준 적 있어요? 아니면 남들처럼 와이프라고 따뜻하게 챙겨 준 적이 있어요? 이러다가 화나면 또 뭐 집어던지고 그럴 거 아니에요?"

"아이고.... 또 약점 잡은 거 나오는구먼, 그래 너 잘났다. 잘났어! 지금까지 고생해서 처, 자식 위해서 돈 벌어다 줬더니 이제는 다 필요 없다 이거 구만, 아이고 좋은 세상이다. 좋은 세상이야. 알았으니까 당장 꺼져!"

김 선생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손에 쥐고 있던 숟가락을 식탁 위로 내팽개쳤다. 숟가락은 유리컵과 부딪쳐 쨍그랑 소리와 함께 컵의 파면이 주방 여기저기에 튀었다.

'아! 아!'

전 여사의 입에서 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왔다. 식탁 위에 있던 유리컵이 깨지면서 튀어나간 유리 파편이 전 여사의 손등에 박혔다.

"또, 성질 못 참고 깨 부시기 시작했네요?"

"뭐라고? 다 엎어버리기 전에 조용히 하고 있어. 씨발~ 지금 선수 첫 출근하는 날이라 참는 거야!"

"......"

김 선생의 버럭 하는 성질을 잘 알고 있기에 일이 더 커질게 두려운 전 여사는 말대꾸를 하지 않고 피신하듯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손등에 박힌 유리 조각은 주름진 손등을 더욱 애처롭게 만들었다. 힘들게 자식들을 키웠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자글 자글한 주름들 사이로 피가 흘러 방바닥에 뚝뚝 떨어졌다. 떨어지는 핏방울 들은 전 여사의 한이고 설움이었다. 방바닥에 떨어진 핏방울 위로 전 여사의 눈에서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이 떨어져 겹겹이 쌓였다.

전 여사는 손등의 상처보다 자신의 주변에 아무도 없다는 설움에 가슴이 미어지고 답답해졌다. 미친 듯이 울고 싶었지만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결혼 생활 37년 동안 수없이 울었던 울음은 한이 되어 가슴속에서 말라 버린 듯했다. 오른손으로 반대쪽 손등에 박힌 유리컵의 파편을 집어 들었다. 박혀있는 유리 조각을 빼자 피가 거침없이 흘렀다. 화장대 옆에 놓인 티슈를 뽑아 흐르는 피를 막았다. 순백색의 하얀 화장지가 검붉은 피로 물들었다. 상처 부위의 화장지는 금세 피로 가득 찼다. 몇 차례 화장지를 뽑아 상처를 누르자 피가 멈추는 듯했다. 피가 살짝 멈추자 상처가 보이는 곳에 연고를 바르고 밴드 3개를 이어 붙였다. 그만큼 상처가 컸다. 상처 위에 붙인 밴드에는 검붉은 핏자국이 애절하게 스며들었다.

응급실로 가야 할 거 같은 큰 상처였지만 연고와 밴드를 붙이는 걸로 대신했다. 전 여사는 침대의 한쪽에 웅크리고 누웠다. 한쪽 벽을 바라보고 등이 굽은 새우처럼 쪼그려 누운 전 여사의 눈에서는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그 한이 서린 눈물이 소리 없이 배게에 젖어들었다.

37년의 결혼 생활 동안 김 선생은 전 여사를 부인으로서의 대우를 하지 않았다. 김 선생은 가부장적인 가장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여자는 집에서 살림만 하고 아이들을 잘 키우며, 남편에게 순종적으로 사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구 시대의 사람이었다.

그런 전 여사와 김 선생은 김 선생이 정년퇴직을 한 후로 잦은 마찰이 생겼다. 그 전에는 그러려니 하고 참던 전 여사가 어는 순간부터 참지 않고 본인의 의사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둘의 싸움은 커지기만 했다. 김 선생의 젊었을 때 폭력적인 행동도 슬금슬금 다시 나오고 있었다.


"많이 다쳤어?"

"....."

"많이 다쳤으면 빨리 나와 병원 가보게~"

"......"

자기 방으로 들어간 전 여사는 김 선생의 물음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염명하네! 그러게 뭐한디 성질 돋우고 그래! 안 그랬으면 다칠 일도 없었잖아!"

"......"

전 여사 들으라고 하는 말인지 아니면 혼자 미안해서 하는 말인지 김 선생은 전 여사의 방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지만 여전히 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아무것도 없었다.

거실에 깨진 유리컵 파편들을 놔두고 김 선생도 아직 분이 풀리지 않은 듯 식~식~ 거리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김 선생은 김 선생대로 불만이었다. 본인은 처자식을 위해 평생을 교단에서 희생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알아주는 가족들은 아무도 없었다. 엄마와 아빠가 싸우면 3명의 아이들은 엄마 편만 들었다. 어렸을 때는 아무 말도 못 하던 애들이 커갈수록 김 선생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럴수록 김 선생은 주변의 물건을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말로는 상대가 안되므로 자신의 답답한 속을 표현하는 의사 표현 수단이 폭력으로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럴수록 가족들과의 사이는 점점 멀어져 갔다. 그날도 김선수가 사회인으로 첫 출근 하는 기분 좋은 날이었지만 노년 부부의 골이 깊게 파인 싸움으로 인해 그 기쁨이 묻히고 말았다.


4회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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