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관문의 비밀번호 패턴을 풀고 집으로 들어온 김 선생과 식탁에 앉아있는 선수의 눈이 마주쳤다.
선수는 아무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이상하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엄마에게 낮에 있었던 일과 손등의 상처에 관한 말을 들었을 때는 감정이 복받쳐 아버지에게 험한 말이라도 막 퍼붓고 싶었지만 막상 아버지를 대하자 말문이 막혀버렸다.
김 선생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먼저 입을 열었다.
"첫 출근은 할만했냐?"
"......"
"사람들은 잘해주던?"
"아버지?"
"왜?"
"아버지, 자꾸 왜 그러세요. 이제는 성질 좀 죽일 때도 되지 않았어요?"
아버지의 질문을 무시하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던 선수가 말을 꺼냈다.
"엄마한테 얘기 들었냐?"
"네. 왜 엄마를 이렇게 힘들게 하세요? 옆에서 지켜보려니 너무 속 상하잖아요? 다른 아버지들은 나이 드시면 조용조용 사시는데 아버지는 언제까지 그 성질 가지고 갈려고 그러세요? 무덤까지 가지고 가실 거예요?"
"뭐라고? 이놈의 자식이 네가 뭘 안다고 그래?"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던 선수가 말을 하기 시작하자 말이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자신의 말에 흥분해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 선수의 아버지 김 선생도 격앙된 선수의 말을 좋게 받아주지 않았다. 버럭 하는 그의 성질에 불을 붙였다.
"제가 모르긴 뭘 몰라요? 저도 서른 살이 될 때까지 아버지를 옆에서 지켜봤으니까 다 알죠. 아버지 버럭 하시는 성격에 가족들이 얼마나 힘들었어요? 제발 이제는 성질 좀 그만 부리세요!"
"또, 그 애기냐? 그래 성질 좀 부렸다. 그렇다고 내가 네 엄마를 두들겨 패기를 했냐. 쌍욕을 했냐? 이야기하다가 열 받아 물건 좀 집어던진 거 말고 뭐가 있냐?"
"아버지, 물리적으로 직접 폭력을 써야 폭행이 아니에요. 상대방이 위협적으로 느끼면 폭력행사가 된다구요. 이제는 그 성격 좀 제발 고치세요. 그러다 보면 엄마를 폭행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어요? 막말로 아버지 성격이 좋아서 엄마 때리고 않고 참으신 건 아니잖아요? 엄마가 아버지 물건 집어 던지는 행동이 무서워서 그 자리를 피해 지금까지는 그런 일이 안 생긴 거 아니에요? 만약에 엄마가 아빠 말에 꼬치꼬치 대꾸하고 맞 받아쳤다면 아버지 성격에 엄마 두드려 패고도 남았을 거예요!"
"뭐라고? 이놈의 새끼가 말하는 것 봐라? 그래, 그럼 지금까지 너희들 학교 보내고 키운 돈은 누가 벌어 왔냐? 자식새끼들 다 키워 놨더니 아버지를 무슨 범죄자처럼 대하고, 내가 그렇게 못나고 나쁜 사람이냐? 40년 동안 교직 생활하면서 나름 성실한 게 일하고 퇴직했더니 이제 남은 게 아무것도 없다. 그렇다고 너희 들은 이 아버지를 한 번이라도 따뜻하게 대해줘 봤냐? 이 아빠가 살인을 저질렀냐? 강도를 했냐? 술을 먹고 행패를 부렸냐? 내가 그렇게 잘못했냐? 퇴직하고 2년이 넘었다만 내가 집에서 티브이 보는 거 말고 하는 게 뭐 있냐? 남들처럼 술을 먹고 다니기를 하냐, 돈을 펑펑 쓰고 다니기를 하냐? 그런데 너희들은 이 아버지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그러냐 이 말이다!"
"아버지 그 말이 아니잖아요! 아버지께서 고생 안 하셨다는 게 아니잖아요? 왜 엄마한테 그렇게 하시냐 그 말이에요. 좀 따뜻하게 대해주실 수 없냐 이게예요? 진짜 속 터져 죽겠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어! 다 똑같어. 지금까지 돈 벌어다 키워 줬더니, 그래 니들 잘났다. 잘났어. 나는 누구 하나 말할 사람 있는 줄 아냐? 잠깐 몇 시간 학교 보안관 일하고 집에 들어와 있으면 나도 정말 우울하다. 마땅히 얘기할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남들처럼 내가 무슨 취미활동을 하는 거도 아니고 "
"그러니까 나가서 좀 돌아다니세요? 다름 사람들처럼 등산을 다니던가 여행을 다니던가 집에만 계시지 마시고 활동 좀 하세요? 이제 자식들 다 크고 연금도 나오니 그럴 여유 충분히 있잖아요."
"내가 안 하고 싶어서 그러냐? 그러려면 돈 쓰고 다녀야 하잖아. 그렇게 돈 쓰고 다니는 게 싫다."
"자신을 위해서 돈 쓰는 거 너무 아까워하지 마세요. 부자는 아니지만 두 분 노후 걱정 안 할 정도로 연금 나오잖아요?"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어! 너희들은 지금 세상이 좋아서 그렇지 우리 어렸을 때는 얼마나 먹고살기 힘들었는 줄 아냐? 네가 쌀이 없어 쫄쫄 굶으며 고구마로 하루 세끼 때워봤냐? 그나마 고구마라도 있는 집이면 다행이지. 돈이 없어 얼마나 학교를 힘들게 다녔는지 알아? 이 아버지는 어렸을 적 진짜 공부 잘했지만 돈이 없어 선생밖에 못했다. 너희들처럼 뒤를 밀어주는 부모 있었더라면 선생이 아니라 더 큰일을 해도 했을 거야. 거기다 더 공부하고 싶었지만 밑으로 동생들 대학 보내고 돌봐야 해서 할 수 없었다. 물 길어다 집 같지도 않은 집에서 자취하며 밥해먹고 동생들 밥 먹이고 월사금을 못내 학교에서 매일 혼나며 힘들게 학교 다니며 그렇게 살아봤냐고? 너도 죽을 만큼 힘들게 살아봤다면 나한테 왜 돈을 못쓰냐고 그런 말 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더 말해봐? 더 얘기해도 믿지도 않을 거다. 그런 죽을 만큼 힘든 세월을 살아봐야 너희들이 말하듯 나 하고 싶은 거 하고, 놀고 싶은 거 놀며 돈 쓰는 게 쉽지 않는지 알 텐데, 호강에 초진 다고 너희들은 좋은 세상에서 태어나 그런 말은 하기 쉬울 것이다. 아버지 상황도 모르면서 무조건 내가 잘못이라고만 해. 속이 답답해서 내가 죽어 버리던가 해야겠다. 나 죽고 나면 엄마랑 너희들 아주 발 뻗고 살겠지? 그래 내가 죽을 란다 내가 죽어. 내가 죽고 나서 너희들 아주 행복하게 잘 살아라!"
김 선생이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흥분하기 시작했다. 목소리만 커지는 게 아니라 소리까지 지르자 목에 혈관들까지 울긋불긋 해지고 살짝 벗어진 이마가 붉게 변하고 있었다.
김 선생은 자신이 유년시절에 힘들게 살아온 이야기나 지금까지 가족들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하면 극도로 흥분했다. 흥분된 상태에서 말을 들어주지 않거나 조금만 더 자극을 하면 화를 못 이겨 주변의 물건을 던지거나 부셨다.
"선수야~ 그만해라 그만해. 그만하고 빨리 밥 먹어. 아직 저녁도 다 못 먹었잖아"
김 선생의 목소리가 커지고 얼굴이 흥분한 듯 울그락 불그락 해지자 전 여사가 선수를 말렸다. 또 아버지의 어렸을 적 이야기가 나오자 선수도 못 이긴 척 전 여사의 얼굴을 쳐다보며 아버지의 시선을 외면했다.
그 이야기는 처음 듣는 게 아니었다. 김 선생은 처음 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수도 없이 들었던 이야기였다. 먹을 거 없이 힘들게 자취하며 동생을 보살폈단 이야기가 나오면 아버지랑은 더 이상 대화가 안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이야기에 말대꾸해서 집안이 폭탄 터지듯 난리 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일이 또 생길 거 같아 선수도 더 이상 대꾸를 하지 않고 조용히 아버지와의 대화를 외면해 버렸다.
선수가 고개를 돌리자 흥분해서 말을 하던 김 선생도 말을 멈추고 그의 방으로 들어가버렸다. 거실에는 일 순간 정적이 흘렀다.
방으로 들어간 김 선생은 방바닥에 드러누운 채 리모컨을 집어 들었다. 항상 하듯이 아무 생각 없이 티브이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즐겨 보는 '나는 자연인이다'의 성우 목소리가 나왔다. 아무 걱정 없이 산속에서 사는 자연인이 그날따라 유독 부럽게 느껴졌다. 대리만족이라도 하듯 자연인이 산 생활하는 걸 보자 조금씩 진정이 됐다.
가족들에게 감정 폭발해서 흥분하고 나면 항상 그렇듯 '왜 그랬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김 선생도 선수의 말이 다 틀리다고는 생각하지는 않았다. 맞는 이야기도 많았다. 그렇지만 대화를 하다 보면 화가 나고 감정 주체가 되지 않았다. 전 여사의 손등에 붙여진 밴드도 눈에 떠올랐다. 순간 더 후회가 밀려왔다.
김 선생이 방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았다.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김 선생의 아버지도 김 선생의 어머니에게 많은 폭력을 휘둘렀었다. 그 당시에는 가정폭력은 폭력도 아니었을 때였다. 당연한 일일 정도로 엄마들은 맞고 살았다. 김 선생은 어머니를 생각하면 항상 불쌍했다. 김 선생이 중학교 때였던 추운 겨울날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흠씬 두들겨 패고 엄마를 쫒아내 버렸다. 김 선생은 엄마가 입술이 찢어지도록 아버지에게 맞고 있어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버지에게 대들어 봐야 자신도 맞을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엄마가 맞고 있는 게 너무 불쌍하고 안타까웠지만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덜덜 떨고 있는 거 말고는 아무것도 할 게 없었다. 엄마는 그렇게 쫓겨나듯 집을 나갔다. 그 후로는 엄마는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엄마를 볼 수 없었지만 엄마를 원망하지 않았다. 차라리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은 절대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본인도 그 모습을 닮아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거라면 아버지처럼 전 여사를 폭행하지는 않았다. 선수의 말대로 그것도 본인이 참아서라기 보다는 전 여사가 피해서 그런 건지도 몰랐다. 눈을 감고 있는데 그때 아버지에게 맞고 집을 나가던 엄마의 마지막 얼굴이 떠올랐다. 몇십 년이 지났지만 김 선생의 눈에서 마지막 엄마의 모습은 전혀 잊혀지지 않았다. 엄마가 도망가 버린 이후로 엄마 생각이 나면 항상 드는 결심이 있었다. 자신은 결혼하면 아버지와 같은 폭력적인 남편은 되지 말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본인도 그런 아버지를 닮아버렸다. 그럴수록 자신은 더 비참해지고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을 하며 살았다. 이런 상황이 생기면 방구석에 누워 후회를 하면서도 아내와 애들을 대하는 자신은 변하지 않았다. 속 마음으로는 다음에는 절대 이러지 말자 하지만 행동은 항상 똑같았다. 그런 자신이 더 비참하고 죽고 싶었다. 막상 이런 말을 하고 싶어도 주변에 얘기할 상대는 아무도 없었다. 교육자로서의 성격상 자신의 치부를 누구한테 말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걸 가족들은 조금이라도 할까 하는 생각이 들자 더 속이 미어지기 시작했다. 어쩌면 본인은 그러고 싶지 않은데 그런 행동을 하는 걸 가족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더 그러지도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론은 어떤 답도 내려지지 않는 답답한 심정뿐이었다.
선수는 숟가락을 내려놨다. 자기가 좋아하는 청국장찌개지만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다.
"엄마!"
"응?"
"이제 앞으로는 아버지랑 말 많이 하지 마세요. 그냥 한 집에서 둘이 각자 산다고만 생각하세요. 아버지가 지금 바뀌실 거 같지도 않고, 더 뭐라고 해봤자 일만 커질 거 같고 그냥 무시하고 사세요."
"나는 안 그러고 싶데, 자꾸 이렇게 간섭을 하고 잔소리를 하니까 그러는 거지"
"제가 다음에 아버지가 진정하시면 말씀드려서 엄마랑 서로 간섭하지 않으면서 집에서 지내라고 할게요. 그게 서로한테 좋을 거 같아요."
"그래. 알았다. 네 말이 무슨 말인지 알겠으니까 그렇게 할게"
"나도 너희 아버지가 가만히 있으면 먼저 말하기도 싫다. 내가 뭐가 좋아서 말하겠냐"
"네. 앞으로는 그냥 그렇게 사세요. 지금 이혼하는 거도 이것저것 복잡하고. 정 엄마가 이혼하고 싶다면 그렇게 하는 거지만 엄마도 아직은 그런 거 같진 않으니까. 제가 말한 대로 해요."
"그래, 알았다. 한번 그렇게 해보자. 그러다 보면 무슨 답이 나오겠지."
"네. 그렇게 하세요"
"응. 오늘 일은 어땠냐?"
"뭐 첫날이라 정신없었죠. 직원분들이 다 좋으신 분들인 거 같아서 재밌을 거 같아요. 해봐야 알겠지만요. 아~ 그리고 제가 하는 일은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는 게 아니라 오토바이를 타면서 조합원님들의 상가를 돌면서 일을 한다고 그러네요. 승진하면 사무실에서 대부(대출) 업무 한다고 해요."
"아~ 그래. 이런 일 저런 일 따지게 생겼냐. 요즘 세상에 그런 은행에 취직한 것만 해도 다행이지. 엄마, 아빠 너무 걱정하지 말고 네 일 착실하게 해라.
"네, 그럴게요. 열심히 해 보려고요. 사람들 만나는 거 좋아하니까 적성에는 맞을 거 같아요"
"그래. 그렇다니 다행이다. 피곤할 텐데 빨리 자, 내일 또 출근하려면"
"네. 그럴게요"
선수는 엄마와 대화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왔다. 의자에 앉아 멍하니 벽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냥 지쳤다.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다.
엄마와 아버지가 그렇게 싸우는 모습을 하루 이틀 본 게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매번 당하면서도 바보처럼 사는 엄마와 자신의 행동을 제어 못하는 아버지, 옆에서 지켜보며 해결도 못하는 자신 모든 게 싫었다.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답도 나오지 않았다. 나오는 거라고는 깊은 한숨뿐이었다.
책상 위에 올려져 있는 스마트폰 옆에 사무실에서 이성재 대리가 집에 가서 돈 세는 연습하라고 건네준 신문지 다발이 보였다.
그 다발은 이선재 대리가 가위로 잘라준 돈 세는 연습용 신문지 다발이었다. 해피 저축은행의 전통 중에 하나라고 했다. 신규직원이 들어오면 바로 윗 선임이 만들어 준다는 연습용 가짜 지폐 뭉치였다. 그걸 보자 첫날인데도 살뜰히 챙겨주는 선배의 마음에 웃음이 씩 나왔다. 왼손으로 잡고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돈을 세는 연습을 했다. 맘처럼 쉽지 않았다. 손가락보다 눈 커플이 더 힘들었다. 자기도 모르게 순간 눈 커플이 내려왔다. 선수의 입에서는 '아~ 졸려~~~' 외마디가 흘려 나오며 신문지 뭉치를 바닥에 떨어 트리고 책상 옆 침대에 몸을 눕협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긴장되어 많이 힘들었던 첫 출근하는 날이 지나고 있었다.
내일 부터는 이선재대리와 직접 거래처를 방문하게 된다고 했다.
다음 6회에 계속됩니다. (월, 금요일 주 2회 올릴 계획입니다. 바쁘면 못 지킬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