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김선수입니다. (1)

해피 저축은행 김선수(효라빠 장편소설) 6회.

by 효라빠

어김없이 찾아오는 평일 아침. 이성재 대리는 은행 현관에 있는 빨간색 버튼을 눌렀다. 묵직한 철문이 '드르륵~ 드르륵~ 소리와 함께 위로 올라갔다. 올려진 철문을 보던 눈동자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자신의 후임인 그 누군가를 찾고 있었듯 했다.

김선수는 아직 출근 전인지 주차장에는 호로(천막)가 쓰인 화물차는 보이지 않았다. 이성재는 버튼을 누른 손을 슥슥 비볐다. '이제 이것도 인수인계를 해줘야겠군' 혼잣말을 하며 입구 한쪽 구석에 세워진 오토바이 두 대를 은행 앞으로 옮겼다.

"안녕하십니까? 이 대리님 나오셨어요?"

멀리서 헐레벌떡 뛰어오던 김선수가 이성재 대리에게 큰소리로 인사했다.

"놔두십쇼! 제가 하겠습니다."

"아~ 그럴런가? 하하하. 선수 씨 이제 출근하면 가장 먼저 할 일은 은행 철문 올리고 주차장에 오토바이를 꺼내는 것부터 일과 시작이에요."

"네. 이대리님. 내일부터는 제가 일찍 나와서 하겠습니다."

"눈치는 빠르구먼 하하하. 오늘부터 선수 씨 하고 나하고 자기 오토바이 타고 같이 거래처를 돌면서 하나씩 하나씩 인수인계하면서 업무를 배울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열심히 배우겠습니다."

선수의 목소리에 긴장감이 서려있었다.

사무실에 들어가자 직원들이 업무 시작 전에 청소를 하고 있었다. 선수도 이성재 대리에게 청소구역을 설명받고 밀걸레를 집어 들었다.


"안녕하세요! 조은영 씨 조은 아침입니다."

"아~ 네. 네. 풉!"

"킥킥킥. 이름이 아주 조으시네요~"

"네..... 감사합니다."

선수의 썰렁한 유머에 은행의 막내 여직원인 은영이 미소를 뗬다. 짧은 단발머리에 화장기 없는 그녀의 볼이 불 그래 해졌다.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입사한 그녀는 23살 막내였다. 동생 같기도 한 단발머리의 그녀가 선수는 편하게 느껴졌다. 은영은 선수의 관심이 싫지만은 안은듯한 표정을 지었다.

"은영아? 너 얼굴 빨개진 거니?"

"빨개지긴 뭐가 빨개져!"

"아닌데~ 빨게 졌는데~ 킥킥"

"언니, 자꾸 알지도 못하면서 왜 그래요?"

데스크의 맏언니 장은주의 농담에 은영이 소리를 지르며 자리를 옮겼다. 은영의 갑작스러운 반응에 옆에 서 있던 선수도 당황스러웠다. 테이프로 묶어진 은영의 슬리퍼가 눈에 띄었다.

은영의 슬리퍼가 안쓰럽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무언가 말로 설명하기 힘든 이상한 기분이 선수의 마음에 내려앉았다.

장은주는 김선수를 보며 재밌다는 듯 윙크를 보내고 자신도 자리를 떴다.


은영은 화장실로 들어가 세면대의 거울을 봤다. 단발머리에 화장기 없는 자신의 얼굴이 오늘따라 왠지 더 초라하게 보였다. 평상시에도 꾸미는 걸 그리 좋아하지 않는 털털한 성격의 그녀였지만 그날은 그런 자신의 모습이 못마땅해 보였다. 그러면서 선수와의 짧은 대화가 떠오르자 가슴속에 무언지 모르는 설렘이 돋아나는 듯했다. 손을 들어 짧은 단발머리를 묶어보기도 하고 앞머리를 올려보기도 하고 어떻게 하면 예쁘게 보일까 하고 생각해봤다. 평상시엔 전혀 그런 것에 신경이 쓰지 않았는데 갑자기 그런 자신을 보고 있자 다시 얼굴이 불 그래 해지는 걸 느꼈다. '이게 무슨 기분일까?' 뭔가 자신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거 같았지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직 첫사랑을 해보지 못한 은영은 이상한 기분이 무엇 때문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다만 가슴이 새초롬하게 콩닥콩닥 뛰는 건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사무실로 들어가면서 선수가 무얼 하는지 힐끔힐끔 쳐다보며 자기 자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선수 씨. 돈가방 하고 pda 챙겼죠? 이제 슬슬 출동해 봅시다."

"네. 이 대리님."

사무실에서 이성재 대리의 발걸음을 따라 은행 밖으로 나갔다.

"자. 오토바이 키 받아요. 오토바이 탈 수 있다고 했죠?"

"잘은 아닌데. 그 뭐지, 뽈뽈이는 타봤습니다."

"뽈뽈이가 뭐야? 아~ 50cc 당기기만 하면 나가는 거?"

"네~"

"응. 이거는 'city 100'이라고 그거랑 비슷해. 기어 변속하는 페달이 있긴 하지만 클러치가 없어서 그냥 밟고 기어만 넣으면 돼. 뽈뽈이 탈 수 있으면 이것도 어렵지 않게 탈 수 있을 거야."

"네. 이대리님. 이 헬멧은 쓰고 다니나요?"

"아~ 이거? 이거는 당연히 장식용이야. 킥킥킥. 그럴 일은 거의 없는데 간혹 경찰들이 오토바이 헬멧 미착용자 특별 단속할 때 단속 딱지 보호용으로 쓰고 다녀. 뭐~ 선수 씨는 쓰고 싶으면 쓰고 알아서 해. 나는 귀찮아서......"

"오토바이의 핸들 한쪽에 자동차 헬멧인지 자전거 헬멧인지 아니면 작업장에서 쓰는 헬멧인지 모를 작은 헬멧 하나가 걸려있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오토바이 헬멧과 비교해 보면 좀 작은 듯했다. 머리에 헬멧을 올리고 은행의 유리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니 왠지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말이 좋아 부자연이지 바보 같았다. 젠틀하게 차려입은 정장에 생뚱맞은 오토바이 헬멧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걸 보자 이성재 대리가 왜 장식용이라고 말했는지 알 수 있었다. 멋지게 헤어젤을 바른 머리가 벌써 납작해져 있었다.

"선수 씨. 오른쪽에 빨간색 버튼 보이지? 그게 스타트 버튼이야 그걸 누르면 시동이 걸리니까 시돌 걸어봐"

"네."

'드르렁~' 소리와 함께 오토바이 시동이 걸렸다.

"저번에도 말했지만 가방은 목숨처럼 여겨야 해. 지금은 수금 전이라 현금이 150만 원 남짓이지만 4시 반쯤 수금이 끝날 무렵에 현찰로 1~2천만 원은 가방에 들어올 거야. 만약 그걸 분실한다면, 내가 더 이상 말하지 않아도 선수 씨는 정말 큰일 나겠지?"

"네, 네...."

이성재 대리의 얘기에 긴장감이 흘렀다.

"자~ 선수 씨, 가방을 핸들과 무릎 앞에 끼운 후 다리를 팔자로 벌리고 가방을 안 움직이게 지탱해 주면서 오른손의 스트롤을 당기면 오토바이 가 나갑니다. 알겠지?"

"네, 네. 이 대리님"

5월의 상쾌한 바람이 부는 아침이었지만 선수의 등줄기에서는 식은땀이 흘렀다. 오토바이를 탈 수는 있었지만 너무 오랜만이었고 돈이든 가방까지 들자 긴장이 됐다. 필요 없을 거 같은 헬멧은 역시 거추장스럽기만 했다.

"자~ 출발합시다"

"네. 뒤따라 가겠습니다."

이성재 대리가 기어를 넣고 스트롤을 당기며 부르릉~ 출발했다. 선수도 그 뒤를 따라서 스트롤을 당겼다.

"아! 아! 선배님~ 선배님!"

갑자기 선수가 소리를 질렀다. 오토바이 엔진 소리에 이성재 대리는 선수의 긴박한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어~ 뭐지!' 선수의 오토바이가 갑자기 출발과 동시에 시동이 꺼졌다. 선수가 다시 스타트 모터를 눌렀지만 오토바이는 아무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이성재는 아무것도 모르고 바람을 가르며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고 있었다.

'선배님~ 이대리님! 이성재 대리님! 저 시동이 안 걸려요? 저기요~~~ 저기요!!!'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선수의 긴박한 목소리는 성재에게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으아~' 비명을 지르면 선수는 오토바이을 놔둔 체 달리기 시작했다. 목숨과도 같이 여기라던 가방은 오토바이 위에 올려져 있었다. 달리는데 왼발의 뒤꿈치가 쓰라려 왔다. 첫날 신을 때부터 물집이 잡혔었는데 지금은 물집이 터져나 보다, 무척 쓰라렸다. 하지만 달릴 수밖에 없었다. 손을 흔들었다. 성재는 여전히 100m 선수처럼 달리는 선수를 눈치 채지 못했다.

'이 대리님~ 이성재 대리님~~~' 목청껏 소리를 지르는 수밖에 없었다.


건널목에서 신호대기 중이던 택시운전기사가 저 사람은 뭐가 저리 급하나 하는 표정으로 신기하게 쳐다봤다. 선수가 소리를 지르며 한 손을 급하게 앞뒤로 내 저으며 뒤뚱뒤뚱 뛰는 모습이 신기해 보였는지 뒤에 손님에게 말을 건넸다.

"손님~ 저기 좀 보세요. 킥킥킥"

"네!"

"저기~~~ 오리 아저씨 있네요. 하하하"

손님은 기사 아저씨가 가리키는 손가락 끝으로 시선을 돌렸다. 거기에는 선수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급하게 뛰고 있었다.

"푸하하하, 저 아저씨 무척 급한가 본데요. 하하하. 뭐가 저리 급해서 뒤뚱뒤뚱 죽기 살기로 달리는지 궁금한데요?"

"그러게요. 하하하 가서 물어볼 수도 없고."

선수가 침묵이 흐르던 택시 안에 몸개그로 웃음을 선사하고 있었다.


이성재는 시원하게 달리다 사이드 미러의 거울로 선수가 잘 따라오나 고개를 돌려봤다.

'어~ 뭐야!!!' 이성재의 입에서 외마디 외침이 흘러나왔다. 오토바이를 타고 와야 할 선수가 달려오며 팔을 흔들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하도 긴박하게 흔드는 선수의 손이 오라는 건지 가라는 건지 헷갈릴 정도로 손을 세차게 흔들고 있었다. 급하게 달려오는 걸음걸이도 매우 부자연스럽게 보였다.

이성재가 '끼익~' 소리와 함께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았다.

"선수 씨 왜 달려와? 오토바이는 어떻게 하고?"

"헉헉헉 서..... 선배님. 시..... 시동이 이상합니다."

급하게 달려오며 숨을 헐떡 거린 채 외쳤다.

"선수 씨! 가방은?"

"아! 맞다! 가방! 으악~ 오토바이랑 함께 있는데요"

"아니, 가방은 오토바이랑 함께가 아니라 선수 씨랑 함께 해야지~ 가방을 놔두고 오면 어떡해. 그거 분실되면 선수 씨가 다 변상할 거야? "

"가방!!!"

선수는 다시 비명을 지르며 멈춰 선 오토바이가 있는 쪽으로 절뚝거리며 더 급하게 달려갔다.

택시 안의 기사 아저씨와 손님은 신호를 받아 출발하면서 선수를 보며 한번 더 웃었다.

선수가 웃길 작정이었다면 택시 안의 분위기로는 선수의 몸개그는 아주 성공한 듯싶었다.


"헉! 헉! 헉! 가방은 살아있습니다!"

"다행이네. 가방은 군대에서 총하고 같이 생각하라고!"

"네네, 이 대리님."

이성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선수가 거친 숨을 헐떡거리며 정신없이 가방을 들쳐 맸다.

"시동이 왜 꺼진 거야?"

"잘 모르겠는데요."

"이거는 클러치가 없어서 기어 변속을 해도 시동이 안 꺼지는데 이상하네...."

"......."

선수는 아무 말이 없이 얼굴로 흐르는 땀을 소매로 연신 닦아 내고만 있었다.

"아이고~ 오토바이 키가 가방끈에 걸려 off 위치에 있네. 출발하면서 가방 끈이 시동을 꺼버렸나 봐. 오토바이 시동은 그렇다 치고 가방은 항상 잘 챙 여야 해 그러다 큰일 날 수 있어"

"네.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대리님"

"뭐 나에게 죄송할 건 없고, 앞으로 잘 챙겨"

"......"

"자~ 이제 제대로 출발해 보자고, 내 뒤에 잘 따라와. 사무실에서 준 거래처 명단 순서대로 갈 거니까. 가서 손님들에게 선수 씨 인사시켜드리고, 내가 은행업무 어떻게 하는지 잘 보라고. 알았지?"

"네....."

선수는 여전히 흐르는 땀을 닦으며 짧게 대답했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가방 잘 지키고 잘 따라다니자 이 생각만 하며 다시 오토바위 위에 올라탔다. 긴장된 상태로 시동을 걸었다.

다행히 시동은 걸렸다.

'부르릉~ 부르릉~' 스트롤을 소심하게 당기며 선수는 이성재 대리의 뒤꽁무니를 쫒기 시작했다.


다음 7회에 계속됩니다. (월, 금요일 주 2회 올릴 계획입니다. 바쁘면 못 지킬 수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