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라빠 장편 소설 18회
[앞으로는 실수 없이 일처리 잘할 수 있지?]
[네... 일직사제님. 신경 써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일하는 걸 라영이라는 여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일처리 했는데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정말 궁금하네요. 참나~]
[네가 완벽하게 못했으니까 그랬겠지. 궁금하긴 뭐가 궁금해~]
[아닌데...]
뭔가 찝찝했지만 강림도령은 하려던 말을 멈췄다.
마트 여사장은 아직도 놀란 게 사라지지 않은 얼굴로 라영을 쳐다보며 말을 걸었다.
"라영아~ 이번에도 네가 말한 그 사람들이 보인 거야? 와~ 어떻게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지. 내 눈으로 직접 목격했지만 도저히 믿기지 않는데. 아까 선수 씨 놀라는 표정 봤지? 내 말을 무시하고 듣지도 않던데 정말 놀래서 눈이 동그래져 가더라고. 하하하"
"그 사람들이라면... 누구?"
"저번에 우리 아저씨 밤낚시 나갈 때 네가 못 가게 잡았잖아. 이상한 사람 둘이서 나타나서 그랬다고, 다행히 우리 아저씨는 배 침몰 사고 면했고, 기억 안 나?"
"아~ 기억나죠."
"그때 보였다던 사람들 말하는 거야. 이번에도 그들이 보여서 2층 박스가 무너진 걸 네가 예감한 거 아냐? 마트 백 주임도 안 다치고..."
"그게... 이번에는 그 사람들이 보인 게 아니라. 마트 쪽으로 우연히 고개를 돌렸는데 2층에 쌓인 과일 박스들이 흔들리면서 쓰러지려고 하던데요. 그래서 소리 지른 거예요"
"아~ 그런 거였어? 킥킥킥. 난 또 네가 이상한 사람들을 봐서 그런 줄 알았네. 그럼, 선수 씨가 낚인 건가~"
"뭐... 그렇다면 그런 거 같네요"
"푸하하하. 어쨌든 선수 씨 표정 봤지? 그 긴장한 표정이 얼마나 우습던지. 아마 선수 씨는 지금 머리가 상당히 복잡할 거야. 히히히"
둘의 대화처럼 라영은 이번엔 저승사자를 목격한 것이 아니었다. 우연히 고개를 들었는데 사고가 발생할 거 같아 소리를 질렀는데 정말 과일박스가 2층에서 무너져 내린 거였다.
은영이 선수만 낚은 게 아니라 저승사자인 일직사제와 강림도령까지 낚아버렸다.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일직사제에게 혼이 난 강림도령이었다.
선수는 그 내막도 모르고 다음 거래처인 마트 안 정육코너에서 조합원을 만나고 있었다.
"형님. 저 왔습니다."
"선수 왔어?"
"아니, 벌써 점심을 드세요?"
"점심이라긴 뭐하고 아점이지, 아점."
"네. 역시 정육점이라 반찬이 돼지고기군요, 야~ 제육볶음 정말 맛있게 보이는데요. 하하하."
"자네도 아침 안 먹었으면 이리 앉아. 밥 먹고 해~"
"아뇨. 저는 일해야 해서요. 근데 정말 맛있어 보이긴 하네요. 와~ 소주까지... 캬~ 맛있는 제육볶음에 소주라... 낮술이 무지 당기네. 업무만 아니었음 바로 앉았을 텐데 가슴이 아프네요. 하하하"
"나만 맛있게 먹는 거 같아 미안한 걸~"
"그런데 대낮부터 무슨 술을 이리 많이 드셨어요? 이건 반주가 아닌 거 같은데요."
"그런가?"
넓지 않은 정육코너 안쪽으로는 테이블이 하나 놓여있었다. 손님용 자리라기보다는 사장인 대현이 주로 앉아서 식사하는 테이블이었다.
점심 먹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아점이라고는 하지만 테이블 위에는 소주병이 놓여 있었다. 선수는 안주가 좋아서 가볍게 먹나 보다 했는데 테이블 밑에 빈 소주병이 하나 더 있는 게 반주가 아닌 거 같았다.
그러고 보니 대현의 얼굴도 평상시와는 달리 많이 무거워 보였다. 단순히 술에 취했다기보다는 뭔가 일이 있는 사람 같은 표정이었다.
"형님. 무슨 일 있으세요? 대낮부터 술을 너무 많이 드신 거 같은데요"
"일이라기보다는 그냥 요즘 술이 많이 당기 구만..."
"장사해야 하는데 너무 많이 드시면 안 되죠"
"그러긴 하지. 휴~"
대현은 짧게 대답을 하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정육점을 하면서 고기를 많이 먹어서 인지 대현의 체격은 상당히 컸다. 그는 대학교 때까지 엘리트 유도선수로 운동을 했다. 졸업 시기가 왔을 때 전국대회 성적이 좋지 못해 실업팀으로 가지 못하고 운동을 그만뒀다. 대학은 졸업했지만 유도 특기생이라 일반 기업체에 입사하기가 쉽지 않았다. 수많은 면접에 떨어졌고 취업은 포기하다시피 하며 백수로 지냈다. 그런 생활을 보다 못한 부모님이 도와준 돈으로 정육점을 차렸고 혼자 운영하고 있었다.
선수와 나이 차이도 많이 나지 않고 같은 총각이라 말이 잘 통했다. 마트에 들릴 때마다 살갑게 대해서 조합원과 거래처 직원보다는 형, 동생으로 호칭을 할 정도로 가까워졌다.
가끔 퇴근시간에 서로 맘이 맞으면 안쪽의 테이블에서 소주도 기울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서로의 살아온 이야기까지 잘 알고 있었다. 둘 다 성공보다는 실패가 많았던 사람들이라 대화가 쉽게 통했고 서로가 서로에게 많은 위안이 되었다.
마트 한쪽에서 진지한 대화를 나누던 두 저승사자는 고민이 생겼다. 마트에서의 실수로 인해 사자 명부의 누락에 관해 저승 기록계에 통보를 해야 했다. 만약 합당한 사유를 대지 못하면 징계를 받을 수도 있었다. 강림도령보다는 일직사제가 더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일직사제님 솔직하게 보고하면 되지 않나요?]
[하~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고민이네. 솔직하게 말을 해야 하나... 아님 다르게 보고 해야 하나... 거짓말이 문제가 아니라 혹시나 일처리를 제대로 못했다고 징계가 떨어질까 봐 그러는 거지. 너도 알잖아 나 이번에 승진심사 있는 거 그래서 점수에 예민한 거 몰라? 참... 복잡하구먼... 하여튼 그건 그렇고 명부에 있는 다음 명단은 누구야. 앞으론 절대 실수하면 안 된다. 알았지?]
[네. 신경 써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강림도령이 긴장한 채로 대답을 하고 사자 명부를 훓터봤다. 일직사제는 하늘을 쳐다보며 어떻게 해야 할지 계속 고민하는 듯했다. 머리에 쓰고 있는 갓이 점점 뒤로 기울어져 벗겨지려고 하는데도 생각에만 몰두했다. 고민하는 표정에 창백한 얼굴이 더 창백하게 보였다.
시간이 지나도 강림도령이 명부의 다음 이름을 말하지 못하고 머뭇머뭇거리고 있었다.
[뭐하냐?]
[......]
일지 사제가 감았던 눈을 뜨며 강림도령을 쳐다봤다.
[야~ 다음 누구냐고?]
[아~ 그게... 한자가 많아서...]
[너 인마 저번에 자격증 있다며. 그런 놈이 망부 명단도 제대로 해석 못해?]
[아... 그게 도깨비 공채 가산점 받으려고 딴 거라... 실제 하고는 잘 안 맞더라고요]
[아이고 속 터져서. 야! 이리 줘봐~]
일직사제가 사자 명부를 뺏다시피 했다. 가죽 두루마리처럼 되어 있는 사자 명부를 펼쳤다. 정말 그 속에는 한자와 저승사자 어가 가득 차 있었다. 저승사자 어는 모양부터가 특이했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인간계의 글자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이집트의 상형문자 같기도 하고 아라비아어 같기도 한 그림인지 어쩐지 모를 이상한 문자였다. 가끔 적혀있는 한자도 쉬은 글자들이 아니었다. 일직사제가 저승 어를 손가락으로 집어가며 자세히 읽어 내려갔다. 실수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거 같았다. 간혹 정신없는 저승사자들이 사자 명부 해독을 잘못해 이름이나 나이, 사는 곳이 비슷한 사람을 오인해서 데리고 가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럴 때는 저승 기록계가 뒤집어지는 날이었다. 저승사자는 인간계에 전혀 간섭할 수 없는 게 불문율인데 그로 인해 인간들의 인생이 복잡하게 꼬여버리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런 실수가 발생한다면 저승사자에서 십대왕으로 승진하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평생을 이승과 저승만 왔다 갔다 해야 했기 때문에 일직 사제는 신경을 써서 사자 명부 해석을 했다. 몇 번을 해석한 일직사제가 강림도령에게 말을 했다.
[다음 망자도 가까운 곳에 있구만~]
[가까운 곳이요?]
[그래... 어디 보자]
일직사제가 마트 안을 쭉 둘러봤다. 검은색 마스카라인지 다크서클인지 모르지만 검은색으로 보이는 눈으로 한쪽을 쳐다봤다. 마트 안은 오전이라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았다. 일직사제가 쳐다보는 곳은 선수가 들어가 정육코너 사장인 대현과 대화를 하고 있는 곳이었다.
[일직 사제님 저기 정육코너에 있는 사람인가요?]
[그래.]
[그럼 저기 검은 가방을 메고 있는 사람인가요? 우리가 저승으로 데리고 갈 사람이?]
[가만있자... 위치는 저곳인데 다시 한번 확인해 보자. 사람 실수는 큰 실수니까.]
일직사제가 사자 명부를 다시금 쳐다보며 말을 했다.
[음~ 젊은 총각이네...]
[네. 저 사람이라고요. 잘 알겠습니다.]
[어~ 이번엔 좀 쉽겠는데.]
[쉽다니요? 왜요?]
[응. 이번엔 사유가 '자살'이야]
[아~ 자살이요? 하하. 다행이네요]
[하긴 너한테는 다행이겠다. 좋냐? 좋아?]
[뭐 좋다기보다는 일단 부담은 없잖아요. 자살이니까. 히히히]
[그렇다고 너무 방심하지 마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간혹 사자 명부 사유가 '자살'로 적혀 있는 경우가 있었다. 자살 같은 경우는 인간 스스로 생명을 끊는 것이기 때문에 저승사자들은 일처리가 수월했다.
자살을 시도하는 인간의 옆에서 기다리다가 숨이 끊어지는 순간 육체에서 영혼만 불리시켜 저승으로 데리고 가면 되기 때문이었다. 이런 자살 같은 경우는 보너스라고 생각하면 됐었다. 이번엔 명부에 자살로 기록되어 있었기 때문에 마음 편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대낮부터 일도 하지 않고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대현의 모습을 보자 선수가 퇴근하고 들려 얘기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형님~ 대낮부터 너무 많이 드시지 마시고 그만 드세요. 저는 다음 거래처가 있어서 먼저 일어나 봐야 할거 같아요"
"그래. 고마워. 그리고 보니 우리도 꽤 친해졌네. 이런 말까지 해주고. 선수야~ 고맙다. 요즘 많이 힘들었는데."
대현이 고맙다는 말을 하며 깊은 한숨을 쉬었다. 나름 잘 나가던 유도 유망주에서 성공하지 못한 낙오자가 되어 버리자 주변에는 많은 사람이 떠나갔다. 그때 은행 직원으로만 알고 있던 선수가 이렇게 따뜻한 말을 해주자 대현은 조금이나마 힘이 나느거 같았다.
"형님. 이따 퇴근하고 저랑 소주 한잔하실래요?"
"나는 괜찮은데 선수가 시간 돼?"
"네. 오늘 퇴근하고 특별한 일은 없을 거 같아요"
"그래. 그럼. 일 마치고 정리하고 있을게 퇴근하고 들려. 멀리 가지 말고 여기서 먹자. 고기 좋은데로 준비해 놀게"
"네. 형님. 저야 좋죠. 하하"
"그래. 고생하고. 이따 봐~"
"네. 형님"
선수의 한잔 하자는 말에 대현은 마시던 술을 그만 마시고 식탁 정리를 했다. 그래도 그의 표정은 우울하기만 했다. 선수는 마트에서 거래처를 다 돌고 다른 곳으로 가기 위해 방구(오토바이)위에 올랐다.
'방구야~ 와~ 아침부터 뭔지 뭔지 모르겠는데. 정말 이상한 일이 생겼어. 그 라영이라는 사장님이 정말 영혼을 볼 수 있을까? 거참 믿기도 뭐하고 안 믿기도 뭐하고... 특이한 일이야'
방구는 그 말을 알아 들었다는지 '부르~ 부릉' 소리를 냈다.
'짜식~ 알아들었다고? 하하하' 그나마 네가 있어 혼자 다니는 게 덜 외롭구나. 자 다음 코스로 달려볼까?'
선수가 다음 코스로 가기 위해 스토롤을 당겼다.
마트 안에 있던 강림도령이 선수를 쫓아갔다. 서둘러 선수에게로 가는 강림도령을 일직사제가 불렀다.
[야! 어디 가는 거야?]
[네? 다음 명부에 올라와 있는 사람이 이 사람이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