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 씨! 라영은 영혼을 볼 수 있어!(2)

효라빠 장편 소설 17회

by 효라빠

'쿠쿵~ 쿵!!!'

천둥소리와 같은 굉음과 함께 그 직원이 서 있는 바로 옆으로 2층에 쌓여있던 과일 박스들이 우르르 떨어졌다.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지만 라영의 외침으로 직원은 무사할 수 있었다. 라영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고 마트 여사장과 선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의 얼굴만 쳐다봤다.

여사장이 선수에게 '봤지!'라는 듯한 눈길을 보냈다. 선수는 놀란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거렸다.

자기 눈앞에서 그런 상황이 발생하니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선수는 당황스러웠다.

조합원 가입서 작성을 끝내고 내일부터 들리겠다는 인사를 남긴 후 선수는 다음 코스인 정육코너로 발길을 옮겼다.

검은 가방을 들쳐 메고 커피숍을 나오며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커피 기계 앞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카페라테를 만들고 있는 라영의 모습을 보며 그녀에 대한 궁금증이 더욱 일어났다.


과일 박스가 쓰러진 곳 뒤에서 특이한 복장을 한 두 명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야! 강림도령! 너 일 똑바로 못해? 지금 이게 몇 번째 실수야? 망자 명부(名簿)에 적혀있으면 저승으로 데리고 가야 하는데 이게 몇 번째 실수냐고? 진짜 돌아버리겠네. 너 때문에 또 징계 먹게 생겼잖아. 아씨~ 진짜.

저승사자 고시 내 동기들은 다 승진해서 십대왕(十大王:저승에 올라온 죽은 사람이 생전에 지은 선행과 악업 따위를 재판한다고 하는 열 명의 왕) 연수 중인데 나는 언제까지 이렇게 이승에서 인간들 데리고 저승까지 왔다 갔다 해야겠냐고?]

[죄... 죄송합니다. 일직사제님. 제가 한다고 했는데 이상하게 일이 자꾸 틀어지네요.]


라영이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해 마트 여사장에게 말했던 얼굴이 창백한 사람들이라던 그들이었다. 라영은 그들이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저승에서 내려온 저승사자였다.

두 저승사자는 선임과 후임이었다. 선임은 일직 사제라는 저승사자이고 조금 젊어 보이는 후임은 강림도령이라는 저승사자였다.

이들의 임무는 이승에서 죄를 짓거나 수명이 다한 사람을 저승으로 데려가는 일을 한다. 그들이 데리고 갈 사람들의 이름이 망자 명부에 적혀 있었다.

인간들은 저승세계에 대해 알지 못했다. 간혹 라영처럼 저승사자나, 이승에서 저승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영혼을 볼 수 있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인간세계인 이승 말고 저승이 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알지는 못했다.

인간들은 죽으면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헤어져야 하기 때문에 무조건 슬플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도 저승을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는 게 당연할 것이었다. 하지만 저승이라고 해서 무조건 무섭고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이승은 현재의 삶을 의미하며 저승은 내세의 삶을 말한다. 쉽게 말해 이승은 이곳의 삶, 저승은 저곳의 삶을 뜻한다.

승과 저승의 두 세계가 이분법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 같았지만 이승과 저승은 공존하는 공간이다. 그 두 곳을 이어주며 이승에서 생을 다한 인간을 저승으로 데려가 십대왕 앞에서 심판받게 하는 역할을 저승사자들이 한다. 오히려 제때에 저승사자를 만나지 못해 이승에서 떠돌아다니는 영혼이 불쌍한 영혼들이다.

사람들은 이승에서 생명을 다하면 끝난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의 육신을 떠난 영혼이 저승에서 더 편한 내세의 삶을 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저승에는 인간들이 무섭게 생각하는 지옥이 있지만 선행을 행한 선한 영혼들이 머무르는 극락(천국)도 있기 때문이다.

이승에서는 살인, 사기, 성폭력 등 흉악한 범죄가 수 없이 발생해 죄 없는 인간들이 고통을 받지만 저승에서는 십대왕의 판결에 의해 흉악한 인간들은 지옥으로 떨어져 고통스러운 내세의 삶을 살기 때문에 인간 세계와 같은 범죄가 발생할 수 없다. 국민을 위해 일한다고 하며 자신의 뱃속만 채우는 가증스럽고 얼굴에 철판을 드리운 더러운 청치인들도 없었다.

십대왕들은 인간 세계의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었으므로 공정한 재판을 치를 수 있다. 저승사자에 의해 이승에서 저승으로 인도된 선량한 영혼들은 재판을 받은 후 극락(천국)에서 편안한 내세를 지냈다.


[야~ 강림도령?]

[네. 일직사제님.]

[너 혹시 낙하산으로 저승사자 된 거 아냐? 염라대왕님 라인이지? 아니면 너 같이 어리바리 한 놈이 어떻게 저승사자 고시 통과했지? 도저히 이해불가네... 너 사자 고시 몇 회야?]

[저... 저는 고시 출신은 아니고 도깨비 공채 출신입니다. 낙하산은 절대 아닙니다.]

[뭐? 도깨비 공채라고, 도깨비 공채가 어떻게 저승사자를 하고 있지?]

[네. 그게... 도깨비 공채로 저승에 입문해서 전과 과정을 통해 저승사자로 들어왔습니다.]

[어쩐지... 사자 고시 출신들이 이렇게 어리바리할 수 없지.... 그럼 그렇지]

[고시 출신은 아니어도 도깨비 공채로 높은 경쟁률을 뚫고 들어왔습니다. 나름 자격증도 많이 있구요]

[쳇. 무슨 자격증 가지고 있는데?]

[망자판명 1급 자격증, 사자명부 해독사 1급, 쇠사슬 묶기 3단, 어학으로는 저승사자어 강사 자격증 있습니다.]

[뭐~ 그 정도면 아주 멍청한 놈은 아니구만... 그런데 일을 왜 이딴 식으로 하는 거야. 응? 방금도 이게 뭐냐고 사자 명부에 있는 마트 직원이 명(命)을 다해 저승으로 데리고 가야 하는데 네가 또 실수를 해버렸잖아. 짜증 나서 진짜! 일처리 할때 내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전부 다 챙겨야겠어? 응? 너도 실적 잘 챙겨서 승진해야 할거 아냐? 언제까지 만년 강림도령만 하고 있을래? 아이고 속이 터져서... 너 강림도령 몇 년째야?]

[그게... 이승 시간으로 하면 100년 동안 하고 있습니다.]

[봐봐. 그럴 줄 알았다. 니 동기들은 다 승진했지?]

[다는 아니고, 많이는 했죠...]

[이그. 말대꾸 하나는 끝이 없어요.]


두 저승사자는 방금 일어난 실수에 관해 대화를 하고 있었다. 과일 박스 사고에서 살아남은 직원은 명부에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 보통은 질병으로 죽는 사람이 명단의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젊은 나이임에도 명단에 올라가 있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그 명단은 저승 기록계에서 담당하기 때문에 저승사자들은 왜 그들의 이름이 올라가 있는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의 임무는 명단에 올라와 있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면 되는 거라 인간들이 죽어야 하는 이유는 관심이 없었다. 있다 해도 그건 불문율이라 저승사자도 알 수 없었다.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갈 때는 저승사자들도 가슴이 많이 아팠다. 그 아이들 부모가 흘리는 눈물과 가슴 아픈 사연을 저승사자들이 다 감뇌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보니 저승에서도 저승사자는 3D 직업 중에 하나였다. 그런 이유로 일직사제는 승진해 저승사자의 임기를 끝내 그런 안타까운 사연을 더 이상 보기 싫었다. 그러기 위해선 부사수 강림도령이 잘해야 하는데 일처리가 영 어설펐다. 특히나 선량하게 사는 사람들이나 아이들을 저승으로 데리고 갈 때는 일부러 그러는지 아님 정말 실수로 그러는지 종종 실패를 하곤했다. 일직사제도 그럴 땐 못 이긴 척 넘어갔지만 이제는 본인도 승진을 해야 할 때라 자꾸 눈에 거슬렸다.


[야~ 강림도령!]

[네. 일직사제님]

[근데 너는 복장이 왜 그러냐? 내가 입고 있는 이게 정식 저승사자 복장인 거 몰라? 누가 그렇게 긴 코트에 올백 머리하고 다니라 그랬어? 너 머리에 뭐 발랐지? 와~ 진짜, 요즘 저승 많이 좋아졌다, 좋아졌어. 나 때는 말이야 그렇게 하고 다녔다간 바로 염라대왕님 앞으로 불러가 바로 경위서 썼어. 야~ 저승 좋다! 저승 좋아!]

[이거 요즘 유행하는 저승사자 패션인데요. 일직 사제님도 검은색 두루마기와 오래된 갓은 벗어버리고 저같이 한번 입어 보세요. 아주 젠틀해지실 거 같은데요...]

[야~ 죽을래? 아니... 죽은 놈인데 그 말은 안 맞고. 하여튼 혼나 볼래? 이게 좋다 좋다 하니까 진짜...]

[죄송합니다.]

일직사제의 기분이 아직까지 풀린 거 같지 않았다. 그 둘은 복장이 확연하게 달랐다. 일직 사제는 인간들이 생각하는 검은 갓에 검은 두르마기를 입고 얼굴엔 창백하게 보이기 위한 하얀 분을 바르고 눈두덩이와 입술은 검게 칠해 진짜 저승사자 같았다. 반면에 강림도령은 누가 봐도 저게 저승사자인지 일반 셀러리맨인지 헷갈릴 정도의 옷을 입고 있었다. 정장에 긴 코트, 폼나는 구두 오히려 저승사자가 아니라 멋진 모델처럼 보였다.

[맞아~ 옷차림이 어디서 많이 본거 같다 했더니. 너 인간 세계에서 얼마 전에 한 드라마 보고 따라 입은 거지? 그 도깨비인가 뭔가 하는...]

[킥킥. 눈치채셨어요?]

[야. 인마~ 아무리 그게 멋있다고 해도. 나름 저승사자인데 인간들이 만든 드라마를 보고 따라 하냐? 참나. 어이가 없어서....]

[아니. 그게 아니라 우리가 저승사자라고 해서 언제까지 옛날 모습으로 검은 갓 쓰고 두루마기 입고 다닐 필요는 없지 않나요? 저희 동기들도 일직사제님 처럼 다니는 저승사자 거의 없어요. 그렇게 다니다간 선녀님들이랑 소개팅하면 다 차인다니까요. 저번에 도깨비 동기가 주선해 줘서 바리공주 님이랑 소개팅하는데 쪽팔려 죽는 줄 알았어요. 와~ 저를 저승사자로 취급도 안 하던데요. 무슨 동네 귀신으로 보던데요. 그 뒤로 바로 갓 집어던졌습니다.]

[아이고. 오 마이 갓이다. 이놈아! 잘 돌아간다~ 잘 돌아가~ 좋은 저승이다~ 야~ 어쩌다 저승사자가 인간들 따라 하는 시대가 되고...]

[이제 시대가 바뀌고 있으니 저승사자님도 저같이 한번 입어 보세요. 한 1000년은 젊어 보이실 거예요.]

[아~ 됐고, 나는 선녀들 만날 일 없으니까 너나 잘 입고 다니세요. 웃은 그렇다 치고 앞으로 한 번만 더 실수하면 가만 안 둘 거야. 알았어?]

[네. 일직사제님. 앞으로 신경 써서 일처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저 라영이라는 여자는 어떻게 우리를 볼 수가 있어요?]

[간혹 저런 인간들이 있어. 태어날 때 영혼을 보는 마음을 가진 채로 태어나는 거야. 자기는 눈으로 우리를 본다고 하지만 마음의 눈으로 보는 거야. 전생에 선녀 출신들이 이승에 다시 태어날 때 저런 마음의 눈을 가지고 태어나. 저 여자처럼 좋은 쪽으로 쓰기도 하지만 무속인이 돼서 사람의 미래를 점친다고 사기치고 다니는 인간들도 많아. 그들이 말하는 신기(神氣)라는 게 영혼을 볼 수 있는 거지 사람의 미래를 볼 수 있는 게 아니거든. 그러니까 무속인들이나 점쟁이들은 다 인간들을 속이고 사기 쳐서 돈을 버는 거지. 이승에서 떠도는 영혼을 보는 걸로 어떻게 인간들의 앞날을 점치겠어. 우리도 명부에 올라온 인간들을 데리고 갈 뿐이지 그 사람들의 미래를 볼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렇군요... 그럼 저 라영은 우리와 대화도 할 수 있나요?]

[하려면 충분히 가능은 하지. 그런데 우리를 무섭게 생각해서 말을 못 거는 거지.]

[아~ 그래서 저번에 마트에서 떠돌이 아기 영혼 하고 말을 하고 있었네요.]

[응. 그거 봤어? 그 아기 영혼도 데리고 가야 하는데 저승 기록계에서 명부에 올리질 않네. 기록계 동기한테 한 번 말해야겠다. 그런 떠돌이 영혼이 많으면 이승 세계가 오히려 어수선해지거든. 라영이라는 사람도 영혼을 볼 수 있어서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 거야. 떠돌이 아기 영혼도 저승으로 올라가 천국에서 편하게 지낼 수도 있는데 혼자서 이승을 떠돌아다니려면 외로울 테고.]

[그렇긴 하네요.]

[하여튼 요즘 젊은 저승사자들 빠져서 큰일이야. 지금 업무가 바쁘면 얼마나 바쁘다고 그런 실수들을 많이 하는지. 나 때는 말이야. 정말 눈코 뜰세 없이 바빴어]

[네.]

[너, 인간 시간으로 몇 백 년 전에 임진왜란, 병자호란 일어난 거 알지? 야~ 그때 진짜 저승사자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진짜 힘들었다. 하루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는지. 정말 다시 생각하기도 끔찍하다. 죽는 사람이 너무 많아 사자 명부가 가득 차 저승 기록계에서도 명단 작성을 제때 못해 우리가 이승에서 저승으로 데리고 가지 못하는 영혼들이 얼마나 많이 이승에서 떠돌고 했는지. 그런 영혼들이 발에 걸려 넘쳤다니까. 전쟁으로 죽은 군인에 겁탈한 후 살해당한 부녀자들, 먹지 못해 아사한 어린아이들 까지, 많은 것도 많은 거지만 그런 영혼은 데리고 가는것도 너무 끔찍해. 그런 급사는 명부에 명단이 없는 채로 죽는 거라 영혼도 육체가 죽임 당한 상태 그래로 영혼이 되어 버리거든. 그럼 우리는 그 잔혹한 모습으로 저승까지 데리고 간다니까. 한두 명도 아니고 하루에도 수백, 많게는 수천 명씩 그렇게 생겼다고 해봐~ 야 지금 너희들 일하는 거는 껌이지 껌. 그 뒤로 6.25 전쟁까지... 6.25 때는 포탄으로 죽은 망자들 까지 정말 최악이었다. 최악! 어쨌든 전쟁은 절대 일어나면 안돼. 그래서 전쟁 일으킨 놈들은 십대왕님 앞에서 재판받을 때 절대 천국을 못가는 이유야. 지옥 중에서도 최고 지옥으로 빠지지. 지옥 불구덩이에서 매일 고통스럽게 타죽고 또 죽고 하는 애들 봤지? 히틀러나 도조 히데끼 그런 나쁜놈들 지금도 매일 죽어나더라. 인간세계보니까 지금도 전쟁일으키고 난리치는 놈들 조만간 지옥문 앞에서 줄서겠더라]

[네. 근데 저승사자도 껌을 씹나요?]

[이게~ 꼭 그렇게 말대꾸를 할래? 선배가 말하면 그런가 보다 해야지. 꽉!]

[아~ 네~네. 저도 6.25 전쟁은 겪어 봤는데...]

[인마, 너는 수습기간이었잖아. 그거는 일한 것도 아니지]

[쩝... 그래도 구경은 했는데.]

[또 말대꾸할래?]

[아뇨.]

[우리가 죽은 육신에서 염력으로 혼령을 불러내는 것도 깨끗한 육신의 상태 그대로 영혼을 데리고 가기 위해 서야, 그런 절차가 없으면 방금 말한 대로 비참하게 죽었을 상태의 모습으로 혼령이 빠져나와버리기 때문에 영혼의 모습도 너무 흉칙한 거야]

[그렇겠네요.]

일직사제의 입에서 옛날 힘들었던 때가 줄줄 흘러나왔다. 강림도령은 머리는 끄덕이고 있지만 속으로 '저 꼰대 또 전쟁 이야기하네' 라며 생각했다. 강림도령이 그럴만한 게 일직사제는 강림도령이 조그만 실수를 해도 옛날에 정말 힘들었다며 지금 하는 일은 껌이라고 일장 연설을 했다.

강림도령은 일직사제에게 찍혀서 좋을게 하나도 없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런 시대를 겪은 일직사제가 대단하다는 표정으로 일직사제의 얼굴을 보며 연신 고개만 끄덕거렸다.


'선수 씨 라영은 영혼을 볼 수 있어!' 3회로 이어집니다.

(월, 금요일 주 2회 올릴 계획입니다. 바쁘면 못 지킬 수도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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