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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 퇴고라면?

[모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 퇴고를 마치다.

by 효라빠

작년에 쓴 소설(따뜻한 살인)이 있었다. 브런치에 꾸준히 올리며 결말까지 지었다. 하지만 완벽하지 않았다. 일단 끝내고 보자는 게 앞섰기 때문에 허술한 부분이 많았다. 인쇄해 남들에게 '이게 제가 쓴 소설입니다' 하고 보여줄 자신이 없었다.

처음부터 퇴고를 했다. 한두 달이면 끝나겠지 했는데 다섯 달 가까이했다. 읽고 또 읽고, 고치고 또 고쳤다. 새로운 느낌으로 보기 위해 종이로 출력해서도 했다. 횟수를 기록해 볼 걸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셀 수 없이했다. 지인에게 보여준 후 이런 부분이 어색하다면 다시 수정해서 고쳤다. 제목이 너무 직설적인 거 같아 베스트셀러 소설 제목을 참고해 일주일 넘게 고민 고민하며 새로운 제목도 지었다.


누군가, 왜 그렇게 까지 하느냐고 물어본다면...

'내 글은 나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취업 면접을 보러 가는 자리, 소개팅 나가는 자리에 단정하고 멋스럽게 가듯 그런 글을 쓰고 싶습니다. 그래서 다듬고 또 다듬었습니다.'라고 말할 것이다.


수없이 퇴고를 하며 가장 힘든 건 내 글쓰기 실력이 미천하다는 걸 깨달았을 때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a4 150장 가까이 되는 분량을 몇 번이나 봤지만 같은 단어가 나오고, 오타가 있고, 문맥이 맞지 않았다. 이런 글을 가지고 소설 쓴다며 작가 흉내를 냈다는 게 가소로웠다.

뻑뻑한 눈과 저린 어깨보다 추락하는 자신감이 가장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그래도 참고했던 건 고통을 견뎌야 훌륭한 결과물이 나온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시처럼 말이다.


퇴고를 하며 인생이 퇴고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쓰고 뭔가 맞지 않으면 지우듯...

우리 인생의 오타난 부분도, 딜리트 버튼으로 지우고 다시 자판으로 쳐나가듯 만들어 갈 수 있을 텐데...

그러면 세상 사람들 가슴 아픈 일도 줄어들고 더 행복해질 수 있을 텐데...

하지만 현실은 안타깝게도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더 많다.


드디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수준에서 퇴고를 마쳤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조금은 덜 부끄럽게 '제가 쓴 글입니다.' 하고 보여줄 수 있을 것 같다.

이 이야기가 책이 되어 출간될지 모르겠지만 나 스스로의 과정이 만족스럽기에 미련은 없다.

내일부터는 브런치에 글도 쓰고, 마음 편하게 책도 읽고, 열심히 출판사에 투고도 해봐야겠다.


마지막으로 오랜만에 발행하는 글이라 읽으시는 분들이 궁금해(?) 할까 봐 출간기획서에 작성한 작가 소개 글을 올려 본다.


[작가 소개]

20년 차 교도관이자 文을 사랑하는 武人.

유도와 주짓수, 턱걸이를 하며 만두귀가 되고 딱딱한 굳은살과 울퉁불퉁한 손가락 마디를 얻었다.

20대 후반 우연히 소설 [태백산맥]이란 책을 접하며 세상을 알게 되었고, 읽는 기쁨에 빠져들었다.

20년이란 시간이 흘러, 쓰는 기쁨을 얻고자 [태백산맥]을 필사했다.

그러다 [나는 매일 교도소에 들어간다]는 에세이(밀리의 서재)를 출간했으며 작가라는 꿈을 안고

읽고, 쓰고, 생각하고 있다.

그 꿈을 이루고자 부단히 땀을 흘렸고 첫 시도가 [모든 사라지는 것들에 대하여]라는 소설이다.

목표가 실현되지 않더라도 과정을 중시하며, 세월에 젖어들어도 물질이 아닌 정신을 추구하는 작가라는 꿈이 있다는 사실을 행복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남자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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