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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대차 아주머니가 샤넬백을 든 이유

내가 하는 엉뚱 발칙한 상상들. 1

by 효라빠

매주 화요일 저녁 무렵이면 아파트 정문 옆으로 [옛날 가마솥 순대]라는 플래카드가 둘러진 푸드트럭이 온다.

점심 식사 이후 공복을 유지 중인 나에게 붉은색으로 적힌 '순대'라는 글자는 군부 독재에 맞서 싸웠던 열사의 이마에 두른 띠에 적힌 '투쟁'이라는 글귀처럼 무척 자극적이다. 거기다 내 위장도 순대의 내장 맛을 아는지 꼬르륵 소리를 내며 무슨 조치를 취하라는 신호를 보낸다.

퇴근 후 둘째 아이 학원 픽업을 할 때와 시간이 겹쳐 뒷좌석의 아이도 몇 번 사 먹어본 순대가 먹을만했는지 '아빠~ 순대차 왔다' 하고 반긴다.

'먹고 싶어?'라며 답하고, 마음이 통했다는 흐뭇함으로 푸드트럭 옆으로 차를 댄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아이와 나 사이에 없어지는 대화를 순대가 이어주는 것 같아 씁쓸하기도 하지만 그건 그리 중요치 않다.

몸을 숙여 트럭 짐칸의 입구로 고개를 들이민다. 담백하고 구수한 냄새에 입안에 침이 고인다. 플래카드에 적힌 대로 검은 가마솥이 한쪽에 놓여있고 옆으로 아주머니가 앉아 계신다.

그전에 사러 온 걸 기억하셨는지 반가운 표정으로 알은체를 하신다. 나도 가볍게 인사를 한다. 아주머니는 50대 중반처럼 보인다. 머리에는 두건을 두르셨다. 음식을 할 때 두르는 두건과는 뭔지 모르게 다르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어느 때부터 이상 한 걸 느꼈다. 두건 밑으로 삐져나와 있어야 할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았다. 티브이에서 봤던 항암치료 환자들이 하는 두건과 스타일이 비슷했다. 그러고 보니 얼굴도 부어 보이고 혈색도 좋지 않다. 내 느낌이라 정확한 건 아니지만 어쨌든 그랬다.

불룩 나온 선반 옆 작은 화이트보드에 가격표가 적혀있다.

[찹쌀순대 5,000원, 모둠순대 中 7,000원 大 10,000원, 피순대 11,000]

모둠 大자와 찹쌀순대를 주문했다. 아이와 내가 순대를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더운 날씨에 1톤 트럭 뒷칸 작은 공간에 앉아 땀 흘리며 장사하시는 모습을 보며 하나만 산다는 건 지식인의 모습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양심과 지갑이 허락하는 선에서 찹쌀순대도 추가했다. 피순대를 했어야 하지만 현실적 타협에 어쩔 수 없었다.

아주머니는 밝은 눈빛으로 가마솥뚜껑을 열고 순대와 내장을 꺼내 썰으셨다. 마스크를 하고 계셨기에 표정을 읽을 순 없었지만 눈빛은 밝았다. 아마도 한 사람이 두 개를 주문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았다. 올 때마다 그렇게 했으니 나름 우수 고객이지 않을까 싶다.

기다리며 딱히 할 게 없던 나는 아주머니를 지켜봤다. 마디가 굵고 거친 손으로 일정한 간격으로 썰어내는 순대가 시원해 보이면서도 가슴 한편이 찌릿했다. 아주머니가 살아온 삶의 여정이 짐작되었다. 좋지 않은 몸으로 좁은 짐칸에 앉아 순대를 썰며 자신보다는 가족을 챙겨야 했고, 남은 인생도 그리 순탄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러던 찰나 와이프가 했던 말이 떠올라 가슴이 철렁했다.

'다음에 살 때 간 좀 많이 달라고 해!'

시간이 없었다. 속사포같이 빠른 칼질로 순식간에 포장이 끝나버릴 거 같았다. 순대를 썬 아주머니의 손은 가마솥 한쪽에 있는 간으로 갔다. 자칫 잘못하면 순대를 사가는 착한 일을 하면서도 시킨 것을 하지 못해 혼이 날 거 같았다.

"저기, 가... 간... 간 좀 많이 주세요~"

그리 힘든 부탁도 아닌데 '간'이라는 말이 쉽게 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소심한 성격도 아닌데 바로 나오지 않는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주머니는 '네, 네' 하며 손에 든 간을 듬성듬성 썰어 주신다. 그걸 보는데 안도가 되었다.

포장된 봉지를 받으며 카드를 드릴려는데

"저... 카드는 안되는데..."

"아~ 맞다."

현금 결제 하는 걸 알면서도 무의식적으로 나온 카드를 넣고, 가격표 밑에 적인 계좌번호에 15,000원을 이체해 드린다.

"보내드렸습니다. 하하"

"감사합니다."

카드를 꺼내든 게 잘못이 아닌데 멋쩍은 웃음과 함께 거래는 끝나고 나는 차로 돌아갔다.

집으로 가기 위해 자동차 핸들을 잡으며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퉁퉁 부은 얼굴과 거친 손으로 힘들게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만약 재벌급으로 돈이 많은 사모님이고 심심해서 재미로 장사를 한다면...


퇴근 후 집으로 가는데 아파트 정문에 푸드트럭이 보였다. 주변에서 흔히 보던 트럭이 아니다. 크기는 국산 1톤 트럭과 비슷하지만 보닛에 박힌 엠블럼이 H의 현대가 아니라 삼각별의 벤츠다. 자체에는 매끈하게 물광이 흐른다. 영어로 써진 순대라는 글자가 평소 내가 사 먹는 순대가 맞는지 궁금하다. 호기심에 이끌려 짐칸으로 고개를 드밀자 백 퍼센트 국내산 재료로 만든 수제 순대가 삶아지고 있다. 한눈에 봐도 시장에서 파는 순대 하고는 음식의 퀄리티가 달랐다.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는 머리에 두건을 두르고 있다. 흔히 보던 음식을 할 때 쓰는 두건이 아니다. 그건 백화점 명품매장에서 보던 루이뷔통 스카프다. 순대 파는 다른 아주머니가 하고 있다면 짝퉁으로 의심을 했겠지만 벤츠트럭에 앉아 수재 순대를 파는 그녀에게는 전혀 의심이 되지 않았다. 사모님이라 적지 않고 그녀라고 하는 것도 뭔가 죄를 짓는 거 같다.

불룩 나온 선반 옆 작은 화이트보드에 가격표가 적혀있다.

[찹쌀순대 5,000원, 모둠순대 中 7,000원. 大 10,000원, 피순대 11,000]

모둠순대 大자를 주문했다. 하나만 사기 그래 찹쌀순대도 주문했다. 사모님께서 집에 식구들이 많냐고 물어보신다. 아니라고... 세 명이서 먹을 거라고 했다. 그러면 大하나로도 충분하니 하나만 사라고 하신다. 대신 많이 주겠다고 웃으시며 말하는 모습에 그러겠다고 했다. 보톡스를 맞았는지 아니면 무슨 시술을 했는지 50대 중반으로 보이지만 피부가 탱탱하고 얼굴에 주름 하나 없다. 사모님께서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는지 말을 하지 않아도 알듯 했다. 매끈한 손마디와 하얀 피부의 손등, 기다란 손톱에는 고급스러운 네일아트가 되어있어 평생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아온 인생이 저렇지 않을까 싶었다. 순대를 써는 식칼 든 모습까지 우아하다.

그러던 찰나 와이프가 했던 말이 떠올라 가슴이 철렁했다.

'다음에 살 때 간 좀 많이 달라고 해!'

시간이 없었다. 서툰 칼질이지만 순식간에 포장이 끝나버릴 거 같았다. 수제 순대를 써는 아주머니의 손이 가마솥 한쪽에 있는 간으로 갔다. 순대를 사가는 착한 일을 하면서도 시킨 것을 하지 않아 왠지 혼이 날 거 같았다.

"가... 간... 간 좀 많이 주세요~"

"간이요?"

사모님은 짧게 답하며 다른 접시에 순대만큼 간을 썰어주신다.

터진 순대와 불규칙하게 썰어진 간은 사모님이 칼질을 얼마나 안 해 보셨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자신도 멎쩍 은지 '씩~' 웃으시며 양은 만족 하죠라고 하셨다. 어차피 입속으로 들어가면 다 똑같을 거 나도 따라 웃었다. 포장된 봉지를 받으며 카드 기계가 보이지 않아 '현금으로 결제해야죠?'라고 묻자 '요즘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딨 어' 라더니 의자 뒤에서 고급스러운 가죽으로 된 백을 꺼내셨다.

가운데 큼지막하게 샤넬 이니셜이 찍혀있다. 그 속에서 작은 기계를 꺼내셨다. 카드를 달라고 하더니 시원하게 긁으시며 말을 하셨다.

"감사합니다. 이제는 못 보겠네요"

"왜요?"

"이것도 한두 번 해보니 재미없네요."

"아... 네."

나는 딱히 할 말이 없어 봉지를 들고 옆에 세워진 차로 향했다.

등위에서 사모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김기사~ 가자... 오라이~'

운전석에서 검정 슈트를 입은 곱상하게 생긴 젊은 총각이 내리더니 테이블을 정리한 후 차를 몰고 떠났다.


말이 안 되지만 트럭 짐칸에 앉아 힘들게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그런 사모님이 되어 편안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엉뚱 발칙한 상상을 해본다.

집에 가면 또 이렇게 많이 사 왔냐며 와이프 타박을 들을 수도 있지만 두 봉지를 들고 가는 내 발걸음은 한없이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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