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아홉수] EP.2 오랜 WEB의 목격자

변화무쌍한 WEB의 시대, 16년 개발자가 '존버'할 수 밖에 없던 이유

by 김수경

19살이든, 29살이든, 39살이든. 아홉으로 끝나는 나이가 오늘도 무겁게만 느껴집니다.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찾아오는 순간을 매번 마주할 때마다 맘 속엔 파도가 일렁입니다. 때로는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스스로를 몰아세우기도 하고 내가 수년간 밀고 나간 것들이 '옳다'는 증명을 하기까지 수많은 폭풍의 시간을 견뎌야 했는지도 모릅니다.


화려한 IT 산업의 중심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개발자 김재원님 역시 그 '치열한 아홉수'의 문턱을 지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코딩의 재미를 알아가던 소년에서, IT 버블과 팬데믹을 거쳐 AI가 모든 속도를 뒤바꾸는 지금까지. 그는 한 산업이 태동하고 격변하는 모든 순간을 현장에서 지켜본 산증인이기도 합니다.


기술의 변화가 너무 빨라 '이제는 내 자리가 없는 게 아닐까' 고민하는 이 시대의 많은 이들에게, 그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건넵니다. 단순히 코드를 짜는 기술자가 아니라, 격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변치 않는 자신만의 '기준'을 증명해가는 한 인간의 성장을 담아보려 합니다.


화면 너머의 세상에 전부였던 소년에서, 이제는 기술 속에 사람의 가치를 담아내는 시니어 개발자로 성장한 그의 이야기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증명'은 무엇일까요. 그 진솔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I. 진정한 실력자의 기준, '엔지니어적 소양'

경력 10년이면 믿어도 될까요? 이력서 한 장으로 사람을 가려낸다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재원님은 개발자를 '해도 되는 사람'과 '하면 안될 것 같은 사람'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제시해주셨는데요. 채용하는 사람의 눈으로 본 업계의 민낯, 그 이야기를 먼저 들려드리려고 합니다.

Q. '이 일을 하면 안 될 것 같은 사람'이라는 표현이 꽤 직설적인데, 그런 사람을 가리는 나름의 기준이 있나요?

사실 포트폴리오나 자기소개서만 슥 훑어봐도 그 결이 느껴져요. 단순히 기술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려는 '엔지니어적인 소양'이 있느냐가 관건이거든요. 안타깝게도 요즘은 그 본질적인 고민이 빠진 채 결과물만 급하게 만들어낸 분들이 너무 많이 보이더라고요. 단지 결과만이 아니라, 그 결과가 도출되기 까지의 깊은 고민과 사고가 드러나는 포트폴리오가 점점 사라지는 거 같아 아쉽습니다.


Q. '엔지니어적인 소양'이라고 하면 뭔가 되게 어렵게 들리는데, 쉽게 풀어주신다면요?

최근 화제였던 <흑백요리사>를 예로 들어볼게요. 심사위원들이 음식을 먹고 단순히 '맛있네, 맛없네'만 따지지는 않거든요. 그들에겐 확고한 자기 '기준'이 있죠. 재료의 익힘 정도는 어떤지, 소스의 조화는 왜 아쉬운지 조목조목 비교해요. 결국 '내 기준에서 왜 이 선택이 최선인가'를 논리적으로 설명해내는 거죠.

엔지니어링, 개발도 같다고 생각해요. 비즈니스 상황에 따라 기술적 선택지가 수십 가지거든요. 그중에서 "이 방식은 이런 장점이 있지만 이런 위험이 있다"라고 비교하고, 가치를 따져서 최선의 선택을 내릴 줄 알아야 해요. 그게 진짜 실력이죠.


Q3. 근데 경력이 10년, 15년 된 분들도 그게 없는 경우가 있다고요? 좀 의외인데요.

맞아요. 연차가 쌓였다고 해서 다 갖춰지는 건 아니더라고요. 오히려 연차가 높을수록 "나는 이미 다 알아"라는 확신이 생기면서 새로운 기준을 세우려는 시도 자체를 안 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처음엔 열심히 배웠겠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냥 해오던 대로만 하는 거죠. 겉으로 보기엔 비슷해 보여도, 갑자기 새로운 상황이 닥쳤을 때 확연히 실력차이가 갈리거든요. 물론 연차와 실력을 함께 쌓아온 분들도 분명 있어요. 하지만 관성적으로 일해온 분들을 마주할 때면 참 씁쓸하죠.


Q4. 채용하는 입장에서는 솔직히 난감할 것 같기도 합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그런 의문이 드는 게 당연하죠. 근데 저는 그 사람들을 탓하기보다 구조적인 문제를 더 많이 봐요. 한국 IT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동안, 사실 '잘 만드는 것'보다 '빠르게 만드는 것'이 더 높이 평가받았던 시기가 길었거든요. 데드라인 맞추고, 기능 찍어내고, 일단 돌아가면 됐던 거죠. 그 환경 속에서 10년을 보냈다면, 기준을 세울 기회 자체가 없었을 수도 있어요. 회사가 그걸 요구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게 개인의 실패라기보다, 업계가 오랫동안 만들어온 비극이라고 생각해요.



II. 불편함을 잊은 편리한 시대

'편리한 시대가 왔다는 게 꼭 좋은 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에 한동안 큰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동시에 어떤 말인지 알 것도 같더라고요. 제대로 된 기술을 위해서 개발하는 사람은 이에 대한 '불편함'늘 늘 가져가야 할 수도 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커진 웹 시장의 이면에는, 아무도 크게 이야기하지 않는 구조적인 문제가 숨어 있었습니다.

Q. 앞에서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업계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말, 좀 더 풀어주실 수 있나요?

웹 개발이라는 분야 자체가 사실 정석적인 개발과는 거리가 좀 있어요. 애초부터 편리하게 설계할 수 있도록 갖춰진 시스템이거든요. 이 말은 곧 처음부터 '엔지니어링 관점'을 어느 정도 포기하면서 덩치를 키워왔다는 걸 의미하는데요. 더 많은 사람이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언어나 시스템 자체가 아주 느슨하게 설계된 거죠. 이게 시간이 지나면서 대중화가 된 거고요.


Q. 배우는 사람한테는 좋은 구조일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정석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기반이 흔들린다는 이야기일까요?

예를 들어 '변수'라는 개념이 있어요. 원래 정통 엔지니어링에서는 "이 칸엔 숫자만 넣어!", "여긴 글자만 써!"라고 엄격하게 규정을 정해요. 그래야 사고가 안 나니까요. 그런데 초창기 웹 언어들은 이 빗장을 다 풀어버렸어요. 숫자를 넣었다가 갑자기 글자를 넣어도 프로그램이 그냥 돌아가요. 처음 배우는 분들은 "와, 진짜 편하다! 쉽네!"라며 좋아하죠. 하지만 시스템이 커지면 재앙이 시작돼요. 얘가 숫자인지 문자인지 기준이 없으니, 대규모 시스템에서는 말 그대로 '미쳐버리는' 구조가 되는 거예요. 물론 웹 언어들도 현대에 와서는 많이 달라졌어요. 타입을 엄격하게 관리하고, 구조를 타이트하게 설계하는 방향으로 계속 진화하고 있거든요.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메이저 기업들은 이미 그런 관점을 굉장히 강조하고 있고요. 문제는 그 변화를 따라간 사람과 과거 방식에 머문 사람 사이의 간극이 너무 벌어졌다는 거예요.


Q. 그러니까 웹은 애초에 '작은 서비스'를 위해 태어난 거네요?

그렇죠. 초창기엔 다들 작았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웹 서비스만 봐도 알 수 있어요. 주문, 결제, 물류, 반품까지 온갖 복잡한 로직이 얽혀있는 거대한 유니버스거든요. 이런 시스템을 지탱하려면 철저한 엔지니어링 기준과 관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이 상황을 어떻게 비유해볼 수 있을까요?

1층짜리 초가집은 대충 지어도 일단 서 있긴 해요. 좀 기울어지고 웃풍이 들어도 당장 사는 데는 지장이 없죠. 그런데 초가집 짓던 기술 그대로 롯데타워 같은 초고층 빌딩을 올리려고 하면 어떻게 될까요? 당연히 무너지죠. 지금 웹 시장이 딱 그 과도기적 혼란 속에 있는 것 같아요.


Q. 코로나 때 개발자 붐이 불면서 그 불균형이 더 심해진 것 같기도 해요.

그때 IT 거품이 끼면서 개발자가 엄청 귀해졌잖아요. 문턱이 낮아지니 수많은 인력이 쏟아져 들어왔죠. 그런데 지금은 거품이 빠지고 경제도 어려워졌어요. AI까지 등장하면서 시장은 더 좁아졌고요. 결국 지금 웹 시장은 양극화가 된 거예요. 변화하는 기준을 따라가며 실력을 쌓아온 사람들과, 과거 문화에 젖은 채 그대로 남아있는 사람들로요. 이력서는 쌓여가는데, 정작 그 안에서 '진짜 기준을 가진 사람'을 찾기란 사막에서 바늘 찾기가 되어버렸습니다.




III. 그래도, 끝까지 증명하고 싶은 것

시장은 계속해서 변화를 거듭하고, 기술은 사람을 대체할 것 같은 위기감을 조성합니다. 낯선 감각도 잠시, 이젠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해져버린 AI의 시대. 그 속에서도 자신이 믿어온 방식을 끝까지 밀어붙이려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홉수'라는 고개를 넘고 있는 이들에게 건네는, 조금은 무겁지만 진심 어린 이야기입니다.


Q. 이야기가 생각보다 진지해졌는데, 이 이야기를 앞서 하신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AI의 시대에 사는 개발자는 지금 어떤 모습으로 일하고 있나요?

'기본이 없는 사람'들이 위험한 시대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은 코드를 짜던 분들은 AI를 도구 삼아 더 훌륭한 결과물을 내지만, 기본이 없는 분들에겐 AI가 위험한 날개를 달아준 격이에요. 자기가 만든 코드가 왜 나쁜지 모르니까 검증도 못 한 채 AI가 뱉어낸 걸 그대로 써버리거든요. 속도는 빨라지겠지만, 결국 엉터리 결과물들이 시장에 넘쳐나게 될 거예요. 이건 글쓰기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개성도 없고 대상에 대한 이해도 없는 글들이 AI로 찍혀 나오면, 결국 진짜 가치 있는 글들이 그 밑에 묻혀버리게 되죠. 이 말이 누군가에겐 조금은 낡은 말처럼, 조금은 꼰대같이 들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이 일을 16년 하다보니 그런 구조나 위험요소들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리고 어릴 때부터 코딩을 했다보니 그런 '기본기'에 대한 중요성을 피부로 체감하고 있어요.


Q. 그런 이유있는 고집 때문일까요? 스스로를 '소수자'라고 지칭을 하기도 하셨어요.

회사에서도, 업계에서도, 심지어 종교 공동체 안에서도 저는 늘 소수자의 시선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참 고독하죠. 하지만 소수자라는 건 역설적으로 나만의 독보적인 실력을 증명해낼 기회이기도 해요. 저는 늘 가능성을 열어둡니다. 내 방식을 조금씩 보여주고, 때론 물러서서 상대의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 조율하며 합의점을 찾아가요. 그 과정 자체가 저에겐 살아있음을 느끼게 합니다.


Q. 이 격변과 혼란의 시대 속에서도 개발자를 계속 하고 싶은 이유가 있을까요?

솔직히 생계 때문이기도 하죠. 다른 직업으로 옮기는 것보다 지금 받는 대우가 현실적으로 높으니까요. 워낙 오래하기도 했었고요. 하지만 더 깊은 곳엔 '천직'이라는 마음이 있어요. 전 초등학교 6학년 때 이미 나만의 홈페이지를 만들고 개발했던 아이였거든요. 인터넷이 세상을 바꾸기 전부터 이 세계를 사랑했던 사람으로서, 한 산업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고 있다는 건 사실 대단한 축복이잖아요. 이걸 그냥 '현타'로 끝내버리기엔 너무 억울하더라고요.


Q. 스스로의 삶을 '매치니코프 프로젝트'라고 이름을 붙인 게 꽤나 흥미롭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내가 믿어온 방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 즉 '최적화된 방법'이었음을 증명하고 싶어요. 말씀해주셨던 '마지막 아홉수'란 말처럼 이 일이 내 인생의 마지막 직업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정답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내가 치열하게 지켜온 기준이 가장 효율적이고 가치 있는 선택이었다는 걸 끝까지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 프로젝트 이름을 '매치니코프 프로젝트'라고 지었어요. 요구르트 광고로 유명하지만, 사실 생명 연장의 꿈을 꿨던 학자의 이름이잖아요. 끝이라면 끝인 대로 받아들이되, 연장할 수 있다면 내 모든 실력을 쏟아부어 끝까지 연장해보고 싶습니다. 그게 제 아홉수를 대하는 자세입니다.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그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내가 믿는 기준을 끝까지 증명해 보는 일.'

격변하는 산업의 현장에서 20년 가까이 그를 버티게 한 문장은 제법 묵직하고 단단했습니다. 기초가 부실한 시대이기 때문에 더 치열해야 했고, 그래서 멈출 수 없었다는 재원님의 고백은, 어쩌면 각자의 자리에서 ‘진짜’가 되기 위해 분투하는 모든 아홉수에게 던지는 화두가 아닐까 싶습니다. 한때는 화면 너머의 세상이 전부였던 소년의 열정이, 이제는 기술의 홍수 속에서 길을 잃은 누군가에게 이정표가 될 차례입니다. <매치니코프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이제는 조금 다르게 들리기 시작합니다.

당신의 ‘마지막 아홉수’는 언제였나요? 혹은 지금,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산 앞에 서 있지는 않나요?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묵묵히 코드를 써 내려가는 그의 기록, <매치니코프 프로젝트>는 곧 당신의 일상 속으로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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