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도,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연기를 해야만 하는 충분한 이유
19살이든, 29살이든, 39살이든. 아홉으로 끝나는 나이의 무게는 오늘 더욱 더 버겁게만 느껴집니다.
새벽 2시, 화장실 천장을 가득 채운 연기 앞에서도 침착했던 한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침착 보단 담담함에 가까웠습니다. 화마는 그의 열정 마저 태울 수 없었던 모양입니다. 이미 20대 내내 자연재해보다 더 가혹한 '사람'이라는 산을 넘어왔기 때문입니다. 5살에 떠안은 아버지의 빚, 월급의 70%를 압류당하면서도 묵묵히 버텨온 시간들.
90년생, 이제 막 매체 연기 2년 차에 접어든 배우의 기록입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10년 넘게 대학로 무대에서 사이코패스와 정신병자를 오가며 억눌린 감정을 쏟아낸 한 예술가의 치열한 생존기가 담겨 있습니다. 연기로 먹고살고 싶다는 가장 평범하고도 위대한 꿈을 꾸는 사람. 불타버린 폐허 위에서 다시 눈빛을 갈고 닦는 배우 신건민 님의 '아홉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인생에 찾아오는 불행은 때로 순서가 없습니다. 20대라는 가장 찬란한 시절을 '상속 빚'이라는 쇠사슬에 묶여 지냈던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왜 화마 앞에서도 웃을 수 있었을까요? 그가 겪어낸 '진짜 아홉수'의 기록을 들어보았습니다.
사실 그때 제가 침착했던 건 아니에요.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서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나더라고요. '이것보다 더 최악이었던 일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고작 불난 게 대수냐' 싶었죠. 저한테는 사람에게 이용당하고 배신당했던 기억들이 이 화재보다 훨씬 아팠거든요. 자연재해는 감정이 없잖아요. 사람이 아니니까, 차라리 견딜 만했어요.
일단 살 곳부터 해결해야 했죠. 주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라 처음엔 혼자 다 해결하려 했어요. 근데 그러다 보니 오히려 주변 사람들이 먼저 손 내밀어주더라고요. 그때 처음으로 '도움을 받아도 괜찮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어쩌면 그게 화재가 제게 준 가장 이상한 선물이었을지도 모르겠어요.
많이 줬죠. 저는 되게 오래 참는 사람이에요. 근데 참다 참다 한 번 터지면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려요. 중간이 없달까요. 그게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이기도 한데, 연기할 때는 오히려 그 극단적인 감정 구조가 도움이 될 때가 있어요. 사이코패스 역할이 잘 맞았던 이유가 어쩌면 거기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5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상속포기라는 걸 몰랐던 거죠. 20살에 취직하자마자 월급의 70%가 압류됐어요. 적금이랑 용돈으로 쓰고 나면 한 달에 딱 50만 원 남더라고요. 그걸로 핸드폰 요금 내고 보험료 내며 버텼죠.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빚 갚으라고 드린 돈이 예상치 못한 데에 쓰이고 있더라고요. 그때 울컥 하고나서야 깨달았죠. '아, 참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구나.'라는 걸요.
못 넘어갔죠. 처음으로 제대로 화를 냈어요. 근데 신기하게도 그렇게 화를 내고 나서 뭔가 홀가분했어요. '아, 나도 화를 낼 수 있구나.' 평생 처음 해본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요. 그게 연기로 이어진 것 같기도 해요. 현실에서 억눌렸던 감정을 무대 위에서 터뜨리는 방식으로요.
네. 평생 화 한 번 못 내고 참기만 하던 제가 당시 알던 형님들에게 들었던 말이 있어요.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말이었어요. 평범한 말이지만 그 말에 큰 용기를 얻었어요. 연극 무대 위에서 사이코패스 역할을 맡아 소리를 지르는 씬이 있었는데, 태어나서 처음으로 '살아있다'는 카타르시스를 느꼈어요. 100명을 죽여도 죄책감 없는 역할을 감내해야 했어요. 근데 그 역할의 무게가 그렇게 버겁진 않았어요. 화를 참는 거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죠. 그런 극단적인 감정 표출이 저에겐 일종의 해방구였던 모양이에요.
평생을 참아온 사람은 화를 내는 법도 잊어버린다고 합니다. 위협 앞에서 몸이 굳어버리는 초식동물처럼 말이죠. 그렇게 초식동물처럼 감정을 웅크리고 있던 그가, 이제는 상대를 압도하는 눈빛을 가진 배우로 거듭났습니다. 그가 말하는 '발음'과 '시선'의 무게에 대하여 이야기를 좀 더 들어봤습니다.
눈빛 하나만큼은 어떤 배우를 만나도 이길 자신 있어요. 상대방을 끝까지 응시하면서 분위기를 장악하는 거, 그건 제가 살아온 세월에서 나온 독기 같은 거거든요. 반면에 발음이나 발성은 28살 때까지도 콤플렉스였어요. 자신감이 없으니까 늘 말을 웅얼거렸죠. 지금은 1년 반 넘게 의식적으로 훈련하면서 제 목소리를 찾아가는 중이에요.
있어요. 어떤 감독님이 모니터 보다가 '저 눈빛 뭐야'라고 하셨다는 얘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어요. 제가 의도적으로 뭘 한 게 아니었는데, 그냥 제 안에 있는 게 나온 거라 오히려 더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상대 배우한테서 반응이 올 때는 또 달라요. 눈빛으로 밀고 당기는 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거든요. 그게 잘 맞아떨어질 때가 연기하면서 제일 짜릿한 순간이에요.
매일 소리 내서 책 읽는 것부터 시작했어요. 처음엔 제 목소리 듣는 게 너무 어색하고 싫었거든요. 녹음해서 들어보면 제가 생각하는 제 목소리가 아닌 거예요. 근데 계속 듣다 보면 익숙해지고, 어느 순간 '이게 나구나' 싶어지더라고요. 지금은 대사를 외울 때도 꼭 소리 내서 해요. 몸에 배야 현장에서 흔들리지 않으니까요.
다른 광고 촬영 때 현장 소통도 엉망이고 환경도 열악해서 결국 중도 하차하게 됐는데, 전 돈을 안 받았어요. 제가 제 역할을 완벽히 해내지 못했다면 돈을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제가 생각하는 프로의 기본이니까요. 비록 과정에서 서로 실수가 있었어도 결과적으로 제가 못 한 거니까요. 대신 저를 믿어주고 대화가 통하는 젊은 스태프들과 작업할 때는 제 에너지가 200% 나옵니다.
솔직히 있죠. 주변에서 "그냥 받지 왜 안 받냐"는 말도 들었고요. 근데 저는 한 번 그 기준을 흔들면 계속 흔들리게 되더라고요. 돈이 아쉬운 건 사실이지만, 그게 나중에 제 연기에 대한 자존감이랑 연결되거든요. 제가 제 값어치를 제가 먼저 무너뜨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는 이제 미치광이 과학자나 소시오패스 의사를 꿈꿉니다. 현실에서 차마 하지 못했던 말들을 무대 위에서 '대신' 뱉어내기 위해서입니다. 연기로 생계를 잇는 것, 그 소박하고도 간절한 꿈을 향한 마지막 도약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냥 연기라는 직업으로 밥 먹고 살 수만 있다면 좋겠어요. 주연이 아니어도 좋아요. 현장에서 꼭 필요한 배우, 어떤 역할이든 자기 기준을 가지고 증명해내는 배우요. 제가 지금 쓰고 있는 웹소설 속 '사이코패스 의사'처럼, 소름 끼치도록 서늘한 연기도 해보고 싶고 임창정 선배님 같은 코믹한 로맨틱 코미디도 해보고 싶어요.
연기하다 보니까 캐릭터를 만들고 싶어지더라고요. 제가 하고 싶은 역할을 기다리기만 하다 보면 한계가 있으니까, 차라리 내가 쓰자 싶었죠. 쓰면서 캐릭터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그게 다시 연기에도 도움이 되더라고요. 언젠간 제가 쓴 인물을 제가 직접 연기하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
나비효과 같아요. 작은 불운들이 겹쳐서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시기죠. 하지만 저는 그 고비마다 제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순간을 찾아왔다고 믿어요. 상속 빚도, 화재 사건도 결국 저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으니까요. 이제는 제 연기가 누군가에게 '너도 다시 시작할 수 있어'라는 신호가 되었으면 합니다.
혼자 결정해야 한다는 거요. 저는 어릴 때부터 판단을 도와줄 어른이 없었어요.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의지했던 어른들한테 배신도 당했으니까요. 그러니까 결국 제 기준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게 맞는 건지 확신이 없으니까 늘 외롭더라고요. 근데 지금 돌아보면 그 외로운 선택들이 쌓여서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인터뷰가 끝나고 카메라를 끄는 순간에도 그의 눈빛은 여전히 뜨거웠습니다. '연기가 너무 좋아서, 연기로만 살고 싶다'는 그 투박한 진심이 불타버린 집의 잔해보다 훨씬 강렬하게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힘들었기 때문에 연기를 시작했고, 그 연기가 다시 그를 구했습니다. 이제 그는 타인의 고통을 연기하며 누군가를 구할 준비를 마쳤습니다. 90년생 배우 신건민님의 아홉수는 지금 이 순간, 다시 쓰여지고 있습니다.
당신의 아홉수는 어떤 모습인가요? 거대한 산 앞에서 주저앉아 있나요? 아니면 그 산을 넘기 위해 신발 끈을 다시 묶고 있나요? 폐허 속에서 피어난 이 배우의 이야기가 당신의 문턱에 작은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