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EDM씬의 여제, 빠르게 소비되는 음악의 시대에 몸을 맡기다.
19살이든, 29살이든, 39살이든. 아홉으로 끝나는 나이는 이상하게도 사람을 흔들곤 합니다. 꼭 마지막인 것만 같은 기분, 9회말 2아웃처럼 위기와 반전이 동시에 서 있는 순간 말이죠.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임하다 보면 무언가를 끝내야 할 것 같고, 동시에 반드시 증명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에 사로잡히기도 합니다.
한국 일렉트로니카 씬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온 프로듀서 문나이프님 역시 그 '마지막 아홉수'의 문턱에서 새 앨범을 준비했습니다. 특히 오는 3월 발매되는 <One More Time>은 사랑 앞에서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말하는 순간을 절절하지만 또 세련되게, EDM답게 담아낸 감성적인 일렉트로니카입니다. 세계의 프로듀서와 어떤 시도를 했는지 팬심을 담아 그 이야기에 좀 더 집중해보려 합니다.
이어폰을 꽂고 세상을 버티던 소녀에서, 이제는 위로를 건네는 '힐러' 프로듀서로 성장한 그녀의 이야기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One More Time'은 무엇일까요. 그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았습니다.
새 앨범 발매를 위한 열정을 위해 문나이프님은 미국, 아프리카, 그리고 국내 씬까지 —
경계를 가리지 않고 적극적으로 해외 아티스트들에 손을 내밀었습니다. 글로벌 협업과 리믹스 프로젝트로 촘촘하게 짜인 <One More Time>은 '한 사람의 용기 있는 확장이 얼마나 많은 목소리를 품을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 음악이 만들어진 현장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사실 저는 그동안 동양적인 신스나 사운드를 많이 써왔거든요. 근데 이번엔 좀 더 글로벌하게 뻗어나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미국 미네소타에서 활동하는 Chad Atkins랑 함께 해보자 했죠.
Chad가 되게 따뜻한 사람이에요, 프로듀서로서도 그렇고 사람으로서도. 이번 작업에서는 그의 멜로디 탑라인에서 출발해서 전체 사운드를 새로 쌓아 올렸어요. 보통 K-POP에서는 트랙 먼저 만들고 그 위에 멜로디 얹는 방식이 많잖아요. 이번엔 반대로, 멜로디에서 시작해서 세계관을 확장하는 식으로 했어요. 작업 기간이 거의 1년 정도 됐으니까, 저한테도 꽤 새로운 전환점이었던 것 같아요.
아프로 사운드가 앞으로 음악 씬에서 계속 중요한 키워드가 될 거라고 봤어요. 근데 그냥 트렌드라서 붙이는 게 아니라, 문나이프 세계관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하고 싶었거든요.
Kc Pozzy는 팔로워가 200만이 넘는 아티스트고, NEED는 틱톡에서 되게 활발하게 활동하는 뮤지션이에요. 셋 다 색깔이 뚜렷한 사람들이라, 한 곡 안에서 세 명의 보컬이 따로 노는 게 아니라 하나의 감정으로 묶이도록 디렉팅이랑 에디팅에 정말 공을 많이 들였어요. 단순한 피처링 개념을 넘어, 서로 다른 문화권의 감성을 하나의 감정선으로 이어붙이는 작업이었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한 곡이 여러 DJ의 손을 거치면서 완전히 다르게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예전 한국 일렉트로니카 전성기 때는 한 앨범에 리믹스가 여러 개 들어있는 게 당연한 문화였는데, 요즘은 그런 걸 거의 찾아보기 어렵잖아요. 그래서 이번 앨범에 한국을 대표하는 DJ 엔터테인먼트 소속 프로듀서분들 리믹스를 함께 담기로 했어요. 각자 색깔이 다른 사람들이 한 곡 안에 공존하는 그 모습 자체가, 지금 한국 전자음악 씬의 한 순간을 기록하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제가 10년 좀 넘는 시간 뮤지션으로 활동하면서 정말 절실하게 느꼈던 점이 있어서 였습니다. 실력은 충분한데 무대를 못 얻는 뮤지션들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SNS로 리믹스 콘테스트를 열었어요. 이미 활동하는 DJ들이랑 이제 막 시작하는 신진 프로듀서들이 같은 프로젝트 안에서 만날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저도 처음엔 기회가 없어서 정말 힘들었으니까, 그때의 시절이 생각나서 기획을 하게 되었죠.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만큼은 좀 더 문이 열려 있는 판이 됐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딱 한마디로 하면, '한 번만 더 기회를 줘'라고 말하는 그 순간이에요. 뮤지션들에게 기회라는 건 정말 중요하잖아요. 절실하고요. 그런 마음을 중의적으로 담고 싶었어요. 좀 구차해 보일 수도 있고, 처량하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게 '사랑'에 있어서, 인간이 가장 솔직하게 표현해낼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자존심보다 마음이 먼저 나와버리는 순간이잖아요. 사랑이라는 감정은 국적도, 나이도, 성별도 안 가리잖아요. 그래서 많은 분들이 '아, 이거 나 얘기인데?' 싶게끔 감성적인 멜로디랑 대중적인 사운드로 풀어내고 싶었어요.
3대 기획사의 제안을 거절했던 문나이프님. 하지만 곧 이어지는 여성 DJ 붐의 파도 속에서 그 어느 것도 쉽게 올라탄 적이 없었습니다. 눈앞의 기회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에 더 집중하고, 음악을 좀 더 나 답게 만드는 길을 택한 사람. 수 많은 시간 앞에 택했던 문나이프님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욌는지, 또 지금의 문나이프님을 어떻게 더 당당하게 만들어 왔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았습니다.
2012년 당시에는 제가 원하는 일렉트로니카를 제대로 가르쳐주는 곳이 한국에 없었어요. 그래서 일단 랩 전공으로 대학에 입학한 후에 이를 발판 삼아 음악을 조금씩 배워가기 시작했어요.
당시 저를 가르쳐주시던 선생님이 래퍼 낯선 이라는 분인데 이효리 <유고걸>의 래퍼로 잘 알려지신 분이예요. 그 분께 한 2년 정도 배우고 나니 '이제 알려줄 게 없다. 그냥 네 작업실 차려봐'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말 듣고 독립하기로 마음 먹었죠. 그 때 3대 기획사인 SM, YG, JYP에서 제안을 받게 된 거죠. 그렇지만 저는 3대 기획사 대신 하우스룰즈를 선택했습니다.
전략적인 계산이었다기보단 그냥 깊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제 마음이 가는 곳을 향했던 거죠. '아! 저 사람은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 그냥 이 생각이 컸기 때문에 옆에서 배우고 싶었죠. 결과적으로 하우스룰즈의 서로님과 함께 직접 작업하면서 프로듀싱 기법이랑 감성을 공유한 거의 유일한 아티스트가 됐고, 그 경험이 지금 제 음악의 뿌리가 됐어요.
쉽지 않았죠. 그때 여성 DJ 수요도 있었고, 심지어 걸그룹 제안도 들어왔었어요. 하지만 뭐랄까요. 그 당시엔 제가 '플레이어'로 소비되는 게 두려웠다고 해야할까요? 제 음악이 제 '이미지'나 '여성성'으로만 읽히는 게 솔직히 두려웠거든요. 사실 아이돌 시장은 '듣는 음악'보다는 '보이는 음악'을 더 추구하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당시에는 아시다시피 걸그룹 사이에서도 섹시 콘셉트가 워낙 유행이기도 했고요. 아마 아이돌을 택했다면 제가 추구하는 음악이 지금과 많이 달랐으리라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조금 더 오래 걸리더라도 음악 자체로 말하고 싶었어요. 그게 제 나름의 정석적인 방법이었고요. 물론 돌이켜보면 쉬운 길은 아니었지만, 그게 결국 저를 지키는 길이었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마음속에 '나는 나답게'라는 말을 늘 품고 살았어요. 그리고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되뇌었고요. 한국 EDM 씬이 사실 구조 자체가 쉽지 않아요. 페이도 낮고, 공연 기회도 한정적이고, 파벌도 있고. 10년 동안 정말 많이 부딪혔어요. 그래도 이 장르를 떠나지 않은 건, 제가 좋아했던 그 말랑하고 다정한 일렉트로니카를 누군가는 계속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지금도 완벽하다고는 못 하겠지만, 내 선택을 후회하진 않아요.
아홉(9)은 끝이 아니라 열(10)을 향한 다음의 직전일 것입니다. 문나이프님은 이번 앨범을 마침표가 아닌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힘들었기 때문에 시작한 음악, 그렇기 때문에 멈출 수 없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에 대한 그 마지막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왕따를 당했어요. 어린 나이의 저에겐 그 일이 괴로웠죠. 이 고된 상황을 버틸 만한 무언가가 제겐 필요했어요. 귀에는 항상 이어폰이 꽂혀 있었고, 음악을 들으면 마치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았어요. 그 안에서는 보호받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그게 저한테는 정말 큰 치유였어요. 그래서 언젠가는 저도 그런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제 별명이 또 '힐러'거든요.
물론 활동하면서 수익도 쉽지 않았고, 무대도 제한적이었고, 진짜 그만둘까 심각하게 고민한 적도 있어요. 지금도 그 고민이 계속 되고 있죠. 그래도 음악을 시작한 이유를 떠올리면, 결국 다시 돌아오게 되더라고요. 힘들었기 때문에 시작했고, 그 고난의 시간을 음악으로 극복한 건 제게 있어 분명한 사실이니까요. 제 삶의 원동력이 된 음악을, 그래서 멈출 수가 없었던 것 같아요.
아홉이 끝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다음 숫자로 넘어가기 바로 직전이잖아요. 저는 이번 앨범이 마침표보다는 전환점이 됐으면 해요. 다음 숫자는 '완성'보다는 '확장'이길 바랍니다. 한국적인 일렉트로니카를 더 많은 나라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단계, 그리고 제가 받은 위로를 더 많이 전할 수 있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결국 마음은 14년 전 처음 음악을 전공했을 땨와 늘 같아요. '나를 나답게.'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생각을 늘 품고 다시 한 번 해보자는 마음을 먹죠. 이번 <One More Time>이 누군가에게 다시 한 번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인터뷰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그 말이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나는 나답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창하지 않지만, 10년을 버티게 한 문장이 제법 단단했다는 생각 마저 들었는데요. '힘들었기 때문에 시작했고, 그래서 멈출 수 없었다'는 말 또한 아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아홉수들에게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음악이 그녀를 구했고, 이제 그녀의 음악이 누군가를 구할 차례 입니다. <One More Time> 이라는 제목이 이제 조금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당신의 '마지막 아홉수'는 언제였나요? 혹은 지금, 그 문턱에 서 있지는 않나요? 문나이프님의 <One More Time>은 3월, 당신의 이어폰 속으로 찾아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