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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ap Oct 05. 2022

가장 완벽한 시간

나의,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어린 시절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참 많았다. 일하시는 부모님과 늘 학원을 여러 군데 다녔던 오빠가 없는 집에 오롯이 혼자 있었던 기억이 많다.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이 성향은 우르르 친구들과 어울리지도 않았다. 고작 한두 명의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가끔 만나 노는 것 외에는 늘 혼자였다. 중요한 건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했다. 고요한 집에서 내 몸집에 비해 커다란 내 책상에 앉아서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상상의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일기를 쓰기도 하고, 역시나 해 질 때는 노을 감상도 하고.


그 아이는 그대로 자라 여전히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혼자 있는 시간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시간이다. 1:1로 만나도 에너지를 소비하는 나는 한참을 친구와 즐겁게 떠들다가도 때 되면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에너지가 방전된 채로 만남을 이어가는 것은 꽤나 곤욕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친구를 만나기 전에는 스스로 충분한 에너지를 만들고 나간다. 더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 말이다. 만남의 시간이 너무 즐겁고 행복해도 그 시간을 정말 즐겁게 마무리하기 위해, 그리고 다음 만남을 또 기대하기 위해, 적당한 시간에 헤어져야 한다. 무리해서 시간을 이어가면 즐거웠던 시간이 힘든 시간으로 끝나버린다. 그러면 그만큼 다음 만남은 한 칸 더 미뤄지게 되는 것이다.


어울림을 좋아하고 만남을 통해 에너지를 받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혼자서 뭐해요? 심심하지 않아요?라는 질문을 꼭 한다.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나는 여태껏 심심하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심심한 게 이유가 된 적이 없었다. 심심한데, 심심해서, 심심하니까? 내가 질문하고 싶다. 왜 심심하세요?라고.


나는 집에서 한 시간이 넘도록 thanks for coming의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가만히 있을 때가 있다. 가만히 생각을 한다. 그 생각의 폭은 무궁무진하다. 이렇게 글을 쓰는 것처럼 머리로 글을 쓰며 생각을 정리한다.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일수도. 지나간 나의 후회일 수도. 망상의 나래일 수도 있다. 어느새 습관처럼 돼버려서 문득 그렇게 가만히 있을 때가 많다. 차분한 음악과 고요한 집과 무릎에는 내 묘연이 된 나의 고양이까지. 완벽한 시간이다.


몸으로 무엇을 꼭 해야만, 에너지를 발산해야만 심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혼자 가만히 있어도 충분히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혼자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심심한 거라면 나는 혼자 뭘 해야 할지 모르겠던 시간이 없어서 심심함을 느껴보지 못했던 게 아닐까. 물론 어린 시절 혼자 있는 시간에는 심심하니까 그림을 그려보고 심심하니까 일기를 써보고. 이것저것 하다가 결국 가만히 노을을 보며 생각에 잠기는 일까지 하다 보니 점점 혼자 있는 시간이 심심함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것 같다. 혼자 있는 시간은 나와 노는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누군가를 배려할 필요도 없이 하고 싶은 것을 오롯이 즐기는 시간. 내가 나로서 가장 완벽한 시간. 나에겐 혼자 있는 시간이다.




그렇다고 해도 좋아하는 친구들과의 시간에는 생각보다 깨발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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