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법 같은 나의 고양이
똑같은 하루의 시작이었다. 지하철을 타기 위해 집을 나섰고 유난히 햇살이 반짝반짝한 날이었다. 살랑살랑 아침 봄바람과 따스한 햇살이 선명하게 남아있는 날이다. 그렇게 기분 좋은 발걸음으로 걷고 있는데 저 멀리 골목 한가운데 동그란 솜? 뭉치? 같은 게 보였다. 알 수 없는 것에 시선이 꽂혔고 점점 가까워질수록 아기 고양이라는 것을 알았다. 정말 너무너무 작았다. 몸통이 정말 내 주먹만 한 크기였다. 꼬리는 새끼손가락 정도. 그 당시까지만 해도 고양이란 동물에 큰 관심이 없었던 터라 그렇게 작은 고양이는 처음 본 순간이었다. 걷지도 못하고 혼자 삐약대고 있었다. 조심스레 들어봤는데 이럴 수가 눈에 심한 염증을 앓고 있었다. 깜짝 놀라서 조심히 내려놨는데 내 신발에 몸을 착 붙이고 계속 삐약대는 것이다. 고양이 지식 0이었던 나는 어쩔 줄 몰라 차에 치이지 않게 잔디로 옮겨주고는 갈 길을 갔다. 그리고 하루 종일 생각이 났다. 병원에 데려다줬어야 하나. 그러면 내가 비용을 지불하고 이후 책임을 져야 할 텐데 모든 것이 내겐 너무 뜻밖이었고 부담이었던 것이다. 그저 괜히 불편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하루를 보냈었다. 저녁이 돼서야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같은 길을 지났고 혹시나 이번엔 또 마주치면 병원에 데려다줘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이리저리 둘러봤지만 이후로는 만날 수 없었다.
마음 한 구석에 자라난 미안함
그렇게 3년이 지났다. 그날 이후로 고양이에 관심이 조금 생겼던 나는 날이 갈수록 더욱 마음이 열렸고 집사에 대한 꿈을 조심스럽게 꿔보고 있었다. 그렇게 또 평범한 하루를 살고 있었는데, 당시 알고 지내던 지인 언니의 글 하나가 저기 먼 서랍 속에 있던 그날의 기억을 불러왔다.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 길에서 죽어가던 아기 고양이를 구조했다는 것이다. 병원에 데려다줬고 본인은 고양이가 있어 키울 수 없으니 치료가 끝난 후 입양처를 찾겠다는 글이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보기도 전에 그때의 기억이 재생된 건 그 고양이가 그때 고양이와 너무 닮아서였다. 엄청난 고민이 시작됐다. 한창 고양이에 대해 많이 알아가던 시기이기도 했고 먼 훗날 집사의 꿈이 지금 타이밍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때의 미안함은 이 아이를 위한 것인 것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아직 키운 경험은 없기에 선뜻 결정하기는 어려웠다. 고민 고민하다 언니에게 조심스레 의견을 물어봤고 이런 나를 아는 언니는 처음엔 다 그렇다며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라면 더 안심하고 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고마운 말과 함께.
흙 속에 진주 같았던 고양이
빼짝 말라서 어떻게 생긴 지도 잘 모르겠던 고양이는 몰라보게 달라졌다. 병원에서 많이 건강해졌다는 말에 보러 간 날 정말 놀랐다. 정말 너무 미묘였기 때문이다. 선생님들도 다들 놀라워했다. 흙속에 진주를 찾은 기분. 벌써 내 새끼가 된 것 마냥 뿌듯하고 벅차올랐다. 게다가 노르웨이 숲이라는 품종 묘였던 것이다. 당연히 죽는 아이였는데 살았다고 하셨다. 그 조그마한 고양이가 견뎌냈다는 게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었다. 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우리 집이 정리되는 사이 잠시 임시보호소에 맡겨졌던 고양이는 봉사자들이 올 때마다 입양처가 있냐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고 했다. 괜히 불안한 마음에 빠르게 정리를 하고 필요한 것들을 갖추고 데려오게 되었고 그렇게 첫 고양이 집사로서의 삶이 시작됐던 겨울이었다.
마법 같은 나의 고양이
갑자기 마법처럼 나에게 찾아온 고양이의 이름은 '해리'라고 지었다. 수컷이었고 마법 하면 해리포터. 그렇게 해리가 되었다. 해리는 뿅뿅 거리며 뛰어다녔다. 커튼을 가지고 놀기도 하고 아기인 만큼 잠을 진짜 많이 잤다. 그냥 계속 잤다. 막 뛰어놀다가도 갑자기 집에 들어가서 잤다. 고개가 꺾이든 말든 곯아떨어졌다. 가끔은 무릎에서 자기도 했다. 그럼 난 다리에 쥐가 나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추워서 창문을 닫고 싶은데 앉은자리에서 손을 아무리 뻗어도 창문이 닿지 않았다. 그럴지언정 하루하루가 참 재밌고 신기했다. 나는 너무 어린 해리가 부담스러워서 빨리 크길 바랐던 거 같다. 계속 성묘가 된 해리를 상상했다. 지금보다 더 친해진 우리가 서로가 편해진 우리가 함께하는 하루들을 생각했다. 노르웨이 숲에 대해서도 정말 많이 찾아봤다. 굉장히 멋있는 고양이더라. 똑똑하고 주인과의 유대감이 뛰어난 고양이라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해리가 더욱 성묘가 되길 바랐었다.
어린 집사와 어린 고양이
나의 상상은 현실이 되지 못할 것 같았다. 열흘 정도가 지나자 해리는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밥을 잘 못 먹고 화장실 실수를 하기 시작했다. 병원에 물어보니 전체 검사를 해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셨다. 그때 알았다. 동물을 키우려면 금전적인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병원비가 삼십만 원이 훌쩍 넘게 나왔다. 뭐 상관없었다.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결과는 복막염. 집사들은 모두 알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병이다. 상황을 모두 알고 있는 의사 선생님께서 아무래도 길에 있을 때 건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전염이 됐을 거라고 하셨다. 이미 진단을 받을 때부터 해리의 운명은 정해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그때는 복막염이 그렇게 큰 병인지 실감을 못하던 어린 집사, 바로 나였다.
해리는 매일 아무 데나 설사를 했고 한 번은 침대 밑에 하는 바람에 침대를 다 옮기고 겨우 치울 수 있었다. 매일 병원에 가서 수액을 맞고 복수를 빼고 했지만 나아지는 건 없었다. 점점 더 이상 함께할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가끔 밥을 잘 먹는 날은 혹시라도 좋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보기도 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에게 와주어서 고맙고 미안해
그렇게 또 힘든 열흘이 지났을까. 토요일 새벽 깜깜한 방안에 빼액- 하며 해리가 소리를 질렀다. 너무 놀라 허겁지겁 불을 켜보니 축 늘어진 채로 변을 보는 해리가 보였다. 새벽 세시였다. 왜 그러냐고 해리를 들어 올리는데 여전히 축 늘어져있기만 하다. 온몸이 떨렸다. 몇 시인 줄도 모르고 집사인 지인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언니가 받았다. 언니는 밖이었고 친구들과 노는 자리인데도 내 얘기에 같이 놀라 우선 병원에 데려가라고 하고 자기도 지금 가겠다고 했다. 다행히 다니던 병원이 24시 병원이어서 바로 해리를 데리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상태를 보신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아마 버틸 수 없을 것 같다고 하셨다. 복막염은 성묘들도 힘든데 이렇게 작은 고양이가 버티기엔 더욱 어렵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고양이들이 죽기 전에 발작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는데 보호자님이 보시면 트라우마가 생길 수 있으니 집에 가 있으면 연락을 주겠다고 하셨다. 그 사이에 언니가 왔고 언니도 그게 좋겠다며 집에 가 있으라고 했다. 언니를 다시 보내고 나도 집으로 걸어오는데 상황이 믿기지 않을 뿐이었다. 그래 나는 계속 희망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집에 돌아오니 처음으로 해리가 없는 방은 더 고요했다. 삼십 분이 지났을까.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결국 희망은 내 것이 아니었다. 다시 병원에 가보니 해리는 흰 천에 덮여있었다. 선생님께서 마지막으로 한번 보시라며 나가셨고 차가운 수술실 안에는 더 차가운 수술대 위 해리와 나뿐이었다. 손수건만 한 흰 천을 걷기가 무서웠다. 선뜻 손을 올리기가 겁났다. 숨을 꾹 참고 조심스레 걷어보니 너무나 예쁜 얼굴로 누워있는 해리가 보였다. 나는 바로 흰 천을 덮어주었다.
새벽 네시. 혼자 돌아가는 길. 비로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소리도 안나는 굵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이제 정말 혼자인 집에 들어와서야 엉엉 울음이 터져 나왔다. 한 달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십 년을 키운 사람처럼 울었다. 내 탓인 거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아니라 더 능숙한 사람에게 갔다면 살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서툴러서 보낸 거 같은 미안함이 몰아쳤다. 생명을 키운다는 게 마음만으로 부족한 것 같았다. 정말 잘 키울 자신만으로는 안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소중한 내 첫 고양이 해리는 잠시 머물다 갔지만 더욱 확실하게 고양이와 함께 하는 미래를 꿈꾸게 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