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워홀 에세이 6

안녕, 나의 이탈리아 : 귀국 후 비로소 마주한 나의 변화

by 킴소피


한국으로 돌아온 날, 낯선 익숙함


예정보다 조금 일찍 짐을 쌌다.

마침 부모님의 이탈리아 여행이 끝나는 시점과 맞물려 함께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혼자 무거운 캐리어를 끌며 입국장에 들어섰어야 했는데,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한편으로는 안도감이 들었다.


12시간을 날아 도착한 한국은 공기부터 달랐다.

인정하기 싫지만, 나에게 가장 큰 안정감을 주는 곳은 역시 한국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형용할 수 없는 공허함이 밀려왔다.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들이 내가 이탈리아가 아닌 한국에 있음을 실감하게 했다.



대중교통 안에서 사람들은 대화 대신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고,

거리를 지나는 얼굴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회색빛 무표정이었다.

찰나의 눈 맞춤에도 환하게 웃으며 "Ciao!"를 건네던 이탈리아의 햇살 같은 온기가 문득 그리워졌다.


내 몸은 생각보다 더 정직하게 이탈리아를 기억하고 있었다.

2주 넘게 밤낮이 바뀌어 고생하며 지독한 시차 적응을 겪었다.

새벽 3시에 눈이 번쩍 뜨이고 오후가 되면 잠이 쏟아지는 당황스러운 수면 패턴은,

어쩌면 이탈리아를 떠나고 싶지 않았던 내 무의식의 저항이었을지도 모른다.




이탈리아의 속도 vs 한국의 속도, 그 경계에 서서


가장 먼저 나를 당황하게 한 건 뜻밖에도 '커피'였다.

이탈리아의 바(Bar)에서 흑설탕 하나를 넣어 서너 모금에 들이키던

그 고소하고 묵직한 에스프레소가 그리워 한국의 카페를 찾았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 맛이 나지 않았다.

한국의 커피는 유독 카페인이 세게 느껴졌고, 잠이 오지 않았다.

한 잔만 마셔도 가슴이 두근거려 정신이 아찔했다.

커피의 맛조차 한국의 속도만큼이나 날이 서 있는 것 같아, 나는 한동안 빈 모카포트만 만지작거렸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 못다 한 안부를 나눴다. 내 주변의 시계는 참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누군가는 취업을 했고, 누군가는 이직을 준비하며 다음 단계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나는 일자리 없이 1년을 보냈다.


순간 급격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나는 분명 값진 경험을 얻었지만, 사회가 요구하는 '준비된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결국 다시 이 사회의 루트를 따라가야만 한다는 사실에 묘한 회의감과 속상함이 밀려왔다.

정해진 고속도로 위에 억지로 올려진 작은 차처럼 내 마음은 위태로웠다.

그 루트에 다시 편입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낄 때마다, 1년간 이탈리아에서 쌓아 올린 나라는 존재가 한없이 작아져 버리는 것 같아 사무치게 속상했다.


하지만 조급함이 나를 집어삼키려 할 때마다

이탈리아에서 배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즐거움(Dolce fa niente)'를 떠올렸다.

여유로운 식사 시간이 눈치 보이는 한국의 식당에서도 나는 나만의 속도를 지키려 애썼다.

물건을 사고 나오며 습관적으로 건네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라는 인사에 돌아오는 얼떨떨한 표정들을 마주하며, 나는 내가 이탈리아와 한국 그 중간 어디쯤에 서 있음을 느꼈다.



그래도 버틸만했던 이유, 돈으로 살 수 없었던 기억들


비록 아버지가 보내주신 돈으로 생활을 이어갔지만, 나는 그 돈으로 단순히 생필품만 산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시간'과 '기억'을 샀다.


나는 햇빛의 각도와 냄새, 그리고 그날의 공기로 이탈리아를 기억한다.

한국은 여전히 낯선 이와의 스몰토크에 서툴고 정적에 약하지만,

나는 이탈리아에서의 1년을 통해 타인에게 먼저 말을 건네고 세상을 조금 더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법을 배웠다.

도시 전체가 박물관처럼 느껴지던 예술적인 풍경들, 그리고 매일 축복처럼 내리쬐던 날씨.

그것은 통장 잔고로는 결코 계산할 수 없는 비물질적인 자산이었다.




워홀이 나에게 남긴 변화, 나를 사랑하는 방식의 완성


이탈리아에서의 1년은 나라는 사람의 취향을 투명하게 비춰주는 거울이었다.

나는 이제 남들이 다 사는 유행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내 몸에 잘 맞고 내가 좋아하는 색깔의 옷을 입었을 때 진정한 만족감을 느낀다.


무엇보다 큰 변화는 요리의 즐거움을 알게 된 것이다.

마트에서 식재료를 고르며 체득한 '나를 먹이는 정성'은 한국에서도 이어졌다.

간편 음식이나 밀키트 대신 직접 장을 봐서 정갈하게 차려 먹는 시간은 나 자신을 대접하는 소중한 의식이 되었다.


특히 요리에 페퍼론치노를 넣을 때면 말할 수 없는 희열을 느낀다.

툭 터뜨려 넣은 페퍼론치노의 알싸하고 매콤한 향이 주방 가득 퍼지면,

나는 찰나의 순간에 다시 이탈리아의 어느 골목으로 옮겨간다.

비록 몸은 한국에 있지만, 그 향기가 나를 다시 뜨거웠던 이태리의 태양 아래로 데려다주는 기분이다.


젤라또 하나를 먹기 위해 억지로 집 밖을 나섰던 그 작은 발걸음들이 모여, 이제는 나를 건강하게 유지해 주는 산책 습관이 되었다. 나는 이제 내가 어떨 때 기분이 나빠지는지, 그리고 그럴 땐 어떻게 마음을 풀어줘야 하는지 안다.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낯선 당에서 나를 지켜보며 얻어낸 '나를 가꾸는 매뉴얼'인 셈이다.




이탈리아는 끝났지만, 여행은 계속된다


구직 실패와 숙소 문제를 홀로 해결하며 길러진 생존력은 나에게 단단한 사고방식을 선물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노력했던 그 시간들은 큰 힘이 되었다.

앞으로 어떤 어려운 상황이 닥치더라도 이제는 많이 고민하지 않는다.

그저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선에서 묵묵히 하나씩 해나갈 뿐이다.


이탈리아 워홀은 끝났지만, 나는 많은 것을 얻었다.

나를 챙기는 힘, 나를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 나를 알리는 힘.

내 통장은 여전히 '텅장'이지만, 내 마음의 근육은 그 어느 때보다 단단해졌다.

나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고, 나에 대해 깊이 공부했던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를 선택했던 건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곳은 나에게 일생을 버티게 할 큰 선물을 주었다.

바로, '어디서든 나답게 살아갈 용기'다.





작가의 말

이탈리아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첫날부터, 한국으로 돌아와 페퍼론치노 향을 맡으며 글을 쓰는 오늘까지.

저의 서툴고도 치열했던 1년의 기록을 함께 읽어주신 모든 독자님께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막막했던 순간도, 벼룩시장에서 얻은 1유로의 행복도, 여러분이 남겨주신 응원 덕분에 비로소 의미 있는 문장이 되었습니다. 제 글이 누군가에게는 작은 용기가, 누군가에게는 이탈리아의 햇살 같은 따스함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이탈리아의 시간은 끝났어도, 그 시간들이 남긴 힘으로 저는 오늘을 다시 살아갑니다.

여러분의 일상에도 각자의 '이탈리아'가 깃들길 응원합니다.





당신에게는 당신답게 살게 하는 당신만의 '이탈리아'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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