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땅에 똑떨어져 적응하기
그렇게 나는 낯선 땅에 똑떨어졌다.
로마의 공기는 생각보다 차가웠다.
새로운 공기와 낯선 언어가 내 몸을 휘감았다.
짐을 찾고 유리문을 나왔을 때, 비로소 혼자인 걸 깨달았다.
나는 이탈리아에 연고도, 아는 사람도 없었다.
그러니 당연히 나를 기다릴 사람도 없고.
그 사실을 깨닫자 약간은 두려웠다.
그래도 내가 또 누구야.
한다면 하는 사람이니까.
할 수 있는 말이 한정적이다 보니 번역기를 돌려가며 택시를 탔다.
낯선 땅에서 친절한 사람들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짐을 풀고 다음 날엔 세무서에 갔다.
코디체 피스칼레, 이탈리아의 주민등록번호 같은 걸 발급받기 위해서였다.
정보가 부족해서 예약도 안 하고 무작정 찾아갔다.
구글 지도가 알려주는 곳으로 갔는데, 여기가 아니라는 거다.
버스 티켓을 사는 것도 모험이었다.
언어가 안 되니까 아저씨들에게 손짓하며 도와달라고 했다.
"이리 와봐." 하며 직접 표를 끊어주는 사람들의 손길이 아직도 기억난다.
그리고 매번 'grazie!'를 말할 때마다
사람들이 웃어주던 그 순간들.
두근두근했다.
내가 진짜 이탈리아어를 하고 있다니!
그렇게 조금씩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
새로운 친구도 생겼다.
세무서에 함께 간 모르는 친구의 예약에 덩달아 들어가
기적처럼 코디체를 발급받았다.
그 친구가 없었다면 길바닥에 주저앉아 울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두렵고, 후회되는 순간도 있었다.
'왜 왔을까.'
'난 여기에 맞는 사람일까.'
이탈리아어는 생각보다 훨씬 어려웠고,
내가 공부했던 건 이 나라의 일상 속 문장과는 달랐다.
혼자 있는 시간도 많았다.
하지만 하루하루 버텼다.
마트에서 모르는 단어를 직원에게 묻고,
못 알아들으면 내 식대로 정리해서 다시 물었다.
이름하야, 상담사 기술!
내가 이탈리아에서 처음 써먹은 생존 전략이었다.
그러다 알게 됐다.
적응이란 완벽해지는 게 아니라,
그저 엉망진창인 하루 속에서도 웃을 수 있는 힘을 찾는 일이라는 걸.
며칠 뒤,
로마에서 피렌체로 가는 기차를 탔다.
크리스마스를 보내러 가는 길이었다.
역 안은 사람들로 붐볐고,
나는 플랫폼을 확인하며 기차 앞에서 기다렸다.
그런데 갑자기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이상하게 들렸다. 무언가 변경되었다는 말 같았다.
고개를 들어 아까 길을 알려줬던 아저씨를 보니,
그가 손짓하며 소리쳤다.
"뛰어! 반대쪽이야!"
모두가 동시에 캐리어를 들고뛰기 시작했다.
나도 정신없이 달렸다.
계단을 내려가고, 반대편으로 올라가고,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이상하게 웃음이 났다.
'아, 이게 이탈리아구나.'
플랫폼 변경은 기차 출발 3분 전에야 공지됐다.
이탈리아의 시간은 늘 한 박자 느린데,
그 순간만큼은 세상이 미친 듯이 빨라졌다.
그리고 그 사이 어딘가에,
적응 중인 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