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과 설렘 사이, 페루자에 도착하다.
솔직히 말하면, 페루자에 간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
한국에서 미리 공부하고 왔지만, 막상 부딪히니까 모든 게 달랐다.
역시 언어는 책으로 배우는 게 아니라, 말하면서 배워야 한다는 걸 그때 알았다.
어학교를 다니려는 이유는 단순했다.
언어를 배우면 생활이 조금 더 편해질 것 같았고,
수업을 듣다 보면 친구들도 생기겠지, 그런 기대가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아무리 진심이 있어도 마음이 닿지 않으니까.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크리스마스를 피렌체에서 보내고, 페루자로 향했다.
아마 두 번쯤 환승했던 것 같다.
그 겨울,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새로운 도시로 향하는 일은
지금 생각해도 참 멋진 일이다.
그때의 나에게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역에 도착하자마자 눈앞엔 버스 정류장이 끝도 없이 늘어서 있었다.
사람들은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나는 그 사이에서 버스표 파는 곳을 찾아다녔다.
이때만 해도 블로그에 정보가 많지 않던 시절이라
무작정 역 안의 직원에게 물어봤다.
다행히 바로 알려줬고, 표를 산 뒤 구글 지도가 알려주는 방향으로 향했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지도는 '여기가 맞다'라고 했지만,
사람들 중 정확히 아는 이는 없었다.
그래도 일단 타보기로 했다.
반은 불안, 반은 믿음이었다.
긴장했던 탓일까, 한 정거장을 먼저 내려버렸다.
게다가 내가 예약한 에어비앤비는 버스가 바로 앞에 서지 않고 한참을 돌아야 했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르고 내리막길을 내려가며
캐리어가 미끄러질 뻔한 순간도 있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숙소에 도착해
호스트를 만날 수 있었다.
그 집은 복층 구조의 큰 집이었다.
호스트 아저씨가 내 캐리어를 들고 계단을 오르느라 땀을 뻘뻘 흘리셨다.
나는 죄송하면서도 고마웠다.
혼자 쓰기엔 너무 넓은 집이었다.
처음 며칠은 혼자 숙소에서 시간을 보냈다.
내가 다닐 어학교가 어디쯤인지 걸어서 가보기도 하고
근처 골목을 산책했다.
작은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엔 길가의 벤치에 잠시 앉아 있기도 했다.
숨을 고르며 이 도시의 공기를 처음으로 맛봤다.
그때는 몰랐다. 이곳에서 맞이할 새해가,
내 인생의 잊지 못할 순간이 될 줄은.
이탈리아에서 처음으로 새해를 맞았다.
정식으로 학교에 가는 날은 1월 7일이었지만,
그전까지는 이 숙소에서 머물러야 했다.
결국 이 낯선 집이, 나와 새해를 함께 보냈다.
새해 전날, 나는 밖으로 나갔다.
근처 빵집에서 초콜릿 케이크 한 조각과 작은 숫자 초 '2'와 '5'를 샀다.
새해를 기념하기엔 조금 소박했지만,
그날만큼은 그게 딱 좋았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 아빠와 영상통화를 했다.
한국이 이탈리아보다 일곱 시간 빠르니까
그들은 이미 2025년을 시작한 뒤였다.
서로에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작은 케이크 위에 초를 꽂고 불을 붙였다.
그 순간, 내가 빌었던 소원이,
지금의 나를 있게 해 줘서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밤이 깊어지자 창밖이 이상하리만큼 소란스러웠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창문을 열자 찢어질 듯한 폭죽 소리와 함께 불꽃이 터졌다.
불빛이 도시의 하늘을 가득 메웠다.
이건 집 안에서 볼 일이 아니었다.
나는 급히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광장에는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어디선가 흘러나오는 음악, 사람들의 환호,
제각각의 목소리들 사이에서
모두가 한 목소리로 외쳤다.
"Cinque! Quattro! Tre! Due! Uno!"
"Buon Anno!"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외쳤다.
"Buon Anno!"
이 짧은 외침 하나로 나는
이들의 일부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처음으로, 이곳의 공기가 내 목소리와 섞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다리 위에 서 있던 몇몇 젊은 무리가
나에게 손을 흔들며 말했다.
"Buon Anno, Auguri!"
나는 웃으며 외쳤다.
"Auguri a te!"
불꽃이 천천히 사라지고, 거리는 여전히 떠들썩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마음이 고요했다.
혼자였지만 외롭지 않았다.
그날의 따뜻한 소음이,
내 워홀의 첫 페이지에 조용히 스며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