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니?
나는 어린 시절, 유치원서부터 초등학교 저학년때까지 ‘곰순이’로 불리였다. 그냥 교활해서가 아니라 둔하고 순해 보여서다. 어쩔 땐 쿠엉하고 분노를 폭발하기도 했지만 대체적으로 순했다. 그런데 나는 마음 속에는 무서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어쩌면 자존감이 셌달까.
‘난 쟤들과 달라. 특별해. 못난이 속에 살아야 하는 내가 불쌍하다...휴.’
라고 내 자신을 안타까워했고 완벽주의자라 어설프게 하는 걸 싫어했다. 그러나 이러면 사람사이에 속하지 못할 거 같아서 스스로 ‘바보’가 되었다. 한 마디로 내 입장에선 다 져줬다. 유치원때 달리기, 미술시간등등에서 남들보다 뒤쳐진 모습을 보였다. 말도 하지 않았다. 나보다 못난 아이들하고 말하기가 싫었다. 어른하고만 말했다. 그래서 또 ‘벙어리’냐는 말도 들어서 훗날 회고하길 엄마가 많이 속상하고 발달이 늦었나 하고 걱정도 이만저만 아니셨단다.
그런데 나에게 어릴 때 ‘바보’흉내 내는 걸 관두게 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정작 못난 아이들이라고 치부한 내가 진짜로 ‘바보’로 취급당한 거다. 정말.... 자존심에 생채기가 났다.
‘저런 못난이들에게! 본때를 보여줄거야. 달리기? 좋아. 1등해주지.’
그렇게 생각하고 나는 온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단숨에 한명, 두명, 세명까지 제치고 마지막 한 명까지 제치며 여유있게 결승 끈을 끊었다. 관중석도, 아이들도 다 놀라서 자리에서 박차 일어났다. 다들 표정이 저 ‘꼴찌’가 1등을 순식간에 했어? 이런 분위기였다. 그 다음에는 우연이지하는 무언의 말이 들려 오는 듯했다. 그래서 그 다음 게임에서도 1등을 하고 그날 하루 체육대회에서 아주 좋은 운동신경을 보여줬다.
‘까불고 있어. 난 단지 못난 너희들을 배려 해 준거라고.’
어릴 때 나홀로 자만은 하늘을 찔렀고, 완벽하지 않으면 하지도 않으려했다.
유치원시절 나에게 가장 취약한 시간은 미술시간이였다. 나의 눈높이는 성인 수준. 동화책에 나오는 수준으로 높았는데 내실력은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어서 불만이였다.
‘왜 난 동화책처럼 못 그리겠지? 못난이들처럼 그리기 싫은데.’
아기였던 나는 미술시간에 크레파스를 잡고 선도 못 그렸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선생님에게 말했는지 나를 미술학원에 보내셨다. 그러나 거기서도 미술에 소질이 전혀 없다며 공부나 시키라는 말을 들었다. 겨우.... 어린이용 스케치 법을 배웠다. 난 그 때부터 오기가 생겼다.
‘내가 못하는 게 어딨어!’
그래서 5살부터 나는 그림 연습을 쉼없이 했다. 배운 스케치를 발판으로 이야기를 지어냈다. 혼자 중얼거리며 만화처럼 못 그리는 게 또 아쉬웠지만 재미있게 상상의 나래를 폈다. 되돌아 보면 SF, 로맨스코미디, 판타지등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었던 거 같다. 그 때 애니메이션 영화에 심취해서 열심히 골라서 봤다. 한 마디로 오기 발동이 지금의 그림실력을 갖추게 했다.
(이 정도면 잘 그리는 건 아니지만 그리는 ‘편’이지 않을까?)
그래서 꿈이 자연스럽게 ‘만화가’나 ‘애니메이터’가 되었다. 시대는 1980년대. 그 때 방영된 애니메이션영화 ‘아톰/철인28호/마징가Z/태권V’ 등을 보면서 원하는 직업이 생긴 거였다. 그 꿈은 중1때 미술담임선생님이 만나기 전까지 계속 되었고 나의 그림연습도 꾸준히 열심히 였다.
이 모습을 보신 부모님은 내가 어떤 꿈을 갖고 있는지 모르신채 그림 그리며 나홀로 노는 어린 딸을 가만히 두셨다.
내가 6살 때는 시골에서 살았었다. 근처에 섬강이라고 있었다. 그래서 거기서 오빠, 언니, 동갑내기들과 함께 여름에 수영을 하거나 다슬기를 잡은 추억이 있다. 근데 사람이 어여쁘고 귀엽게 생기면 머리가 비었다고 통념이 있는 줄 나는 몰랐다. 그저.... 못난이들과 비슷해야 한다는 생각에 바보 연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내성적이라 모르거나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말을 줄이고 조용했다. 이런 조용하고 다소곳한 모습을 좋아하는 아이들과 어른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말을 하지 않는 건 말할 이유도 없었고, 말 하기도 싫었다. 딱 필요한 말만 했다. 근데 내 원래 속성은 왈가닥이다. 뛰어놀고 장난치고 노는 걸 좋아해서 남자아이들과도 잘 어울렸다. 그래서 다소곳하고 공주마냥 행세하는 여자애들에게는 어쩔 땐 미움을 샀다. 그러나 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그리스신화의 야누스처럼 양면성이 강했다. 어느 순간에는 다소곳하게 앉아서 공주행세도 잘했다. 그래서 난 친구가 두 종류였다. 왈가닥 소녀와 노는 친구와 공주형 소녀와 어울리는 친구. 왈가닥친구는 주로 남자아이들이였고, 공주형친구는 여자아이들이였다. 또 어른들도 나를 공주형을 보면 칭찬을 잘했다. 아주 귀공녀라며 모범, 귀감이 되니 잘 어울리고 자신의 딸, 아들을 나와 어울리게했다.
나의 부모님은 엄격한 거 같으면서도 자유롭게 풀어주기는 훈육을 하셨다. 어떻게 사람 앞에서 행동거지를 일러주었다. 또 내가 그림책들을 보며 실천에 옮긴 행동도 있다. 난 어릴 때부터 책을 가까이해서 책에서 배운 걸 바로 내 행동에 적용 시켰더니 칭찬을 많이 들었다.
그 덕에 난 .... 성인이 된 지금도 쌍욕을 잘 모른다. 살아오면서 칭찬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모범/귀감이라는 말도 익숙하다. 성장해 가면서 이런 칭찬하는 어른들이 인색해졌지만 어릴 때 참 많이 들었다. 나를 곁에 자신의 자녀를 곁에 둬서 나처럼 따라하라고 한 거 같다. 이 때 군중 속 공주였다.
그 덕인지 여기저기 나를 전도하려는 종교도 많았다. 불교, 천주교, 기독교-장로회, 기독교-감리회 등등 다양한 아이들과 선생님들이 나를 찾았다. 남들이 바보라고 하는 날 왜 서로 데려가려고 안달 날까. 그건 부모님도 의아했다. 내가 사람을 이끄는 힘이 그 때부터 있었나보다.
기독교-감리회에 모태신앙이라 계속 다니던 교회를 다녔다. 유혹이 많아 궁금도 해서 다 가봤지만 나에게 맞는 건 아기때부터 갔던 기독교-감리회였다.
바보 연기가 이렇게 잘 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음을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야 알았다.
‘예쁜 애들은 머리 속이 비었다.’
이 명제를 알게 되기 전까지 난 스스로 아이들 속에 섞이기 위한 노력으로 바보로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