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어린시절2

기억에 잘 나지 않은 유아원 시절.

by 김솔현

내가 어렸을 적 80년대는 어린이집이 따로 없었다. 어린이집 대신에 유아원이 있었고 유치원이 있었다. 아마도 난 4살부터 유아원을 시작으로 집 밖으로 나돌았다. 30대까지 직장생활을 하고 40대가 되어서야 집에 박혀 집순이 생활을 해서 가족과 오붓한 시간을 이제야 가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가족과 제대로 지내는 게 된 기간이 40년이 걸렸다. 집보다 밖이 더 편했다. 부모님보다 나를 더 잘 알아주는 선생님과 어른들이 있었고, 나를 따르는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이때부터 울적하긴 했는지 별거 없는 내 이야기를 다 하지 않았다. 아니 할 말이 없었다는 게 맞다. 단조롭고 친구들과 같이 어울리는 게 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따금 어른과 친구들이 하는 말은


“너 많은 비밀을 숨기고 있는 거 같아.”


였다. 그러나 나는 비밀이 없이 훌러덩 다 까여있는 데 외모가 울적해 보이는 발라더의 모습이라 그런가보다.

첫 유아원에 들어설 때 많이 얼었었다. 나는 지금도 그렇지만 내성적이라 선 듯 나서서 사람을 사귀는 법을 몰랐다. 이 시직에 억지로 먼저 다가가 가지만 그 다음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막막해 했다.


“수현아, 일루 와서 같이 놀자.”


나에게 먼저 손 내민 건 수영이라는 아이였다. 당연히 지금 40여년전의 친구들을 기억해 내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다. 그냥 기억에 남는 이름이 있지는 않다. 수영은 그냥 나에게 손건넨 친구들 중 한 명이였고 이름은 ‘가명’이다. 친구들의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수영이라는 한 아이가 다가왔다. 나는 쭈볏쭈볏 다가와서 손을 맞잡는 걸 주저하면서도 이끄는 대로 놀이터로 향했다. 놀이터에서 그 수영 덕에 다른 친구들도 알게 되었고 서슴없이 어울리면서 친구들을 늘려갔다. 그래도 소심했던 나는 얼굴 붉히며 어쩔 줄 몰라했다. 어쩌면 난 이때부터 아웃사이더 기질이 다분했나보다. 가끔 여럿이 있는 것보다 나 혼자 있는 게 마음이 편하고 긴장도 풀렸다. 사람 만나는 게 여간 힘든 일인지? 그래도 적응은 잘했다. 인사이더이긴 하지만 한 편으로 아웃사이더이고 싶은 이중적인 마음이였던 거 같고 이 마음상태가 끝까지 갔다.

유아원에서 예절의 기초를 배우고 시장에서 물건 흥정법을 배웠지만 흥정할 줄 몰랐고, 돈 개념도 세워 물건 계산도 해 보았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건 재미가 있었다. 유아원에 친구들 만나러 가는 이유가 있었다. 친구들과 노는 게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한 친구들이 생겼지만 집 방향이 같지 않아서 나홀로 집으로 향했다. 엄마가 오셔서 데리고 갔지만 그러지 못한 날도 있기 마련이니까.

때는 멀쩡한 하늘에서 비가 내린 날. 비를 맞기 전에 비 사이를 퍼즐 맞추듯이 옮기며 집으로 왔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억수로 많은 비가 내렸다. 작은 체구라서 가능했다. 나중에 옛기억을 추억하며 초등학교 가서도 저학년 일때 같은 놀이로 했다. 그러나 나와 달리 나와 함께 비사이로 가는 놀이를 애들은 잽싸지 않아서인지, 등치 때문인지 쉽게 내리는 비를 맞았다.


유아원 시절도 재미가 있었다. 교회도 다녔다. 유아부를 다니면서 대학생, 고교생 언니/오빠들을 선생님(이 때 발음도 되지 않았다.)으로 부르며 성경공부를 했드랬다. 난 같이 있는 열댓명의 아이들과 달리 차분하고 경청했다. 그 모습이 보통 아이들과 달랐다. 다른 아이들은 노는냐고 방방 뛰고 저지르고 난리였지만 그 속에서 난 차분하니 학생선생님의 말을 잘 들었다. 난 차분하고 다소곳하다는 말을 어릴 때부터 들었던 거다. 한마디로 부모님이 잘 키우는 중이였다~~~~ (자화자찬. 지금도 부모의 교육이 잘 되었다 말한다.) 어린 나이에 신앙심이 실신했고 교회 행사도 하나도 빠짐없이 참석을 했다. 성경학교와 여름에 2박3일캠프도 다녀오고 다양한 활동을 했다.

유아원을 다니다가 7살에 졸업을 했다. 2년을 다녔다.아니, 3년은 다녔구나. 그 속에서 아이들과 사회성을 배웠다. 그리고 내가 많이 부족하다는 것도, 남들과 남달랐던 나는 다른 아이들의 행동이 이해가 가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본 어른들은


“나이에 비해 정신이 성숙하다.”


고 평했다. 평범하고 아이들에게 튀는 아이는 아닌, 그냥 어여쁘고 귀엽게 생긴 왈가닥 아이였다. 점잖을 땐 차분했지만 놀땐 또 화끈하게 뛰어 놀아서 뭐가 진짜 내 모습인지 다들 헷갈려 했다. 근데 둘다 내 모습이라고 했고 어쩔 땐 같이 헷갈려 할 때도 있었다.

그리고 난 이 때 만화책을 처음 접했다. 어떤 아이가 <보물섬>이라는 만화잡지책을 갖고와서 봤었다. 그 모습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한석아, 그 책 모야?”

“이거?만화야. 볼래?”


내가 너무 호기심을 보여서 보고 있던 한석이 책을 건네서 지금 생각하면 제대로 정독을 했다.


‘이런 재미가 있는 걸 이제야 알다니!’


그 후, 거기에 <미래소년 아톰>,<마징가Z>,<철인28호>..등등을 보면서 꿈이 생겨버렸다. 참 어린 나이에

“저 움직이는 만화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

라고 나는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다짐했다. 한마디로 ‘애니메이터’가 되고 싶었다. 그럴려면 저런 만화를 잘 그려야한다는 말도 들어서 그 때부터 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참 열심히 없는 재능을 만드느냐고 고생을 했다.

그러나 그 후엔 공부나 하라며 학교선생님들이 막았다. 그래서 ‘애니메이터’가 되겠다는 꿈은 접었다. 하지만 이 때 나는 행복한 꿈을 꾸며 열심히 중얼대며-이야기를 만들며- 그림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이런 내 모습에 부모님은 말리지 않았다. 오히려 어린아이가 뭔가 하려 한다고 응원을 해주셨다.

되돌아 보면 부모님도 어려서(20대) 아기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 지 우왕좌왕하고 있었던 거 같다. 그 때 또 남동생이 태어나서 엄마 품에 앉겨서 새근새근 잠들어 있었다. 참 무심했던 난 동생이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라 생각했던지, 질투를 느꼈는지는 모르겠다.

3년이 유아원의 생활을 마치고 7살에 학교를 가기 위한 선행학습으로 한글과 숫자 연산을 먼저 깨우치면 학교 공부에 유용하다고 주산학원을 엄마가 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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