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하기 전 시절의 어린 나의 위치는 인기가 많은 인기쟁이였다. 그래서 종교단체에서 나를 전도하려고 난리였다. 그래서 불교, 천주교, 기독교를 다 다녀봤다. 그런데 내가 기독교 감리회 모태신앙이였다. 불교와 천주교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말고 기독교 중 장로회는 분위기나 내부 구조가 어색했다. 그래서 역시 구관이 명관이라고 내가 다녔던 교회에 정착했다.
좀 바보스러운 행동이 귀여운 인상에 맞는 행동였나보다. 주변에 아이들로 둘러싸여 있었기 때문이고 어딜가나 우르르 아이들이 따라다녀 영향력이 컸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보면 인플루언서였다. 그게 좀 어린 나에게 부담스러웠다. 어른들도 나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힘이기도 했다. 뭐 아이들에게 알릴 게 있음 나를 통했으니까. 그러면 그 파급력은 꽤 좋았다. 귀여운 인상과 허술한 태도가 인기를 더 했던 거지.
그래도 난 인플루언서면서도 외로움을 느꼈다. 대중 속 외로움을 미리 알게 되었다. 나의 외모에 관심 많지 나에 대해 알려고 하는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주변은 맴돌고 자신의 이야기 하느냐 바쁘지만 정작 나에게 관심이 적었다. 20여명의 아이들 속에서 친구는 없었다.
언제나 빙긋 웃으며 아이들의 조잘댐을 잘 들어주고 맞장구도 잘 쳐주며 유치원에서 모범생이였다. 허술함이 있는 모범생. 어른들이 자신의 아이를 나에게 붙이는 형국이였고 그 모습을 직장생활 해서 가족을 건사할 아빠보다는 엄마가 좋아하셨다. 내 행동에 부모님이 나를 잘 기르고 있다며 칭찬이 자자 해지기 시작했다. 30여년이 지난 지금도 부모님이 너무 잘 키웠다는 귀공녀라는 말을 곧잘 듣는다. 공자가 말씀 중 하나를 “부모를 빛내라”는 격언을 실천이 된 거다.
또 싫었던 건 약속을 아이들이 너무 잘 어기고, 부모님도 잘 어겼다는 점이다. 난 그 점에서 많은 실망을 했다. 나는 언행일치를 배웠다. 그걸 실천에 옮기고 있었다. 하지만 내 주변은 그 언행일치하지 않아서 속상하고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
“약속은 어기라고 있는 거야.”
이렇게 하려면 왜 약속을 하는 거야? 이해가 가지 않았다. 또 내가 약속을 제안하면 하나 같이 거절을 했다. 이도 마음의 상처가 되어 수동적으로 아이들의 이끄는 대로 나를 맡겼다. 내가 나서서 약속을 먼저 제안하지 않는다. 그냥 끌려 다녔다. 그 속에서 재미와 정보를 취했다. 그래서 내 스케줄은 빠듯했다. 매일이 약속인 적도 있었다. 내가 있음 자리가 모임이 빛난다고.
내가 그 모임과 자리에 있으면 아무 말 하지 않아도 주변이 밝아진다며 좋아했다. 가만히 있어도 되었다. 아무런 역할도 없어도 되었다. 내 존재 자체가 빛났기에.
이렇게 난 초등학교 입학해서도 빛났다. 이 인플루언서 역할을 잘 활용하면 참 좋았겠지만 난 극강의 내향성 사람이다. 사람들에게 집중이 되어 있지만 그걸 부담스러워했다. 곧잘 엄마 뒤에 숨었다. 엄마가 주변에 없던 적이 많기에 쭈볏쭈볏 얼굴 붉힐 때도 많았고 그 기간동안 나는 혼자서 터득해 가야 했다.
“나의 인기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고민이 살짝 되긴 하였다. 그냥 즐기기보다 관심을 끊자는 생각으로 세월에 나를 맡기기로 했다.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점에서 좋은 일인 줄 어른이 되어서 알 게 되었다. 이 시기에 어찌나 부담스러웠던지!
이런 어린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좀 내 글에서 알 수 있듯이 참 재수없다 생각이 들거다. 좀 사람을 좀 내려 보면서 인기도 많아 성격이 드러울 거 같을 거다. 그러나 아까 썼듯 ‘부모를 빛내라’라는 격언을 이뤄서 정말 성격 좋았다. 그래서 어울리기가 수월하면서도 시기질투하는 이들에게 고생도 하며 보냈다. 어른들도 나를 참 좋게 보았기에, 이름이 회자되기도 했나보다.
이런 내 위치는 초등학교 6년내내 이어졌다. 내가 쉽게 바뀌지 않더라고. 사람이 바뀐다고 누가 그러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있다면 바뀌게 된다고 하더라.
나의 위치는 내가 사는 동네에서 아이답지 않게 입김이 센,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인플루언서로 위치가 되어 있었다. 이 사실은 부모님은 모르고 계셨다. 30여 년 지난 지금도 내가 밖에서 인플루언서라는 걸 모르신다. 극강 내향인으로 제대로 알고 계시니까.
나도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8살이 다가오니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가 어느 날 날라왔다.